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백두대간 종주 3번째 행군이다. 11월 15일부터 한달간 지속된 산불방지 입산금지 조치때문에 빼먹고 건너 뛰었던 지리산 장터목산장에서 성삼재까지 구간이다. 지리산 종주노선의 핵심길이다. 연말이라 동창회등 4개의 중요한 모임이 있었지만 고민할 필요도 없이 가볍게 포기했다. 그만큼 백두대간 종주는 이제 나의 인생에 전부가 되어가고 있었다. 시쳇말로 "인생 걸었다". 또 "목숨 걸었다". 그런데 백두대간 종주하면 밥이 나오나, 떡이 나오나, 돈이 나오나. 아직도 무식한 소리하는 사람있구만. 이헌태의 백두대간종주기를 읽어보지 못했구먼. 다시 설명하면 입 아파요.
후한 인심 써서 딱 한가지만 가르쳐 드릴께요. 현대인의 필수조건인 건강때문이죠. 건강은 마누라,자식,돈,권력보다도 더 중요해요.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게 끝나니까. 귀가 쏠깃하죠. 그런데 제 주위에 저 놈은 죽을 때까지 운동이라고는 숨쉬기운동만 할 뿐 다른 운동은 전혀 하지 않을 것같은 놈들이 요즘 조깅하고 헬스클럽에 가고 난리에요. 제가 생각하기에는 단군이 나라를 세운 이래 이렇게 온 국민들이 '자기몸 돌보기'에 들어간 것은 처음이라고 보는데. 풍이 너무 센가요. 사실입니다. 이렇게 건강관리에 들어간 이유가 뭔지 아세요. 슬퍼요. 무슨 소리냐 하면 이 무한경쟁시대에 믿을 수 있는 건 몸뚱아리 밖에 없기 때문이래요. 무한경쟁시대가 뭐길래. 인류의 원수. 무찌르자, 오랑캐가 아니고 무한경쟁시대. 귀신은 그거 안 쫓아내고 뭐하나. 리니찌 게임에 열중하나.
어제 회사근처 길거리에서 '전주 벽소령이 드디어 서울입성'이라고 큼직막하게 쓰인 전통한정식집 소개 전단지를 받았다. 이번에 일박할 곳이 바로 지리산 벽소령 휴게소다. 참 우연치고는. 한국의 심장부, 강남이 나의 지리산 종주를 이렇게 주목하고 격려하고 있다니. 잘도 갖다 붙이기는. 그런데 그 식당 음식맛은 어떨지.
이번 산행은 총 13명으로 3진으로 나뉘어졌다. 1진은 20일 저녁 7시 서울출발, 2진은 21일 오후 3시 출발, 3진은 오후 7시 출발. 1진은 장터목에서 성삼재까지 완주를 하고 2진, 3진은 장터목에서 벽소령까지는 빼먹고 벽소령부터 성삼재까지 걷기로 했다. 건너뛴 부분은 나중에 개인적으로 채우기로 했다. 나는 당연 1진. 하늘이 두쪽 나도 백두대간 종주는 한치의 오차도 없이 퍼펙트로 종결해야지. 어찌 1미터라도 빠질 수 있나.
"하늘이 두쪽 나도 이번 대선에서 이겨야 한다"는 이회창 한나라당 대통령후보의 부인인 한인옥씨는 선거에 지고 뭐하는 지. 노무현 민주당후보가 이겼는데도 하늘이 두쪽 나기는 커녕 요란한 쾅쾅소리도 없이 멀쩡했으니. 앞으로 정치하시는 분이든 누구든 하늘 갖고 장난치지 맙시다. 하늘은 아직도 신비와 경외, 지존 아닙니까. 선거에 떨어져 상심해계시는데 미안합니다. 하늘에 맹세코 악의는 없습니다. 잉. 하늘 갖고 장난치지마.
1진인 나와 허정균 선배와 심상준 선배 3명은 오후 7시에 동서울 고속버스터미날에서 버스를 타고 중부고속도로, 대진고속도로를 거쳐 지리산IC를 빠져 나와 저녁 10시 40분쯤 함양군 마천면소재 백무동계곡 입구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지리산턱밑까지 바로 가는 이렇게 좋은 교통편이 있을줄이야. 지리산이 자신을 부른다는 느낌이 들 때, 너무 문학적인 표현인가. 기분이 멍할 때나 우울하거나 외롭거나 또 가족이나 친구와 동행하고 싶을 때 등등등의 상황일때는 바로 동서울 고속버스터미날로 갑시다. 버스에 몸을 싣기만 하면 명산 지리산에 오를수 있습니다. 제가 백무동행 버스홍보맨이었습니다. 잉. 차라리 지리산홍보맨으로 정정하겠습니다. 그게 더 낫지. 불쌍하고 무미건조하게 사는 대다수 서울사람들에게 인생의 기쁨을 맛보는 방법을 알려주었으니 나는 상받아야 돼. 암. 자랑스런 서울시민상중에서 특히 '행복제공상' . "위 사람은 백두대간 종주기를 통해 대한민국 국민들 특히 서울시민들이 돈안들이고 행복한 삶을 살도록 하는 방법을 알려주었으므로 감사의 뜻을 전합니다. 서울시장 이명박 "
버스안에 설치된 TV뉴스를 보면서 지루하지 않게 내려왔다. 좋은 세상이야. TV에서는 전날 16대 대선에서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당선자의 소식으로 한시간가량 할애했다. 노당선자를 적극 밀었던 민주당의원조차도 '기적'이라고 말했다니. 내가 봐도 이것은 기적이었다. 노후보가 대통령이 당선되리라고는 역사적인 민주당경선대회전, 1년전에 추측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노당선자님은 진짜로 대통령된다고 생각하셨나.
여러분. 놀라실만한 얘기한번 해드릴까요. 1년전 신문이나 방송 기사 한번 뒤져보세요. 노무현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다는, 아니 될 수도 있다는 기사가 있는지. 다시보면 황당하기 짝이 없는 쓰레기 기사일겁니다. 당시에 이들 기사들보고 얼마나 많은 대화를 나누었습니까.지금 생각하면 헛소리, 입만 아픈 얘기였죠.
