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 대선에서 후보단일화에 이어 집권에 성공한 예는 97년 DJP 연합이 유일하다. 앞서 추진된 63년 5대 대선, 67년 6대 대선, 그리고 87년 13대 대선 등 3차례의 단일화는 모두 실패했다. 그만큼 단일화를 이루는 것도 어렵고 본선에서 승리하는 것은 더더욱 어렵다.
더구나 이번처럼 지지도가 비슷한, 경쟁력에서 우열을 가리기 힘든 후보들간 단일화는 전례가 없다. 또 87년 YS-DJ 단일화 실패라는 경험도 있다. 하지만 이번 노-정 단일화는 비슷한 전력의 두 후보가 '예선전' 탈락의 위험을 무릅쓰고 이뤄냈다는 점에서 과거와 구별된다.
또 외형적으로 자리 나누기나 정치적 흥정을 앞세우지 않고 TV토론과 여론조사로 단일 후보를 결정한다는 사상 유례가 없는 방식을 택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방식과 내용은 다르지만 DJP 연합을 이룬 97년 대선과 16대 대선을 비교해 본다.
▲단일화 여건=DJP 연대의 경우 지역 연합의 성격이 강했다. 내건 구호 역시 한나라당을 영남패권으로 규정하고 여기에 맞서 지역연합 내지 지역분권을 주장했다. 무엇보다 DJP 연합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한나라당의 전신인 신한국당 즉 여권의 분열이었다. 이인제 후보의 출마가 영남권 표의 분산 효과를 가져왔다는 점이다. DJ의 승리는 DJP 연합의 파괴력보다는 여권의 분열에 기인하는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노-정 두 후보의 단일화가 단순한 수치상 두 후보 지지도의 합계와 같은 효과를 가져올 지 의문시되는 데다 상대방인 한나라당과 이회창 후보 진영의 결속력이 그 어느 때보다 강하다는 점에서 그 효과를 낙관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다만 노, 정 두 후보가 이른바 노풍과 정풍이라는 바람을 일으킨 주역이었다는 점, 그리고 이들이 변화를 바라는 유권자들을 공통된 기반으로 갖고 있다는 점 등에서 '바람'의 재점화가 이뤄질 경우 선거 결과를 속단하기는 쉽지않다.
▲단일화의 이면=97년에는 처음부터 끝까지 정치적 타협의 대상이었다. 집권할 경우 자리와 지분은 물론 언제 내각제 개헌을 한다는 등의 정치적 일정까지 합의 내용에 포함돼 있었다. 또 선대위의 구성과 운용에 대해서도 DJP 합의 각서에 상세히 언급됐다. '나눠먹기'라는 비난도 많았지만 단일화를 이룬 양측이 모두 명분과 실리를 챙길 수 있었다.
노-정 후보 단일화의 경우 외견상으로는 노-정 두 사람간에 정치적 딜은 없는 것 같다. 발표된 것만 봐도 후보와 선대위원장을 나눠 맡는 것을 제외하고는 '자리'와 지분에 대한 언급이 없다. 공동 선거운동을 한다는 정도다. 노.정 두 후보도 그 이상의 단계 즉 뒷거래나 밀실 타협은 없다고 잘라 말한다.
▲상대방의 대응=DJP 연합에 대해 97년 당시 신한국당이 밀실야합, 권력나눠먹기 계약, 3김정치 연장 음모라며 맹렬히 비난한 것은 '청와대의 대국민 사기극', '제 2의 DJP 연합', 'DJ 후계자 단일화'라는 등 한나라당의 노-정 단일화에 대한 반응과 비슷하다.
당시 신한국당은 DJ는 물론 이인제 후보에게도 뒤지는 상황에서 DJP연대에 맞서기 위한 돌파구로 자민련의 반 DJP파를 영입했다. 그리고 3김 청산을 내걸고 반 DJ 성향이 강한 이기택.조순 체제의 민주당과의 합당을 성사시켜 어느 정도 지지도 회복에 성공할 수 있었다. DJP 연합의 공세에 대해 깨끗한 정치와 튼튼한 경제의 연합이라고 맞받았다.
그러나 이번에는 한나라당이 노-정 단일화에 맞서기 위해 연합할 정치세력이 마땅히 없다. JP와의 연대는 플러스 요인이 없을 것으로 판단, 개별 의원 영입에 주력하고 있고 박근혜 의원의 미래연합과 당대당 통합을 했으나 박 의원의 개인적인 복당이라고 보는 시각이 강하다.
이동관기자 llddk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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