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야고부-아름다운 '淸富'

한때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유행했지만, 부자의 유형은 천차만별이다.

'개처럼 벌어 정승처럼 쓰는' 부자가 있고, 스크루지나 샤일록 같은 유형도 많다.

자기가 가진 것을 나누는 부자들도 있다.

미국의 '강철왕' 카네기는 영국의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이민한 뒤 방직공·전보배달원·전기기사 등을 거쳐 세계 최고의 갑부가 됐던 인물로 엄청난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기업가였다.

이탈리아의 메디치가(家)는 학문과 예술을 보호하고 장려해 이 나라의 르네상스를 꽃피웠다.

미국의 록펠러, 빌 게이츠도 사회 환원의 전통을 실천한 부자들이다.

▲1600년대 초반인 조선조부터 300년, 10여대에 걸쳐 만석꾼의 부(富)를 유지했던 경주 최부자 집의 비결도 남다른 데가 있었다.

이 집의 가훈(家訓) 가운데는 '흉년에 땅을 사지 않는다' '만 섬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한다'는 대목이 들어 있다.

최인호의 베스트 셀러 소설 '상도(商道)'의 주인공인 조선조 후기의 거상 임상옥은 '재물은 평등하기가 물과 같다(財上平如水)'며 불우한 사람들에게 많은 돈을 썼다.

▲사람들은 누구나 부자가 되기를 원하지만 누구나 부자가 되는 건 아니다.

부자도 부자 나름이다.

깨끗한 기업가(淸富)를 보기 어려운 세상이다.

우리 사회는 지금 정경유착으로 인한 비리와 부정·부패로 중병을 앓고 있다.

졸부들은 불안정한 사회 정세를 이용해 기회주의와 모험으로 떼돈을 모으는가 하면,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박탈감을 안겨주는 경우도 비일비재다.

▲근래에도 드물게 재산을 사회에 환원해 우리 사회를 훈훈하게 해주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최근 경기 안양시에 있는 삼덕제지의 전재준 회장이 도심에 자리잡은 일반주거지역의 300억원 상당의 공장 부지 4천364평을 안양시에 기증하겠다고 나서 화제다.

42년 동안 경영해오던 공장을 경남 함안으로 이전하면서 내린 '아름다운 용단'이다.

시민 덕에 키운 공장을 시민의 품으로 되돌리려 한다는 그의 '청부' 정신은 물신주의에 찌든 우리 사회의 '등불'이 아닐 수 없다.

▲러시아의 문호 톨스토이는 '부는 거름과 같아서 축적돼 있을 때는 악취를 풍기지만 뿌려지면 땅을 기름지게 한다'고 했다.

그의 말대로 함께 나눈 돈은 사회를 풍요롭게 하고, 부와 거리가 떨어진 모든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기도 한다.

이기주의와 배금주의가 판을 치는 요즘 같은 세상에 먼저 가진 사람들이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모범을 보일 때 사회적 연대감이 공고해진다는 사실은 새삼 말할 필요조차 없다.

나누는 사람들 때문에 우리는 희망을 저버리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받는 사람'들의 자세도 중요하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 되리라.

이태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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