아셨습니까. 우리나라 일류대학 졸업생들이 가득찬 지성의 결정체, 보고인 언론의 수준을. 그런데 언론탓만 할 수 없어요. 어떻게 보면 국민들의 마음도 자주 변하거든요. 언론욕을 하다니, 이헌태 니나 잘해. 잘못하면 찍혀서 매장당해. 그러면 결론은 두리뭉실하게 낼께요. "우리나라는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기상천외한 나라로 임명합니다" 그러면 언론도 살고 국민도 살고 나도 살지. 킥킥킥
노무현당선자를 생각하면 중국의 '풍도'가 생각나요. 정반대의 인물이죠. 풍도는 서기 900년쯤 5대10국시대에 다섯왕조를 섬기면서 20여년간 재상을 지낸 인물입니다. 처세의 달인이었습니다. 나도 그렇게 하고 싶은데 잘 안됩니다. 존경합니다. 농담. 그런데 이 사람도 국민의 민생에 그렇게 관심이 많았고 노력도 많이했데요.
어쨌든 노무현후보는 정치를 입문시켜준 김영삼전대통령의 민자당합당에 김정길씨와 단둘이 따라가지 않았다(아부같지만 지금보면 안따라간 게 맞지. 노태우씨와 이를 원수처럼 미워했던 김영삼씨의 결합은 말도 안되지). 우리식으로 얘기하면 철저한 반항아였죠. 역사의 비주류중의 비주류. 끝자락, 가장자리 비주류였죠. 그런 사람이 역사의 주류가 아니라 주류의 한가운데에 섰다는 것입니다. 주류측의 시각에서 보면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천지개벽이죠.
천하의 이빨인 이헌태가 노무현대통령 탄생을 앞두고 그냥 지나칠 수가 없죠. 다들 알고 계시지만 제가 볼 때는 노후보의 대통령당선은 인터넷때문이에요. 인터넷이 몇 년만 늦게 보급되었어도 노무현정권의 출범은 기대할 수 없었죠. 따라서 노무현후보는 인터넷을 만드는데 기여한 사람들에게 무조건 잘해야합니다. 그런데 누가 이런 것을 만들었어요. 인류역사를 획기적으로 바꾼 사람들이기 때문에 꼭꼭 기록해두어야 해요. 외국사람이든 한국사람이든.
인터넷발명은 사람이 말을 통해 의사를 교환하고 문자를 만들어 책으로 기록을 남기면서 살아온 인류의 문명사에 엄청 획기적인 대사건이죠. 구술문화에서 문자문화로 가는 분기점에 플라튼이라는 서양철학의 시조가 있었고 보편적 진리에 대한 탐구도 시작되었다고 볼 수있지만. 인터넷은 구술문화와 문자문화가 혼합되는 양상입니다.
이번 노무현 정권탄생의 뒤에는 20대,30대가 있다고 하는데 제가 보기에는 인터넷이 있었죠. 인터넷의 핵심은 정보의 공유죠. 이제 정보의 통제로 인한 비밀유지가 불가능합니다. 막무가내와 어거지가 통하지 않습니다. 토론의 광장에서 왕창 깨지죠.
저는 사실 다소 늦게 알았습니다. 배칠수의 '엽기 DJ'파일아시죠. " 어이, 조지 부시. 나여. 자네가 팔것다고 한 그 F15인가 하는 자전거 있잖혀.---그러면 쪼까 곤란허지.---머여? 이 잡것이.?야, 이 XXX야.?" 부시미대통령이 어거지로 전투기를 팔려고 하자 김대중대통령이 한 얘기였죠. 그때 1천만명이라는 어마어마한 사람들이 인터넷을 통해 들었다나요. 그때 저는 혁명이 시작되었구나를 느꼈습니다. 이제 미국도 세계의 대장노릇하기 힘들겠구나. 합리적으로 설득해야지 대장질 할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미군탱크여중생사망추도 촛불시위도 마찬가지고요. 이름없는 짱이 제안하니 바로 요원의 들불처럼 번지잖아요. 이게 바로 인터넷의 위력이었습니다. '다영웅의 시대'라고나 할까.
인구의 절반인 20대, 30대의 감성을 노무현후보가 읽었다고 볼 수 있죠. 20,30대는 "나는 느낀다. 고로 행동한다"는 감성세대라면서요. 이회창후보보다는 노무현후보가 더 가깝게 다가왔다고 볼 수 있죠. 그런데 우리가 알아야하는 것은 노무현후보, 그의 인생역정과 삶의 과정에서 보여준 소신과 원칙, 친구 같은 친근감 이것에 공감했다는 것이지, 그분의 국가경영능력까지 검증하고 지지해준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이 대목은 노무현대통령당선자가 경계해야할 부분입니다. 언제라도 20대,30대는 돌아설 수 있는 유연한 세대들이기 때문입니다.그런데 이들을 만나보니 노무현후보에게 목숨걸고 있지는 않데요. 그정도 멍청하지는 않다고 해요. 짜식들 어른들 갖고 놀구 있구먼.
제가 알기로는 20,30대는 어떻게 하면 좋은 직장에서 근무하며 어떻게 하면 문화생활을 잘 영유할까에 관심이 많은 세대들입니다. 20,30대 인구가 전체인구의 절반이라면 어떤 정치인이라도 앞으로는 이들에게 잘보여야 할 것입니다. 이들의 눈치를 봐야할 것입니다. 더럽고 치사해도요. 다음 17대 대선에는 머릿수를 믿고 혹시 30대 대통령후보가 출마하는 것은 아닐까. 하여튼 20대, 30대 머릿수가 많다고 너무 자만하지 맙시다. 잘못하면 새뮤얼 헌팅턴이 주장한 '문명충돌론'이 아니라 '세대충돌론'으로 세상이 시끄러워질 테니.
20대, 30대 세대여러분. 영향력이 클수록 더 잘해야지. 당신들이 저지런 세상 , 끝까지 감시하고 잘되도록 노력해주세요. 그런데 20대,30대 얘들이 똑똑은 하더구먼. 지난번 월드컵때 붉은 악마들이 만든 구호를 보니 하나같이 감동적이더구만. 대한민국 모든 조직의 장들을 20,30대로 임명할 것을 제의합니다. 올해 모 정치인이 쓴 유행어인 "아니면 그만이구 "의 사촌, 이들을 발탁해서 실패하면 그만이구.
그런데 인터넷을 애용하는 젊은 세대들의 도덕성은 어느 정도일까. 자못 궁금하다. 사회와 이웃을 위해 어느정도 자원봉사를 하나, 자기재산을 사회에 환원할 각오가 되어있나, 그것만 있으면 '완벽세대'인데. 기성세대들과 차이가 날는지. 좀 더 지켜보겠습니다. 기성세대보다 못하기만 해봐라. 확.
