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상원기자의 오징어 채낚기잡이 체험

사람이 물위를 걸을수 있을까? '물위를 걷는 여자'라는 책제목을 떠올려도 어림반푼어치도 없는 말이다.

그러나 걸을 수는 없어도 생활할 수는 있다.

뱃사람들이 그렇다.

그들은 육지생활보다 바다생활에 더 익숙해 보인다.

그들은 긴 항해끝에 육지에 내리면 '땅멀미'를 한다

배멀미든 땅멀미든 일단 뱃사람들의 생활을 체험해보기로 했다.

마침 동해안에는 오징어떼가 형성돼 오징어잡이배들이 한창 신이 나 있다.

10월 8일. 드디어 오징어채낚기선에 오른다.

구룡포 포구에 정박중인 오징어채낚기선을 보기만하다가 직접 승선한다고 생각하니 긴장감이 몰려온다.

◈"고생 좀 할 겁니다"

"고생좀 할겁니다". 해경 구룡포파출소 이만수 소장의 걱정어린 말도 들은 듯 만듯 배멀미에 대한 두려움이 온몸을 휘감는다.

더구나 이 소장으로부터 승선하게 될 배가 9.7t의 작은 배라는 말을 듣는 순간, 겉으로는 태연한 척 했지만 속으로는 '이제 죽었구나'라는 생각이 머리를 떠나지 않았다.

오후 4시 배위는 출항을 위해 얼음을 채우고 오징어를 담을 스티로폼 상자를 싣는 등 출항준비가 한창이다

승선을 기다리며 날씨를 살폈다.

물결이 잔잔하고 하늘도 파랗게 맑다.

다행히 초보자의 눈에도 조업하기에 딱 좋은 날씨같다.

"배멀미는 안하능교?"

타고 나갈 오징어채낚기선 해양6호의 선주이자 선장인 김원철(41)씨가 멀미여부부터 확인한다.

배를 타면 그만큼 배멀미로 고생을 심하게 하기 때문이리라.

출항 준비가 모두 끝난 오후 4시10분. 마침내 배에 올랐다.

갑판에서 분주하게 움직이는 4명의 선원들을 지나 선장이 있는 조타실로 향했다.

두사람이 들어서면 꽉 차는 좁은 공간이다.

◈"배타고 1시간35분만에…"

서서히 배가 움직이기 시작하고 어머니 젖가슴같은 파도가 몽글몽글 밀려올 때마다 배는 가볍게 출렁인다.

출항한 지 1시간35분만에 조업구역인 구룡포 동방쪽 20km 해상에 닻을 내렸다.

닻을 내리기가 무섭게 파도에 배가 심하게 요동치면서 덩달아 속이 울렁거린다.

메스꺼움이 마침내 목구멍을 타고 오르고 시원하게 게워냈다.

정신이 아득해진다

6시쯤 김치찌개와 멸치볶음 등이 준비된 저녁식사 시간. 모두들 흔들리는 배에서 잘도 균형을 잡고 맛있게 먹지만 한숟갈 뜨자마자 속이 거북해져 포기하고 말았다.

'차라리 그냥 버티자'.

순간 70개의 집어등이 불을 환하게 밝혔다.

어느새 대낮으로 변하고 다른 배들의 집어등도 켜지면서 한순간에 바다는 수정을 뿌린듯 반짝거린다.

오징어를 잡는 자동조상기가 부지런히 바닷속을 들락거렸다.

선원들도 수동채낚기를 바닷속에 드리웠다.

초저녁 탓인지 아직 입질이 없다

"조업지를 이 곳으로 정한 이유가 있나요?"

"한마디로 투기지. 어차피 오징어떼는 형성돼 있으니까 낚싯줄을 넣어보고 물리면 계속 조업하고 아니면 딴 곳으로 배를 옮겨야지".

◈"위치잡기 투기입니다"

선장의 선택이 옳았기를 빌었다.

오후 8시 도저히 멀미를 참을 수 없어 선실에 누워버렸다.

일 욕심도 체면도 생각할 때가 아니었다.

시간이 지나고 속이 진정되고나자 갑판에서 울리는 조상기 돌아가는 소리가 다시 들린다.

다시 갑판으로 향했다.

오징어가 벌써 갑판에 수북하다.

