매일신문

신트론 대표 이상은씨-쉰세대 창업의 신세대 열정

이상은(52.신트론 대표)씨는 2000년 말까지도 월급쟁이였다. 그것도 공고 졸업 후 30년 이상 월급 봉투에만 기대어 살아 온 만년 월급쟁이. 그러나 그해 달력이 달랑 한 장 남았을 때 과감히 사표를 냈다. 아내를 비롯해 모든 친지들이 말렸다. 남들은 잘릴까 봐 안달인데 이 불경기에 제발로 회사를 나오려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는 것.

하지만 이씨는 지난해 기어코 '사장'으로의 변신을 성공해 보였다. 그 해 6월 대구기능대학 창업보육센터 안에 '신트론'이란 이름의 회사를 만들어 입주한 것. 그리고 일년여만에 연간 10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기업으로 성장시켰다. 50대 늦깎이 창업주의 성공시대 개막이었다.

그러나 이씨는 한 순간에 성공을 이룬 '벼락부자'가 아니다. 이씨는 평생 실 만드는 공장에서 실에다 풀을 먹이는 '사이징' 기계와 씨름해 왔다. 그리고 끊임없이 이 기계에 의문 부호를 던져 왔다. 가장 많이 고민한 것은 어떻게 해야 실에다 풀을 균일하게 먹일 수 있느냐는 것. 풀 먹이는 비율이 일정하고 균등해야 좋은 실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풀 먹이는 공정에서 뿌려지는 풀의 양을 측정할 길이 없다는 점이었다. "풀을 다 먹인 뒤에야 측정 기관에 검사를 의뢰했습니다. 풀이 얼마나 균등하게 먹여졌나를 알아 봐 달라는 것이지요. 그 결과는 일주일 뒤에야 나왔습니다. 하지만 그때는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소용 없습니다. 이미 풀 먹이는 작업은 끝났기 때문입니다".

이씨는 풀 분사와 동시에 그 분사량이 정확하게 측정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런 계측기를 개발해야겠다고 마음 먹은 것. 하지만 직장에 매인 몸으로는 그 개발 작업이 불가능했다. 조금만 연구하면 될 것 같은데…. 마음만 바쁠 뿐이었다.

이씨의 봉급쟁이 '탈출기'는 이렇게 시작됐다. 직장 생활을 접고 본격적으로 기계 개발에 들어갔다. 그러나 성공하기가 그렇게 간단할 리는 없었다. 2000년 말부터 5개월여 동안 시험기기를 구입해 연구했지만 허사. 퇴직금만 거의 다 날려버렸다. "집에 생활비를 갖다주지 못했습니다. 반대를 무릅쓰고 창업했다가 면목 없게 된 것이지요. 아내와 두 아들에게 미안하고, 이러다 망하는 것 아닌가 싶은 불길한 예감까지 들었습니다".

혼자서 기계와 씨름하다 '창업보육센터'라는 데가 있음을 뒤늦게 알았다. 보육센터는 창업 희망자에게 사무실과 최신 기자재를 제공하고 기술 지원까지 하는 곳. 대구.경북에 여러 개의 창업보육센터가 있지만 이씨는 대구기능대학 센터를 선택했다. 시험 기자재가 마음에 들었기 때문이었다.

센터 입소 심사도 까다로웠다. 그러나 센터측은 이씨의 기술력을 믿어줬다. 입주가 완료된 것은 작년 6월. 이씨의 현장 경험에다 교수들의 이론이 접목되자 작년 늦여름 무렵 풀 분사량을 공정 과정에서 측정할 수 있는 계측기가 드디어 태어났다. 실용신안 특허까지 얻었다.

"작년에 17대를 팔아 3억4천여만원의 매출을 올렸습니다. 올해 목표는 10억입니다. 지난 9월까지 매출이 6억여원이었습니다. 부가가치도 꽤 높습니다. 판매가에서 제조원가가 차지하는 비중은 20% 정도입니다. 이런 고수익 구조를 바탕으로 기술 개발에 더 투자해 현재 7명인 직원 규모를 내년쯤엔 몇 배로 키울 예정입니다. 연말쯤 대구 성서 4차 산업단지에 부지를 분양받아 내년엔 번듯한 공장도 차릴 겁니다".

이씨의 사무실 안은 라면 같은 먹을거리로 가득했다. 배고픔만큼 큰 설움이 없다는 그의 경험 때문이다. 이씨는 고아 출신. 어린 시절 대구 봉덕동의 한 고아원에서 자랐다. 글씨를 잘 쓴 덕분에 복지시설 어린이로는 이례적으로 중학교 '구경'까지 했다.

"전자 기술자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고아원장님은 농고를 가래요. 말씀을 거스르고 대구공고에 원서를 넣었습니다. 고교 2학년 때 이 사실이 들통나 그 길로 고아원에서 쫓겨났습니다". 대구 교동시장에서 라디오 수리점 기숙 점원 생활을 하며 낮공부 밤일을 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이씨는 '열심히 사는 자에게 실패는 없다'는 교훈을 얻었다고 했다. "한 길만 열심히 파 들어가면 그 안쪽에 숨어 있는 성공이란 열매를 만날 수 있습니다. 저는 섬유공장에 전자기술을 접목시켰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섬유는 사양산업이다, 죽었다 하면서 다른 길을 찾아 떠났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있는데 옷이 없어지겠습니까? 젊은 직원들에게 항상 얘기합니다. 들쭉날쭉 우왕좌왕하지 말고 열심히 한 길을 가라고요. 부지런히 가면 길을 잃지 않습니다".

이씨는 사무실 일이 끝난 뒤 대구기능대학 야간대학 전자과 과정에서 공부하고 있다. 수강생 가운데 최고령. 아직도 배워야 할 것이 많다고 했다. 다음 목표는 '무인화 제조장치'.

"내년엔 섬유공장 설립이 늘고 있는 중국 쪽으로 진출하려 합니다. 시장이 무궁무진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외국으로의 진출은 꼼꼼한 준비가 필요한 만큼 중소기업의 기술력이 외국에 잘 진출할 수 있도록 정부가 도와줬으면 합니다".

이씨는 자신의 두 아들이 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했다고 했다. 그래서 부자간 전자기술 대결을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경철기자 koala@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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