두가지 애기를 하겠습니다. 하나는 제가 기자시절 미국에 갔다가 깜짝 놀란 일입니다. 미국에 가보니 공원과 다리, 도서관에 기증자의 이름이 참으로 많았습니다. 미국이 마약과 섹스, 총기난동,인종갈등으로 곧 망할 것 같아도 그렇지 않은 이유를 알았습니다. 재산의 사회환원과 자원봉사라는 큰 버팀목이 있었기때문이었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잘사는 사람들이 나쁜 짓을 해서 불가피하게 사회에 재산을 헌납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순수한 의도의 재산사회환원은 극히 드물고 대다수가 삯바느질할머니 같은 가난한 할머니들의 눈물어린 사연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래서 제가 미국에서 귀국한뒤 상사에게 "사회에 재산을 기증한 사람은 동상을 세워주든지 다양한 방법으로 무조건 영웅으로 만들어주어 그 같은 선행을 권장하자"고 아이디어를 낸 적이 있다. 그런데 그 상사의 대답이 너무 싱거웠습니다. "우리도 그런 분들에게 애기를 다했다. 그런데 그분들이 뭐라고 하냐하면 '내가 어떻게 해서 번 돈인데' 라는 것과 '내 새끼는 어떻게 해'라는 두가지 대답을 한다" 면서 손사래를 친다. 철저한 자기소유의식과 피붙이 혈육의식이다. 이것이 사회를 얼어붙게하고 갈등하고 분열시키는 것이다. 그래 사는게 행복한게 아닌데 바보들. 하여튼 내새끼, 내마누찾다가 나라 망하지. 언제 세계속에 우뚝선 한국을 만들려는가.
다음 다른 얘기 하나 더. 제가 알고 있는 박영숙 주한 호주대사관 문화공보실장님은 수양부모협회장인데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국의 나눔 문화는 아주 저급한 수준입니다. 즉흥적이고 과시용이죠. TV 프로그램에서 하는 ARS 기부전화가 우리 수준에 딱 맞는 기부 형태일 겁니다. 전화 한통 하고 뒤돌아서 버리면 되니까요." 박회장에 따르면 유럽은 기부와 봉사가 생활화되어있다는 것. 영국의 경우, 인구 5800만명중 1500만명이 풀타임 자원봉사자이고 어딘가에 정기적으로 기부금을 내는 사람이 전국민의 70%이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선진국경제모임인 OECD국가중에서 재산의 사회환원과 자원봉사활동이 가장 작은 나라가 한국이다.
"자기만 잘 먹고 잘살면 결국 모든 국민이 잘 살게 되지 않을까". 한사람씩 잘 되어가지고 온 국민이 잘 되자는 논리인데 어떠세요. 황당한 논리죠. 그런데 저것은 일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집집마다 자식 인간 되도록 다 잘 가르치면 좋은 세상이 된다는 것". 전가정의 전인교육화. 사실 저도 가장노릇은 시원찮아도 자녀들한테는 "혼자 잘 살려고 하지말고 나중에 돈없고 불쌍한 사람 많이 도우라"고 열심히 가르쳐요.
나는 확신한다. 똑똑하고 부지런한 민족이라서 망하지도 않겠지만 이같은 재산의 사회환원과 자원봉사 문화가 없이는 절대로 나라가 잘 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 민족은 어찌보면 착한 민족같기도 하고 어찌보면 못된 민족같기도 하고. 헷갈린다. 웃기는 코미디민족이지뭐. 국민여러분, 나쁜 것을 좀 고칩시다. 행동으로 보입시다. 니나 잘해. 죄송합니다. 저도 그렇고 앞으로 모두가 조금씩 노력합시다.
인터넷세대 얘기하다가 삼천포로 빠졌네요. 그런데요. 미래학자들의 분석에 따르면 유럽이나 일본등 선진국의 경우 30년후만 되면 성인의 절반이 65세이상이랍니다. 출산율이 1.3%정도로 도대체 얘를 놓지는 않고 수명은 자꾸 길어지니까요. 길거리 지나가는 성인의 반이 노인이라는 것입니다. 10년안에 혁명적 의료기술의 발달로 큰 병은 대충 치료가 된다고 합니다. 10년만 버티고 재수 없이 안죽으면 100살까지 사는 세상이 된다는데.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재혼은 보통이고 삼혼, 사혼도 나올려나. 그것보다 누가 노인들 먹여 살리나. 보통 문제가 아닐텐데. 고령화는 경제대국이 항해하다가 만나는 거대한 빙산암초와 같다고 한다. 30년후에는 노인들이 주축이 되는 연금당이 큰 정당이 된다고 한다.
내가 뭐하러 걱정하나. 또 걱정도 팔자지, 해결사가 등장하겠지 뭐. 정부에서 죽어야하는 사람 명단 만들고 혹시 내보고 죽으라는 얘기는 하지 않겠지.
하기야 극우정치인인 이시하라 도쿄도지사는 벌써 망언을 했더라구요. "문명이 가져온 가장 유해한 것은 할멈이고 여성이 생식능력을 잃으면서도 살아있는 것은 죄이며 100살까지 사는 것은 지구에 심각한 폐해"라고요. 미친놈이구먼. 아시다시피 일본은 노인이 너무 많아 망하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다면서요. 이시하라 도지사의 발언은 일본이 그만큼 노인문제로 골치가 아파지기 시작했다는 반증이 아닐까요. 일본의 동향을 예의 주시합시다. 배우자는 게 아니고 어떤 현상이 벌어지는 지. 타산지석이라는 말 아시죠.
사실 지금 유럽에서는 노인들의 연금문제가 큰 사회이슈가 되고 있고 일부국가는 노인들의 입김이 대단히 세다고 합니다. 20,30대가 파워가 커지다가 갑자가 쪼그라들라나. 어쨌든 중요한 것은 현실. 20,30대세대가 검은 선그라스를 쓴 혁명군에 틀림이 없습니다.
결론을 내릴께요. 노무현정권의 탄생은 한국사상 최초의 문화대혁명입니다. 지난 60년대 프랑스에서는 학생운동이, 중국에서는 문화대혁명이, 미국에서는 반전운동과 히피족이 그 나라를 휩쓸었습니다. 그 숨막히는 관료시스템과 권위주의을 깨기 위해 청년들이 일어선 것입니다. 수많은 희생이 뒤따랐고. 그런데 한국에서는 인터넷을 통한 20,30대가 이를 쉽게 깨부숴버렸다. 거창한 내 해석에 얼마나 동조할 지. 그냥 넘어가겠습니다.
