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현장취재> 호적 없이 방치되는 '늑대소년'들

적잖은 어린이들이 부모의 무관심 속에 출생 신고조차 되지 않아 취학 기회를 박탈당하거나 길거리로 내몰리고 있다. 주민등록은 물론 호적마저 없는 이 어린이들은 길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동네를 떠돌아 관계자들이 '현대판 늑대 소년들'이라 부르고 있을 정도이다.

◇방치되는 아이들

편모의 방임으로 길거리를 떠돌다 작년 5월 대구의 한 복지시설로 옮겨졌던 은태(가명.11) 은식이(가명.9) 형제에게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호적조차 없었다. 출생신고가 안됐기때문. 아이들은 가출을 밥 먹듯 하고 10여년이나 동네를 떠돌며 말썽을 일으켰지만 방치됐다.

복지시설 관계자는 이들 형제가 처음 왔을 때는 마치 문명을 전혀 접하지 못한 '늑대소년'과 다름 없었다고 전했다. 감정 표현이라고는 "안해" "싫어" 등이 전부였고, 성에 차지 않으면 막말과 욕설로 악다구니를 쓰기 일쑤였다.

형제는 아동학대 예방센터의 개입으로 복지시설로 옮겨지고 나서야 호적을 얻고 학교에도 다닐 수 있게 됐다. 일년여만에 상태가 호전돼 시설 관계자는 "점차 말씨가 공손해지고 무서워 하던 엄마에 대한 애정도 표현하는 등 밝아졌다"고 말했다.

◇폭력보다 더 무서운 방임

또다른 복지시설에 사는 기철이(가명.10)는 부모의 무관심과 폭력 속에 동네를 돌며 밥을 얻어먹고 도둑질을 하며 떠돌다 이웃의 신고로 아동학대 예방센터에 의해 작년 10월 구조됐다. "엄마가 아이에 대한 모든 관심을 끊은 상태였어요.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 처럼 대했더라고요". 기철이는 구조 6개월만에 복지시설에 입소됐다.

대구 아동학대 예방센터에 따르면 작년에 시내에서 접수된 아동학대 신고(신고전화 1391)는 135건으로 재작년(96건)보다 37% 증가했고 그 중 98건이 아동학대로 판정됐으며, 46건에서 학대는 물론 친부모의 방임이 행해진 것으로 조사됐다.

방임은 아동의 출생신고를 하지 않았거나 취학통지서가 나와도 학교에 보내지 않은 것은 물론 의식주를 돌보지 않는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고 센터측은 밝혔다. 센터 이정아 상담팀장(34)은 특히 "접수되는 학대신고 아동 중 7~8%는 호적조차 만들지 않은 것으로 드러난다"고 전했다. 미혼모가 자신의 장래만 생각해 아이의 호적을 일부러 만들지 않거나 동거가정의 붕괴 및 동거자 비협조 등으로 호적을 만들기 어려운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이웃 관심만이 해결책

교육법은 취학 연령 아동을 학교에 보내지 않을 경우 100만원 이하의 과태료를 매길 수 있도록 하고 있지만 호적 자체가 없을 경우엔 취학통지서조차 발급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이정아 팀장은 "아이가 밥을 먹든 말든, 어디서 잠을 자든, 학교에 가든 말든 전혀 관심을 두지 않는 친권자의 방임은 성장기 아동의 정서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할 수 있다"고 방임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신체적 학대를 당한 아이들에게도 최소한 부모에 대한 애정은 남아 있지만, 부모로부터 소외를 겪은 아이들은 그런 애정조차 못느끼는 경우가 많다는 것.

이 팀장은 "방임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을 뿐 아니라 친권자를 처벌하는 것으로 해결되기도 힘들다"며 "이웃에서 애정과 관심을 갖는 것만이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최병고기자 c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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