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망대-얼굴있는 지방분권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역설적으로 중앙과 지방의 격차는 더 심화돼 지방은 거의 붕괴직전에 있다.

인구의 거의 절반, 경제력의 80%가 중앙에 집중돼 있고 권력(국가의 주요정책 결정력)의 99%(?)가 중앙에서 작동되고 있는 것이 우리 지방자치의 현주소이다.

오늘날 한국의 민주주의는 '풀뿌리부터 말라죽어 가고' 있는 꼴이다.

한국은 서울 1극체제의 '서울공화국'과 다름없으며,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은 모든 영역에 이르기까지 거대한 '블랙 홀'이 되어 가고 있다.

참여정부 이후 지역에서 지방분권화운동이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정부도 지방분권과 지역혁신을 국정 주요과제로 삼은 것은 환영할 만하다.

그러나 아무리 특별법을 만들고 운동을 전개하더라도 잘못된 근원을 바로잡지 않는 한 공염불에 불과하다.

우리의 지방자치는 흡사 '놀부가 흥부 분가시키는 꼴'이었다.

놀부는 흥부를 머슴처럼 부려먹다 흥부의 식솔이 늘어나자 양식 축나는 것이 못마땅해 허울좋게 분가라는 명분을 내걸고 흥부 가족을 내쫓는다.

놀부의 재산이 부모 유산이고, 불어난 재산도 흥부 가족들이 부지런히 일한 데서 비롯되었다면, 놀부는 흥부에게 재산의 절반 정도는 떼어주어야 하거늘 그냥 빈손으로 내쫓은 것이 '놀부의 분가논리' 인 것이다.

그동안 지방은 '서울 공화국'을 위해 뼈빠지도록 일하고도 지방자치라는 이름 아래 내팽개쳐진 형국이 되었다.

이제 일대 혁신이 필요하다.

종래의 낡은 국가운영 스타일이나 패러다임으로는 국가도 지방도 살아 남을 수가 없다.

중앙이 살아야 국가가 사는 것이 아니라 지방이 살아야 국가가 산다.

그런데도 국가전체의 발전은 국토의 균형발전과는 거리가 먼 쪽에서 추진되고 있다.

동북아 물류중심국가건설이라는 거대 계획도 서울과 수도권, 특히 인천항을 중심으로 추진될 것으로 보여, 지방은 배가 고파 양식을 구하러 형 집으로 갔다가 형수한테 밥주걱으로 얻어 맞고, 뺨의 밥풀을 떼어먹으며 돌아오는 흥부의 몰골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흥부는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로 기적같은 대박이라도 터졌지만 한국의 지방정부는 10년 가뭄에 하늘만 쳐다보는 처지에 있게 되었다.

동북아시아와 태평양의 관문을 생각한다면, 누가 보더라도 인천쪽보다는 포항쪽이며, 통일한국을 내다본다면 이북의 원산 함흥 청진 라진, 나아가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를 거쳐 시베리아 대륙횡단철도로 바로 연결될 수 있는 이점이 있지 않은가? 포항을 중심으로 한 영일만 일대는 국제적 항만으로서도 천혜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한국의 시드니로, 샌프란시스코로, 또는 한국의 함부르크로 불러도 손색없을 국제적 항구가 될 수 있는 곳이다.

동북아물류중심의 관문을 영일만 일대에 둔다면 국토 균형발전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질 것이다.

그런데도 지방화시대를 말하면서 중앙의 비대화만 가속시키는 국가발전계획에 지방민은 그저 허탈할 뿐이다.

오늘날을 대표하는 시대적 화두는 지방화와 세계화일 것이다.

한국은 지방화에도 세계화에도 그렇게 성공한 것 같지 않다.

88올림픽을 치르고, 월드컵을 유치, 4강에까지 올랐지만 우리앞에 남겨진 것은 무엇인가? 우리의 의식과 행동이 세계적 기준에 다다르고 '세계속의 한국'이 제대로 자리잡을 때 세계화가 이루어지며, 중앙과 지방의 격차가 해소되어 진정한 '지방의 시대'가 열릴 때 지방화가 이룩되었다고 할 수 있다.

비록 지방분권화가 이루어져 지방화시대가 열린다 하더라도 모든 지방이 획일적인 모습이 되어서는 안된다.

이는 진정한 의미의 지방분권도, 지방화도 아니다.

지방마다 특색이 있고 이는 그 지역의 고유한 풍습과 문화에 배어있는 것이다.

지방분권중에서도 특히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문화분권이다.

서울중심의 문화가 한국을 대표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지방에, 지역에 묻혀 있는 한국인의 숨결이 묻어 있는 문화가 순수한 한국문화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문화의 원형을 바탕으로 하여 지방분권화가 이루어질 때 지역마다 특색있는 '얼굴있는 분권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

경북지역은 전국 문화재의 27%를 보유하며, 신라, 가야문화는 말할 것도 없고, 불교와 유교·선교 더나아가 근세 동학사상에까지 한국문화의 원류를 이루고 있다.

특히 경주는 세계 10대 문화역사적 고도에다 3개의 세계문화유산( 석굴암, 불국사, 남산)을 갖고 있는 역사적 명승지이다.

경상북도가 세계적 역사 문화의 도시 경주에서 세계 최초로 '문화'라는 패러다임을 갖고 '세계문화 EXPO'를 개최한 것은 문화분권이 절실히 요청되는 시기에 '얼굴있는 지방분권'의 선도적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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