그런데 중국에서는 문화대혁명을 거치면서 제자가 스승님하고 함께 맞담배피운다던데. 그것은 내가 생각해도 좀 심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제가 기자시절 중국을 방문했을 때 장쩌민 중국국가주석이 말단직원하고 어깨를 치며 담소를 나누는 것은 너무 인상적이었습니다. 어쨌든 이제 과거식의 카리스마적 독재자 및 백성군림형의 권력자는 역사의 전면에 나타나기 어렵다고 봐야죠. 인터넷 때문에. 권위주의의 안녕. 역사책으로 사라져라. 빠이빠이.
그리고 노무현대통령당선자도 잘 하세요. 제일 존경한다는 링컨 미국 대통령도 똑같이 제16대대통령이고 얼마전 역대대통령평가에서도 링컨이 1등이 나왔더라구요. 그렇게 되세요. 백두대단종주기에 개인적 설이 심해서 죄송합니다.
우리 일행 3명은 함양군 마천면 백무동 버스정류장에 내려 바로 앞에 있는 인터넷으로 예약해둔 느티나무 민박집에서 하루를 묵었다. 손님은 우리 밖에 없었다. 저녁식사는 그야말로 일품이었다. 소고기 같은 촌돼지고기, 기가막힌 동치미국물, 땅속 장독속에서 나온 김장김치, 신라호텔에서 제일비싼 음식보다 더 맛있었다. 예전 생각이 났다. 나 어릴때도 김치하나만 있어도 밥이 술술 넘어갔는데 요즘은 진수성찬이라도 맛이 없으니. 아!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 인간의 탐욕과 식욕이 넘치면 넘칠수록 더 인간은 그 만족에서 멀어지니. 참으로 이상하다.
셋이서 새벽 1시까지 술을 마셨다. 그런데 이 집 물맛. 정확히 지리산물맛이 기가 막혔다. 배속의 고통스런 술독도 완전 죽여버렸다. '수극주'라고나 할까. 착한 마음이 나쁜 마음을 이기는 것. '선극악'. 물한컵 들이키고 속이 편안해지자 말도 잘 만든다. 요즘 나는 시도 때도 없이 철학자가 된다. 철학자님 죄송합니다.
이 집 곳곳에 느티나무가 심겨져 있어 지어진 느티나무집은 1천5백평정도 넓지막하게 자리잡고 있었다. 지금은 우리나라의 대표나무가 소나무이지만 사실 조선시대 이전에는 느티나무였다고 한다. 친근한 느낌은 느티나무가 더 좋은 것같아요. 고려 부석사 무량수전의 기둥16개도 느티나무라고 하네요. 느티나무를 사랑합시다.
앞마당 한켠의 재래식 화장실에서는 산이 정면에서 보여 너무 멋졌다. 화장실을 극찬하다니. 나중에 들은 얘기인데 세석평전 화장실에서는 촛대봉이 오롯이 보인데요. 거기서 앉아 있으면 화장실에 온 걸 잊는다구요.
사실 요즘 아시안게임과 월드컵행사등을 거치면서 한국의 화장실이 훨씬 깨끗해지고 고급스러워졌다. 어떤 회사는 화장실을 호텔처럼 치장했다고 하네요.화장실에서 좋은 구상을 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은 모양이다. 송나라 인종때 대단한 독서광인 전유연은 "앉아서는 역사를 읽고 누워서는 소설을 읽고 측간에 가서는 시를 읽었다"고 했고 당시 중용된 송수는 화장실에 갈 때 꼭 책을 갖고 갔으며 글읽는 소리가 바깥까지 들렸다고 한다.
송대 문집 귀전록을 지은 구양수도 이 문집을 화장실에서 구상했으며 좋은 아이디어를 떠오를 수 있는 3곳은 삼상이라고 하여 마상, 침상, 측상이라고 했다. 중국의 유명한 수필가 임어당은 "기발한 생각은 차렷자세를 하고 있을 때에는 생겨나지 않는 법이다. 인류의 역사를 바꾼 새로운 생각들은 아마도 대부분 화장실에서 떠올랐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나는 조간신문은 화장실에서 주로 보며 간혹 시집을 갖고 갈 때가 있다. 아항. 옛날 사람들도 그랬구나. "화장실을 제2의 독서실로 임명합니다"
국민여러분. 화장실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내어 잘사는 선진국을 만듭시다. 앞으로 화장실에 메모지를 놔둡시다. 이런 얘기를 하고 있는데 유영래선배 왈. "화장실에서 자꾸 딴 생각하니 항문의 기능이 저하되어 각종 병이 생긴데, 본기능인 똥누는데 신경써 "라며 찬물을 끼얹는다. 그럼 각자 알아서 삽시다.
보너스. 당나라때 임제종을 확립한 임제선사는 "당신의 명상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을 받고 "나는 먹을 때는 먹은 일에만 전념하고 잠을 잘 때는 자는 일에만 전념하고 걸을 때는 걷는 일에만 전념한다"고 대답했다고 하네요. 베트남의 틱낫한스님이 여기서 배웠구나.
느티나무집은 앞으로는 백무동 큰 계곡이 내려오고 옆으로는 작은 계곡이 흘러서 만나는 곳에 위치해 있어 그 풍경이 너무 아름다웠다. 허름한 집을 개조하면 한국최고의 별장이 될 수 있는 위치였다. "아줌마는 전생에 무슨 일을 해서 이런 좋은 데서 살아요"라고 부러워한 뒤 "이 넓은 집의 가치가 얼마쯤 해요"라고 묻자 주인 아주머니 왈 " 돈으로 따지면 여기 사는 의미가 없어요"라며 또한명의 '아줌마철학자'를 만났다. 요새는 철학박사자격도 없는 고고한 철학자들이 너무 많아. 자격증소지 철학자들은 허황한 소리만 하고.
