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론-대학 서열화의 문제점

우리 사회가 지금 앓고 있는 교육 열병을 치료하기 위해서는 그 병을 앓게 된 원인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

어쩌면 우리 교육문제의 핵심은 무엇 때문에 우리가 이 열병을 앓고 있는지조차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 버릴 수가 없다.

우리는 이토록 오랫동안 교육열병을 앓게 된 근본 원인보다는 이 문제로 인해 파생된 여러 부수적인 증상들이 마치 문제의 근원인양 잘못 파악되고 있음을 자주 보게 된다.

그 대표적인 예로 세계 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우리의 유별난 교육열, 대학의 서열화, 우리 사회에 만연되어 있는 학벌중시 풍조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중 대학 서열화 문제를 한번 예로 따져 보자.

대학 입시제도를 수없이 바꾸어 가면서 입시과열 현상을 해결해 보고자 했으나 번번이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근본 원인은 대학 서열화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다.

하지만 엄밀히 따져 보면 대학 서열은 없앨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또 없애서도 안됨을 알 수 있다.

현실적으로 각 대학이 제공하는 교육 여건과 교육의 내용, 그리고 그 질적 수준은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고 학부모의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나은 대학에 진학하고자 하는 것은 당연한 일로 인위적으로 대학 서열을 파괴하여 이를 막을 수가 없는 일이다.

반면에 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이 100개가 넘는 우리 나라 모든 대학의 교육 여건과 내용, 그리고 질적 수준을 완벽하게 평준화시켜야 하는데 이는 더더욱 가당치 않은 일이다.

우리 나라에서 유독 대학 서열화가 문제되는 이유는 앞서 언급한 각 대학별 교육 여건에 근거한 서열이 아니라 국내 사립 입시학원에서 입시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바탕으로 대학 수능시험 예상 점수에 따라 매겨진 합격 가능 대학 및 학과별 서열이 대학 입시에 가장 중요한 자료로 이용되는 현실 때문이다.

교육 현장의 제반 여건과 이를 개선하고자 하는 노력과는 무관하게 고착화된 이러한 종류의 대학 서열이 당장은 입시를 목전에 둔 학생, 학부모, 지도교사의 심적 부담을 덜어주는 듯 하나 교육 현장에 가져다주는 피해는 실로 어마어마하다.

대학인 모두를 무력감에 빠지게 하여 소위 명문대의 경우는 더 이상 노력할 필요를 앗아갈 뿐만 아니라 지방 소재 비 명문대의 경우에는 노력할 의욕조차 박탈하는 결과를 낳는다.

아무리 도서관을 확장하고 교수를 더 충원한들 더 나은 학생을 유치하는 일과는 무관한 구조적 모순을 안고 있는 현실에서 어찌 대학발전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결국 이러한 왜곡된 대학 서열화의 가장 큰 피해는 역시 학생과 학부모들의 몫으로 돌아가게 된다.

결과적으로 대학 서열화 문제의 해결은 이를 인위적으로 없애고자 노력하기보다는 대학의 학문적 수월성을 잣대로 제반 교육 여건과 내용을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평가한 근거를 바탕으로 대학간의 서열화가 마련되고 학문 분야별 대학간 우열이 정확히 평가되어 매우 전문적이면서도 포괄적인 대학간 서열이 정기적으로 이루어지고 그 결과가 여러 교육 주체들에 의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활용될 때 가능하다.

이를 통해 진정한 진학 지도가 가능하여 입시 과열을 상당부분 해소할 수 있음과 아울러 대학간에도 공정한 경쟁을 유발시키고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대학 지원책이 마련될 수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지방대학 육성을 통해 대학 서열화를 해결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수 차례 천명한 바 있다.

매우 고무적인 정책의지로 환영할 만 하나 진정코 대학 서열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리 지방 대학의 현주소, 너무도 열악한 제반 교육여건에 대한 객관적이고 포괄적인 평가와 서열 매김이 우선되어야 실현 가능한 지방대학 육성책이 마련될 수 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나라 대학만을 대상으로 한 도토리 키재기식 서열화를 과감하게 뛰어 넘어, 우리 교육 전문가에 의해 진솔하게 만들어진 세계 주요 대학을 포함한 서열화는 우리 대학이 국제 경쟁력을 확보해 갈 수 있는 시금석이 될 것이다.

백성기 포항공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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