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취업·창업-피자런 박동식 대표

신문배달원, 고물수집상, 옷 노점상, 덤프트럭 운전사, 칫솔 영업사원, 치킨점 업주….

박동식(35)씨는 중학교 시절부터 어림잡아 20개의 직업을 겪어봤다.

자신이 돈을 벌지 않으면 공부는 물론 밥조차 먹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한다는 옛말이 맞아떨어진 걸까. 20년동안 산전수전(山戰水戰)을 다 겪은 그는 30대 중반의 나이에 결국 사장님으로 떴다.

박씨가 지난 2000년 11월 창업한 동네 피자집 피자런은 2년6개월만에 3곳의 직영점과 3곳의 프랜차이즈 지점을 거느린 메이커 피자업체로 성장했다.

직영점과 프랜차이즈 로열티를 포함해 피자런이 올리는 월 평균 매출은 9천여만원. 제반 경비를 빼고 나면 그는 월 3천만원 내외를 벌어들인다.

직영점 종업원만 25명. 이미 소규모 기업 수준으로 올라섰다.

피자런으로 걸려오는 주문전화만 하루 평균 400여통에 이른다.

"2000년 초였습니다.

돼지갈비 체인회사에서 영업사원 일을 하다 피자를 알게 됐습니다.

피자 프랜차이즈점을 운영하던 사람이 피자 시장이 갈수록 커진다고 하더군요. 열심히만 하면 손해는 안보겠다 싶었어요".

준비를 꼼꼼히 했다.

피자 요리법부터 익혔고 주변 피자집을 압도하는 영업전략도 세웠다.

단숨에 피자런을 알리기 위해서는 공격형 마케팅 전략이 필요했다.

고민 끝에 생각해낸 것이 당시 선풍적 인기를 끌던 킥보드. 청소년층이 좋아하는 음식이 피자인 만큼 이 연령층이 가장 좋아하는 사은품을 내걸었다.

피자를 주문하는 사람들에게 당시 10만원 넘는 킥보드를 2만원에 구입하는 혜택을 줬다.

손님이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개업 첫달 무려 2천400만원어치의 피자를 팔았다.

"아무리 피자가 맛있어도 먹어보지 않으면 맛을 알 수 없잖아요? 그래서 처음엔 사은품을 걸고서라도 피자런을 알리는데 주력했죠. 그 다음엔 가장 좋은 재료를 써서 맛으로 보답하는 것이었습니다.

몇 달 지나자 사은품을 주지 않아도 매출은 꾸준히 올랐습니다."

장사가 잘되니 개업 8개월만에 프랜차이즈 체인점 요구가 들어왔다.

비산동에 첫 체인점을 내줬다.

그 곳에서도 개업 첫 달 매출이 3천만원을 기록했다.

그는 음식은 정직해야 한다고 했다.

재료를 속이면 안된다는 것. 박씨는 그래서 깡통에 든 재료를 쓰지 않고 천연재료를 고집한다.

상업고 졸업에 불과하지만 박씨의 고객관리 기법은 경영학 박사급이다.

그는 모든 주문이 중앙 콜센터로 집중되도록 시스템을 만들었고 인터넷 주문 기법까지 도입, 고객이 주문하는 즉시 실시간으로 가장 가까운 지점 주방으로 주문서가 들어가도록 했다.

그는 자신의 가게에 한번이라도 피자를 시켜먹은 적이 있는 고객은 모조리 컴퓨터로 관리한다.

2번 이상 주문한 고객은 입맛을 파악, 새로운 메뉴가 나오면 우편으로 시제품을 맛볼 수 있도록 쿠폰을 보내준다.

그는 돈을 꽤 벌었지만 아직 승용차가 없다.

사업가는 돈을 벌어 사업장에 다시 투자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경영철학이다.

그래서 인터넷 주문 시스템 구축 등에 수억원을 이미 쏟아부었다.

좬더 잘해 보려고 투자를 하다 보면 어려움도 많습니다.

투자금이 영업이익으로 환수되기까지 시차가 있거든요. 시차가 길어질 때면 옛날을 생각하며 위안을 삼습니다.

그때도 이겨냈는데 지금 이것쯤이야 하고요.

박씨는 학창 시절 자신이 벌어 밥도 먹고, 학비도 냈다고 했다.

그래서 신문배달은 기본이었고, 고사리손으로 시장에서 옷 장사도 했다.

그는 결혼 직후인 1993년 덤프트럭 운전을 할 때, 당시 돌도 안된 첫 아이를 사흘간 굶겼다고 했다.

교통사고를 내 분유를 살 돈이 없었던 것이다.

그는 그 때가 가장 참담했다고 기억했다.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결과가 없다면 의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잠을 3, 4시간밖에 못자고 덤프트럭 몰면 뭐합니까? 애 우유도 못주는데요. 애 굶기고 나서 결심했습니다.

모자라지 않는 삶을 살아보자구요. 그 때 목표가 아직 완전히 이뤄지지 않았지만 절반은 이룬 것 같습니다.

박씨는 그래서 미래가 불확실한 트럭 운전사를 접고 장사에 뛰어들어 위생용품 외판, 치킨점 동업 등을 통해 장사를 익혔다.

그 때의 경험이 오늘의 자신을 만들었다고 했다.

"저는 어린 시절부터 고생을 많이 했지만 그것이 저의 재산이었습니다.

그런데 요즘 젊은이들은 그런 노력이 적어요. 취업이든, 창업이든 제대로 하려면 훈련을 쌓아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피자배달사원도 20대 후반 이상만 뽑습니다.

배달부터 시작해 이 분야를 익히라는 거죠. 모든 일을 건성으로 하면 결과가 없다고 항상 얘기해줍니다"

박씨는 서울 브랜드를 모두 이기고 싶다고 했다.

그리고 어려움에 빠진 사람들에게 체인점을 많이 내줘 그들의 재기를 돕고 싶다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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