늦게까지 술을 마시며 이런 저런 담소를 나누다 잠이 들었다. 다음날 아침 8시쯤 일어났다눈뜨자 황홀경 그 자체였다. 별유천지 비인간의 무릉도원이었다. 느티나무집앞의 풍경이 휑한 겨울을 담아낸 담백한 수묵화였다. 계곡도 훨씬 아름다웠다. 아줌마에게 부탁해 대충 차려진 밥과 반찬으로 요기를 때웠다. 된장 시레기국과 김치가 일품이었다. 늘 하는 말. 촌사람들 맛있는 것은 저거들끼리 다먹고. 나쁜 사람들.
9시쯤 장터목을 향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산초입부터 갈색으로 색칠한 산에서 싱그럽고 풋풋한 산죽과 대나무가 우리일행을 영접했다. 산죽은 1500미터 고지에도 독야청청, 약방의 감초처럼 산의 감초였다. 조릿대라고 부르는 사시사철 푸른 산죽은 대나무일종인줄 알았는데 벼과였다. 아 그렇구나. 사람은 자만하지말고 겸손하게 자꾸 배워야 돼.
이날 산행은 포근한 날씨속에 여유있게 자연을 음미하면서 걸었다. 낙엽들이 갈색으로 헤져서 너들너들해졌고 퇴비화되고 있는 것 같았다. 더러는 산산조각나서 흙으로 돌아가기 일보직전이었다. 낙엽을 보면서 자연의 순환을 생각했다. 생과 사, 자연으로 돌아가는 무위를 생각했다. 또 철학 시작했군. 누가 좀 말려. 알아서 멈추겠습니다. 산행을 느긋하게 가야하는 이유를 알았다. 전혀 거들떠 보지도 않았던 나무에 난생처음으로 집중적인 관심이 가졌다,
나무젓가락처럼 가늘고 길다란 고추나무, 야한얘기 또 연상시킨다. 대나무처럼 하늘을 찌르고 있는 층층나무, 껍질이 물에 젖은 후에도 타, 꼭 산에서 불 쬘 필요가 있을 때 알아두어야하는 거제수나무, 역시 늠름한 굴참나무, 해발 1500미터 이상 고지에서 황토색 흙과 갈색의 숲에서 홀로 푸른옷을 입고 있는 형제지간 침엽수 소나무, 잣나무, 구상나무.
이외에 노각나무, 개비자나무, 개옻나무, 고광나무, 당단풍나무, 서어나무, 고로쇠나무, 박달나무, 까치박달나무, 들메나무, 신갈나무, 느티나무, 산벚나무, 옻참나무, 물푸레나무, 두릅나무, 사스래나무, 나래회나무, 부게꽃나무, 피나무,생강나무, 개회나무, 쪽동백나무, 비목나무, 호랑버들나무, 참회나무, 박쥐나무, 노린재나무, 바위말발도리나무, 귀룽나무, 철쭉나무, 진달래나무, 함박꽃나무, 마가목나무, 병꽃나무, 조선까지밥나무, 싸리나무, 참개암나무, 시닥나무,야광나무등등.
야, 이헌태 니가 어떻게 그많은 나무이름을 다 아냐. "너를 식물학자로 임명합니다". 제가 원래 자연을 사랑하다 보니 식물에 대한 관심이 큽니다. 거짓말하지마. 들켰다. 사실 진주산업대학교에서 자세하게 나무에다가 이름을 붙였놓았더라구요. 고맙습니다. 진주산업대에 영광이 있어라. 제가 산행하면서 적고 또 적었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종류가 많은지.
스님에게서 들은 얘기인데요. 나무도 아픔과 기쁨, 슬픔의 감정이 있고 움직임도 있다고 까지 합니다. 저는 아직 이 말에 완전히 이해한 상태는 아니구요. 그런데 나무는 광합성작용을 통해 인간과 짐승에게 좋은 공기를 제공하는데 왜 인간은 식물을 파괴하느냐며 억울해한데요. 잘해주면 보답은 못할 망정 오히려 죽이려 달려드니. 그 말이 맞다. 도대체 나무가 당신의 적이란 말입니까.
나무를 보호합시다. 인간들이 보통 공기의 중요성을 몰라요. 모르기는 식물의 중요성도 마찬가지. 인간들이 철들 때까지 나무들은 더 기다려야될 걸. 인간들은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뒤에야 깨닫게 될 걸. 그래서는 안됩니다. 인류가 끝날 때 사과나무를 심지말고 망하기 전에 내일이라도 한그루라도 심읍시다. 시몬스라는 시인은 "나무 한그루를 심는 것은 생명에게 '예'라고 대답하는 일이고 미래에 대한 우리의 신뢰를 확인하는 일이다"라고 외쳤다.
우리는 산행을 하다가 나무를 못질하듯이 심하게 쪼아대는 딱따구리도 보았고 참나무에 기생하는 겨우살이 뭉치도 봤다. 까치집처럼 생겼다. 씨앗이 날아와서 참나무나 동백나무등에 안착해서 거기서 또 생명을 잉태하는 식물이다. 참 신기하다. 나무를 먹고 사는 식물이다.'기생목'이다. 나무도 기생이 있네 사람만 있는게 아니고. 엄동설한을 이긴다고 해서 인지 아니면 나무의 영양분을 빨아먹고 겨우 산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인지는 모르겠으나. 겨우살이 이름이 특이하다. 서양사람들은 크리스마스에 집안에 걸어놓고 소원을 빌기도 하고 그 아래 있는 소녀에게는 아무라도 키스하고 청혼한다는 행운의 식물이라고 한다. 한약재로도 사용된다고 한다. 그리고 산죽잎으로 돛단배도 만드는 법을 배웠다. 희망과 꿈을 싣고 물에 띄워보냈으면, 하늘로 날려보냈으면. 모처럼 따뜻한 날씨속에 자연을 만끽했다.
산중턱에 오르니 산밑에 전혀 없는 잔설이 녹지않고 쌓여있었다. 지리산도 꼴에 큰 산이라고. 하동바위를 거쳐 참샘에 도착, 잠시 발길을 멈췄다. 한 등산객이 "오늘 천왕봉 일출과 운해가 너무 아름다웠다"고 연신 흥분했다. 천왕봉 일출은 '3대가 착한 일을 해야 볼수 있다'(삼대적선)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지만 내생각에는 아닌 것 같다. 천왕봉 일출을 본 사람이 너무 많기때문이다. 한국사람들도 중국사람들 닮아 허풍이 보통이 아니구먼. 일출을 보고 난 사람들이 스스로를 선행자라고 치장하기위해 일부러 만든 말이 아닐까. 그 등산객은 10번 가서 4번 봤다고 했다. 일출 볼 확률이 40%. 나도 대학시절 일출을 봤는데 3대가 착한 일을 했나. 아버지와 할아버지는 몰라도 나는 아직 그렇게 착한 일을 안한 것 같은데. 하여튼 그런 말을 만들면 한번이라도 더 착한 일을 하지 않을까하는 그런 의도였겠지. 조상들의 지혜가 엿보인다.
