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버려지는 50대'

한비자(韓非子) '설림(說林)편'에 늙은 말의 지혜를 뜻하는 '노마지지(老馬之智)'라는 말이 나온다.

춘추시대에 군사를 이끌고 고죽국 정벌에 나선 제나라의 환공이 길을 잃고 헤매자 그를 수행하던 관중(管仲)이 늙은 말 한 마리를 풀어놓고 그 뒤를 따라 길을 되찾았다는 고사에 들어 있다.

이 말은 노인들의 지혜를 얘기할 때 곧잘 인용되곤 했다.

그러나 이젠 세상이 크게 달라졌다.

늙은 말의 지혜보다는 젊음의 힘이 넘치는 준마(駿馬)의 지식이 대접받는 세상이다.

노인들은 경험과 지혜를 활용하고 싶어도 설자리가 없어지고 있다.

▲어디 그 뿐인가. 외환 위기 이래 한창 일할 나이의 장년층까지도 무더기로 일자리를 잃고 있다.

'50대 폐기' 현상이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로 고착돼 가면서 50대들이 버려지는 세태다.

이 같은 현상은 갈수록 심화, 급기야 50대의 절반 정도가 실업이나 준실업 상태라 한다.

자녀들의 교육과 결혼 등을 앞두고 가장 역할을 제대로 못해 가정 불화-이혼-가출로 이어지는 등 '가정 붕괴'를 부르기도 한다.

▲생산성 위주로 사회와 기업의 구조가 재편되고 있는 반면 계층과 세대간의 역할 배분이 제대로 안 되고 있어 50대들의 '희생양'이 되기 십상이다.

전문가들은 50대의 퇴출로 그 부양비용을 그 아래 노동 세대가 부담해야 하므로 결국 국가·가정 경제의 왜곡과 파탄을 피할 수 없다고 진단한다.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이들은 가정에서도 대접은커녕 뒷전에서 '꼰대'로 몰리지 않으면 그나마 다행일 형편이다.

▲이 달은 '가정의 달'이며, 오늘은 '어버이 날'이지만 지금 가장 서러운 세대는 아마도 50대일는지 모른다.

대부분 일자리에서는 '찬밥', 집에 와서도 '눈칫밥' 신세라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닐 게다.

자괴감에 시달리면서 가족과의 연락마저 끊은 실직자가 적지 않다 한다.

가까스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경우도 온전하기는 어렵다.

'세대 교체' '개혁'이라는 현실 앞에서 '곧 퇴물 신세'라는 강박감으로 고통과 불안에서 자유로워지기 어려울 건 뻔하기 때문이다.

▲국민연금관리공단에 따르면 60세 부부가 평균 기대수명(남 77.5, 여 82.2)까지 산다고 가정하면 필수생계비가 2억6천만원이라 한다.

여유를 가지려면 4억7천49만원이 들고, 여유생활비를 200만원 수준으로 높일 경우 7억1천49만원으로 올라간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실직한 50대들의 앞날은 캄캄할 수밖에 없다.

젊은 세대들도 그 초라한 모습이 미래의 자화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겠지만, '준마'와 '노마'가 어우러져 따뜻해질 수 있는 사회는 진정 요원하기만 할까. '부처님 오신 날'이기도 한 오늘은 따뜻한 생각만 해보는 날이었으면 한다.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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