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이곳에는 5일마다 어김없이 장이 선다.
장이 서는 아침이면 고즈넉한 읍내가 잔칫집처럼 술렁거린다.
면에서 첫차를 타고 새벽장 보러 나온 할머니들이 난전에 보따리를 풀고, 먼 새벽 바다에서 해물을 싣고 달려온 아저씨의 목소리가 퍼득퍼득 살아있다.
장날은 이곳 사람들의 축제날이다.
새댁 시절 이곳으로 처음 이사 왔을 때, 나도 장날이면 마음이 들뜨곤 했다.
남편과 시장에서의 점심 약속을 한 날은 아침부터 콧노래를 부르며 화장을 하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때만 해도 슈퍼마켓이 없던 이곳 사람들은 장날마다 다음 장날까지 먹을 식료품을 준비해두어야 했다.
난전에는 온갖 잡곡들이며 푸성귀들이 산골에서 장구경 나온 아이처럼 땡글땡글 눈알을 굴리고, 약초전 할아버지의 뿌연 돋보기며 긴 수염에는 어린 딸의 눈길이 머물기에 충분했다.
내 단골집 생선가게 삼천포아줌마가 손목이라도 잡는 날은 비릿한 생선내가 고향 냄새처럼 좋았다.
유모차를 끌고 골목골목 장구경을 하다보면 정 많은 할머니의 손짓에 이끌려 낯선 나물들을 사기도 하고, "애기엄마가 마수걸이하면 오늘 장은 운수대통"이라는 말에 선뜻 물건부터 받아들기도 했다.
이것저것으로 장바구니가 넘쳐 날 때쯤이면 점심시간이 된다.
시장 국밥집 나무의자에 앉아 저녁 반찬거리를 떠올리며 삶의 생기를 느끼곤 했다.
장터 한복판에서 툭툭한 뚝배기에 가득 받아든 국밥만큼이나 든든하던 시절이었다.
오랜만에 햇살이 좋다.
이제 유모차도 남편과의 약속도 없지만 봄햇살만큼이나 투명해진 마음들고 장보러 간다.
벌써 난전에는 냉이며 달래, 돌미나리, 파릇파릇한 봄나물이 소쿠리 가득 봄을 팔고 있다.
오늘따라 만나는 얼굴마다 정겨움이 묻어난다.
슈퍼마켓에서 저울질당한 마음으로 할머니들의 손길이 드나든다.
장바구니 가득 두둑해진 마음을 들고 돌아오는 저녁이있다.
우리의 삶에게도 아직 덤이 남아있다.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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