망바위를 거쳐 4시간만에 장터목산장에 올랐다. '살아 백년 죽어 천년'이라고 무상한 세월을 말하는 제석봉 고사목 군락지가 넓게 한눈에 들어왔다. 바로위 지리산의 주봉인 천왕봉도 웅장한 모습을 드러냈다. 지난번에 눈발에 가려 보지 못했다.
연하봉과 삼신봉을 거쳐 촛대봉(1703미터)에 이르렀다. 촛대봉에서 본 지리산은 황홍한 누드쇼를 연출하고 있었다. "비로소 옆으로 누운 지리산 긴 몸둥어리 한꺼번에 보이더라"라는 이성부시인의 표현이 이를 두고 말하는 것이리라.
좌측으로는 저 멀리 운해를 끼고 멋진 여자 젓가슴 (엉덩이로 보는 사람도 있다. 보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달라지겠지. 엉덩이를 좋아하느냐, 가슴을 좋아하느냐) 을 살짝 보여준 반야봉이, 우측으로는 위용을 자랑하는 뾰족한 천왕봉이 또렷이 모습을 드러냈다. 물론 용이 꿈틀거리는 지리산의 산봉우리와 능선과 함께. 그리고 높은 하늘에서는 흰 구름들이 띠를 형성하면서 넓은 지리산을 포위하고 있었다. 지리산의 진면목이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탄성이 절로 나왔다. 잊을 수 없는 촛대봉에서의 지리산의 얼굴이었다.
이어 잔돌이 많아 평원지대를 이루고 있는 세석평전에 도착했다. 철쭉이 필 때면 가히 장관이다. 언제와도 반갑다. 1백년전만해도 구상나무가 울창했단다. 화전과 남획으로 사라졌다가 1960년대 철쭉과 진달래의 작은 나무들로 채워졌다가 최근 다시 보존노력 덕분에 구상나무군락지가 확산되고 있단다. '돌아온 장고'가 아니라 '돌아온 구상나무'다. 그런데 구상나무는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모양이다. 영명이 코리안 펄(Korean fir)이다. 학명은 abies koreana이다. 우리꺼 잘 가꾸자.
환경문제에 대해 한마디. 환경오염과 환경파괴로 믿기지 않지만 일년에 약 3만종의 생물이 멸종하고 있고 심지어 인간의 생존까지 위협을 할 지경으로 전개되고 있다고 합니다. 진짜 심각하게 생각해야되요. 진짜로.
창세기에 보면 하느님이 이 지구를 정성껏 만드셨데요. 그래서 너무 아름답나?. 아담과 이브에게 잘 보존하라고 하셨데요. 그런데 지금 보세요. 이 아름다운 지구가 수십억년 잘 보존 되다가 불과 찰나적 순간인 50년 만에 시궁창이 되었으니. 혹시 2백년 후에 인류가 거주하기 힘들지 어떻게 알아요. 내가 살아 있을 때만 괜찮으면 된다고요. 그러면 편하게 사세요. 나쁜 XX. 요즘 지구오염을 보면 하느님이 보시기에도 한심한 노릇일 것입니다. 자기가 만든 집을 호락질해 놓으면 좋아할 사람이 누가 있나요. 아참, 죄송. 하느님은 신이시죠.
어쨌든 제가 볼 때는 1950년부터 지금까지, 또 앞으로 조금 더 산 사람들은, 다시 말해 이시대에 조금이라도 산 사람은 아무리 착한 일을 해도 연옥정도밖에 못갈 것 같아요. 의도적이지는 않더라도 환경파괴의 공범역할을 했거든요. 만약 의도적으로 환경을 파괴한 자는 큰 벌을 받을 거에요.
르네상스시대 이탈리아 시인 단테의 시 '신곡'에 보면 천국,연옥,지옥갈 사람을 분류해 놓았잖아요. 클레오파트라는 색을 밝힌 죄로 지옥에 갔어요. 그런데 미국의 가장 인기있는 대통령인 케네디대통령은 마누라까지 포기한 희대의 바랑둥이인데 어디로 갔나. 사실 클레오파트라는 이집트마지막 여왕으로 18세에 즉위해서 로마의 영웅 시저와 사랑을 나누고 자식까지 낳았다가 또 시저의 부하였다가 최고대장이 된 안토니우스의 아내가 된 것 뿐인데. 안토니우스를 이기고 다시 최고실력자가 된 옥타비아누스를 꼬실려다가 실패해 39세의 나이에 자살했데요. 일부 사학자는 강대국 로마에 어떻게 하면 약소국 이집트를 살릴 까하는 고민에서 나온 정략적인 접근이라는데 .그러나 단테는 가차없이 지옥으로 보냈데요. 클레오파트라, 나라를 위해 몸을 바쳤는데. 개인적 쾌락도 조금 곁들여서. 좀 봐주지.
근래 기독교와 이슬람의 대결이 한창이지만 예언자 모하메드도 이교도라서 그런지 지옥으로 보냈데요. 알렉산더대왕도 광대한 정복으로 피를 너무 흘리게 해서 지옥행. 그런데 동서양을 통틀어 가장 큰 제국을 만든 징키스칸도 용감하기는 했어도 무자비하게 잔인했다는데 역시 지옥행인가.
그러나 가장 궁금한 것은 환경파괴범은 어디로 갈 것인까. 나는 무조건 지옥일 거라고 굳게 믿습니다. 하느님이 만드신 집을 더렵혀놓았으니. 환경을 파괴하는 인간들에게 준엄한 심판이 있으리라. 겁나죠. 그러니 조심하세요. 저도 환경파괴하지 않도록 노력할께요. 세제 잘 안쓰는 것은 물론 전기를 절약하는 것도 좋데요.
세석평전에는 다양한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중에 눈에 띄는 것은 지질대설명이다. 지리산의 나이를 알 수 있다. 수만년쯤 되었다는데. 지리산의 지질은 제4기, 쥐라기, 트라이아스기, 선캠브리아기로 나뉘어져 있었다. 천왕봉은 홀로 선캠브리아아기(화강암질,편마암)로 이루어져있었다. 신분이 다르구먼.