잡혀 올라오면서 놈들은 마지막 저항이라도 하듯 "찍~찌익"거리며 분비물과 먹물을 뿌려댄다.

온몸에 분비물과 먹물이 튀었다.

"오징어는 불빛을 쫓아다니기 때문에 집어등만 켜 놓으면 미친듯이 달려들어".

그랬다.

놈들은 불빛에 완전히 미쳐있었다.

불나방처럼 자신이 불빛에 홀린듯 몰려든다.

덩달아 갈매기도 오징어 사냥에 신이 난 듯 날아다닌다.

한밤중 바다 한가운에서 벌어지는 전투다.

뺏다시피 선장으로부터 채낚기를 건네받아 쥐었다.

미끼도 달지 않은 낚싯줄을 바닷속으로 던져 넣고 서툴지만 힘차게 챔질을 몇번했다.

'팽팽…'.

◈말걸기 무서울 정도로 분주

육중한 느낌과 함께 낚싯줄을 끌어올리자 암갈색의 오징어가 모습을 드러내며 갑판으로 나뒹군다.

30㎝는 넘을 것 같은 큰 오징어다.

처음 맛보는 재미에 쉴 틈도 없이 연신 낚싯줄을 끌어올린다.

물반 오징어반. 선원들의 손놀림도 바빠졌다.

말을 걸기조차 무서울 정도다.

그들에겐 오징어가 바로 '돈'이자 '삶'이기 때문이다.

"오징어 잡아서 애들 공부 다 시켰어. 오징어가 돈이지".

김씨 아저씨의 말에 지나온 삶의 흔적이 묻어난다.

선장은 오늘 어획예상량이 250상자라고 했다.

한 상자에 20마리니까 5천마리의 오징어를 잡아야 목표를 채울 수 있다.

1인당 1천마리를 잡는 셈이었다.

지금까지 9일째 조업중이니까 벌써 4만여마리의 오징어를 잡았다.

"오늘은 예상량보다 많이 잡겠는 걸".

◈"이놈이 우리 애들 공부 시켰죠"

최씨 아저씨가 어황이 좋다며 흐뭇해했다.

선원들은 자신들이 잡은 오징어에서 상자값과 얼음값을 뺀 이익금을 선주와 반씩 나눠 가진다고 했다.

많이 잡을수록 그만큼 수익이 좋다.

오징어 잡는 재미에 흠뻑 빠져 좀 나아졌나 했던 멀미가 새벽 2시쯤 다시 시작됐다.

빈속인 탓에 더 이상 게워낼 것도 없는데…. 배도 고프고 다리까지 후들거린다.

빨리 아침이 오고 배에서 내렸으면 좋겠다는 생각 뿐. 갓잡은 오징어로 회를 떠 먹고 있던 선원들이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었다.

먹고 싶은 마음이야 간절하지만 도무지 속에서 받아주지 않는다.

새벽 5시쯤 되자 선원들은 잡아놓은 오징어를 얼음이 채워진 상자에 옮겨 담는다

비릿한 오징어 냄새가 진동하지만 그냥 있을 수 만은 없는 일. 오징어 상자 쌓는 일을 거들었다.

어깨가 뻐근해진다.

처음 예상보다 많은 350여 상자가 쌓였다.

대풍이다.

선원들 표정도 밝다.

오전 6시 모든 작업이 끝나고 선장은 키를 구룡포항으로 돌렸다

붉게 떠오른 태양아래 넘실대는 파도와 함께 배는 미끄러지듯 항구로 내달렸다.

주변 채낚기선들도 모두 만선인듯 귀항이 가볍다.

주변 배와 무선교신을 하는 선장끼리의 대화에도 만선의 만족감이 묻어난다.

◈만선 기쁨 싣고 항구로

오전 7시40분. 밤새 그리워하던 구룡포항에 닿았다

먼저 온 배들이 오징어 상자를 내려 놓느라 바쁘다.

우리도 한줄로 늘어서 오징어 상자를 방파제에 내려 놓았다.

만선의 기쁨 때문인지 육지를 밟은 기쁨 때문인지 팔이 아픈 줄도 모른다

350상자가 순식간에 옮겨졌다.

마지막 상자를 내려 놓고 하룻밤을 함께 지샌 선원들과 작별 인사를 나눴다.

억세고 투박한 손. 삶에 대한 그들의 열정이 진하게 전해온다.

포항.이상원기자 seagul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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