세석평전휴게소에서 웃음을 자아낸 게 있어 소개한다. 일명 '화장실 제2탄'. 화장실에 들어가니 소변기위에 "좀더 가까이. 남자가 흘리지 말아야할 것은 눈물만이 아니죠"란 경고스티커가 붙어있다. 여자들도 무슨 뜻인지 알 사람은 다 알것이다. 모르는 사람은 남자에 대해 더 연구하세요. 문입구에는 "거울아 거울아 세상에서 누가 제일 이쁘니. 화장실 깨끗하게 사용하는 사람이-요!"라는 내용도 적혀있다. 한국화장실문화협의회가 여러가지 아이디어를 내고 있다. 고생많으십니다. 이러다가 문화대국은 문화대국인데 다른 문화는 엉망인데 화장실문화만 발달하는 것 아닐는지. 하여튼 시원찮은 문화라도 하나라도 발달시킵시다.
영신봉, 칠선봉을 거쳐 오후 5시가 넘어서자 산에 어둠이 일찍 찾아와 길을 가는데 고생을 했지만 6시 30분쯤 무사히 벽소령휴게소에 도착했다. 라면과 소주, 심상준 선배의 콩가루를 이용한 즉석 순두부찌게도 맛보았다. 배가 고파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맛있게 먹었다. 취사장이 등산객들로 꽉 찼는데 모두들 불고기, 찌게 등 맛있는 거 많이들 준비해왔구먼. 먹으러 왔나. 입만 쩝쩝.
유영래선배등 2진이 저녁 10시 반쯤 도착했다. 3진이 다음날 새벽 1시쯤 도착할 계획이어서 2시30분까지 기다렸으나 오지않아 잘 있겠지하면서 그냥 잠을 청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정병일선배와 이원선배 2명은 새벽 4시까지 산길을 헤매다가 하산했다가 뱀사골을 통해서 올라와 노고단에서 합류했다.
최근 문을 연 벽소령휴게소는 시설이 잘 되어 있는 아담한 목조건물로 등산객에게는 더할나위없이 좋은 쉼터였다. 한사람당 숙박료는 5천원, 담요는 1천이었다. 우리와 함께 묵은 등산객은 대략 70명정도로 방이 거의 찬 것 같았다. 실내가 너무 더워 팬티차림으로 잔 사람도 있었단다. 과거에는 상상도 못할 일이다. 대학시절 텐트치고 벌벌 떨며 잤던 시절이 생각난다. 앞으로 히말라야산 5천미터고지에서도 이 같은 시설들이 들어설 것이라고 한다. 앞으로 국내외 유명산에는 숙박시설이 잘 될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을 것이다. 빨리 돈 모아 전세계 좋은 산을 많이 가봐야지. 만약에 만약에 돈 못벌면 집이라도 팔아서 가야지. 아들한테 물려줄 집이 어디 있어. 아들아 미안하다. 원망하지 마라. 나도 사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게 없었거든. 알아서 잘 살아라. 학교만 보내줄게.
벽소령 휴게소 추억록에 적힌 인상깊은 내용을 소개한다. '환갑기념등산을 하면서'라는 분은 "북두칠성은 물론 밤하늘의 별자리까지 감상할 기회를 주신 대자연의 감사한다. 날이 밝는 것이 두렵다"고 적었다. 연세도 많으신 분이 '어찌나 소녀같은지'. 또 '사랑하는 이에게 보내는'이라는 분은 "이보다 더 인생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지리산!. 그대가 나를 불렀다"고 흥분했다. 또 무슨 산악회에서는 "오늘도 왔습니다. 잘 있었느냐 지리산아. 내년에 다시 보자 지리산아. 너 없이는 나는 못산다. 우리는 영원한 친구"라며 사랑을 노래했다. 어떤 분은 "추억은 없다. 살아남기 위해 걷고 또 걷는다"는 비장감을 표현했다.
벽소령 만월, 일명 '벽소명월'은 지리산 10경중에 하나다. 보름보다 사흘이 지났지만 만월이나 진배없었다. 저녁에는 사방이 하얀 안개로 인해 전혀 보이지 않았다가 자정이 넘어가면서 만월이 드러났다. 해같이 빨갰다. 그런 색깔의 달은 처음봤다. 어둠을 삼키고 있는 휘영청 밝은 달 앞에서 그만 넋을 잃고 있었다. 캄캄한 하늘을 배경삼아 눈부심없이 그윽하고 정겨웠다. 이날 북두칠성등 수많은 별들이 사금파리처럼 빤짝 빤짝 빛났다. 저멀리 큰 산들은 어둠속에서 실루엣으로 곡선을 긋고 있었다. 안개가 떼지어 이리저리 몰려다니고 있었다. 꿈속에서나 볼 수 있는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연출했다. 감성은 역시 달이고, 이성은 역시 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지리산은 신령산이기 때문에 그런 모양이다. 전설도 많다. 태고때 천신의 딸 '성모 마고'가 내려와 반야도사와 결혼해서 8명의 딸을 낳아 무당으로 길러 속세에 내보냈다는 얘기도 있다. 지리산은 무당전설이 왜 이래 많아. 백무동도 '백명의 무당'의 준인 말이래요. 하기야 고대때는 신정(神 政)일치였고 단군시조도 무당이었으니.
우리일행은 2층에서 11명이 나란히 잤다. 비좁아 나는 1층으로 이어진 계단쪽으로 삐져나와 잤다. 실내가 매우 더웠지만 단잠을 잤다. 아침 8시에 깨어보니 온 나무에 상고대꽃이 만발했다. 자욱한 안개속에 흰 서리가 내리고 나무가자마다 상고대꽃을 피워 백색의 세상으로 돌변해있었다.구름을 붉게 물들이면서 떠있는 아침해도 경탄을 자아냈다. 내마음도 함께 후끈 달아 올랐다. 정면으로 쌍계사가 있는 하동쪽이 발아래 보였다. 벽소령에서의 해와 달, 별 3형제를 본 소감. 성모병원복도에 붙어있습니다. " 아침이면 태양을 볼 수 있고 저녁이면 별을 볼 수 있는 나는 행복합니다. 잠이 들면 다음날 아침 깨어날 수 있는 나는 행복합니다---"
사실 나는 늘 행복속에 산다. 1급착각증세를 보이고 있는 '중증정신장애인'이다. 나는 우리나라 최고대표선수인 세종대왕보다 행복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제가 세종대왕보다 더 나은게 많거든요. 지가 왕이면 왕이었지. 미국을 중국을 일본을 가봤어, 인터넷서핑을 해봤어, 폭탄주를 마셔봤어.
나하고 '인생행복 전체항목분류'에서 누가 더 해봤는가 따지면 나한테 게임도 안될 걸. 나는 이렇게 '낙관론과 상상론'의 절정속에 살아요. 내가 정신병환자인가. 세종대왕시절과 내시절을 비교하니 너무너무 행복해. 이헌태 비교할 때를 비교해라. 그러면 마음이 편하냐.
세종대왕은 요즘 거지보다 못해요. 당시에는 짜장면도 없었고 고추가루도 없었고 맥주도 없었고. 고추, 감자, 고구마는 이조말에 유입되었거든요. 요즘 우리가 먹은 음식 1천가지 중에 세종대왕은 몇 개를 먹어봤겠어요. 의식주, 의료수준, 생활편의시설, 기차 비행기 문명사회등과 비교하면 세종대왕은 불쌍해요.동서양을 막론, 중세이전까지도 해도 인간평균수명이 40살을 못넘겼대요. 이헌태 니도 한심하다 "너를 세계제1의 정신착각환자로 임명합니다"
세종대왕은 여자만 많았지. 여자 갖고만 살수있나. 평생을. 그런데 세종대왕은 인간이 되었더구먼요. 보통 왕들은 여자들만 보면 환장을 했는데 세종은 소헌왕후만 좋아했데요. (소헌왕후아래서만 10명의 자식을 낳았데요. 좋아하는 왕비와 밤에도 끼고 살아서 자식농사 많이 지은 것은 좋은 일이지만 소헌왕후 입장에서는 왕비로서 폼잡을 틈 없이 거의 자식제조기였구만.) 그런데 아버지 태종이 "자식을 많이 낳아야한다"며 여자들을 자꾸 더 소개시켜 주어서 새끼들은 많았더라구요. 내가 왕이라면 마누라를 알아서 더 늘렸을텐데 세종은 억지로 마누라를 늘린 케이스. 이런 말했다가 마누라한테 맞자죽지나 않나. 짜식 겁은 많아서.
하여튼 세종은 부인 6명을 두고 그 아래 18남 4녀, 22명의 자식을 두어 태종 29명, 성종 28명에 이어 세번째였지만 아들로서는 수가 제일 많았답니다. 아들 나을 확률이 82%로 굉장히 높지요. 아들 잘 낫는 비법이 뭔가. 공부 많이 하면 되나. 어떻게 하면 아들을 많이 나을 수 있는 지를 가르쳐주었으면 현대에 들어와 초음파검사를 통해 죄없이 죽어간 수많은 태아들을 상당수 살릴 수 있었을텐데. 후손들에게는 한글창제보다도 더 획기적인 선물이었을텐데. 아휴, 아깝다. 그 비법이 전수 안되어서. 아들선호사상 버리고 초음파로 낙태수술안하면 된다고요. 네.
세종대왕도 자식이 그 정도 되면 자식이름은 다 알려나. 그런 분에 밑에 태어나는 것보다 평범한 사람 아들이 되어 사랑을 듬뿍 받는게 더 좋지않을까. 하기야 요즘 얘들은. 감옥에 10년살아도 대통령 1년되어보는게 더 좋다나요. 결론.나는 세종대왕보다 더 행복.
자꾸 딴데로 빠져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벽소령부터 노고단까지는 길고 긴 행군이었다. 오르고 내리는 능선길이었다. 일부지역을 제외하고는 거의 전 구간이 안개로 온 산을 뒤덮고 있어 시계가 거의 얼마되지 않았다. 앞만보고 부지런히 다리를 옮겼다. 잔설이 남아있는 곳도 있고 녹아 땅이 철벅철벅한 곳도 있었고 햇볕에 말라서 폭신폭신한 흙길도 있었다. 간혹 나타난 상고대꽃과 눈꽃도 절경이었다.
연하천산장을 거쳐 토끼봉에 올랐다. 토끼봉(1534미터)의 경관도 멋졌다. 주위가 온통 아프카니스탄 산악지대였다. 남해를 지키고 있는 지리산 남쪽의 큰 산들도 겹겹이 솟구치면서 우람한 어깨들을 자랑했다. 저멀리 남쪽에 희미하게 드러나 산들, 낙남정간과 호남정맥의 산들은 구름과 조화를 이루며 태초의 신비를 머금은 듯했다.
햇볕에 드러난 지리산 곳곳은 웬지 포근해보였다. 반야봉은 운무로 뒤덮여있었다. 구름은 띠를 형성해서 지리산을 보호하고 있었다. 자연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역시 '지리산이로구나'라면서 '산중의 산'임을 다시 느꼈다.
뱀사골정상인 화개재의 넓은 평지에서 점심을 먹고 삼도봉에 다다랐다. 경남과 전북, 전남이 합쳐지는 곳. 지역갈등이여 물러가라. 참으로 악질 중에 악질이다. 영,호남사람들이 이제는 서로 마음을 풀고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자. 삼도봉쪽부터는 안개 때문에 보이지 않았던 지리산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었다. 노루목, 임걸령,돼지평전을 거치며 행군을 계속했다. 왼쪽이 반달곰이 서식한다고 한다. 이름도 예쁜 반달곰. 많이 번식해라. 사람다치게 하지는 말고.
지리산종주의 마지막 능선으로 알려진 노고단(1507미터). 천왕봉과 반야봉과 더불어 지리산의 3봉중 하나. 저녁 5시반쯤 도착했다. 돌탑에 돌하나는 더 얹으며 백두대간무사종주를 또 기원했다.
안개가 천지를 뒤덮고 있어 지리산의 전경을 볼 수 없었지만 노고단 특유의 시원하고 탁트인 맛이 있었다. 앞으로는 안개를 품어안고 있는 반야봉의 윗머리가 살짝 모습을 드러내고 뒤로는 석양의 붉은 기운이 구름까지 붉게 물들이고 있다. 선경(仙 景)이다. 노고운해도 지리산 10경중의 하나다. 노고단을 내려오다가 탄성을 자아내는 석양을 볼 수 있었다. 주변에 붉은 기운은 전혀 없이 해가 무슨 피빛같기도 하고 새빨간 진홍색이었다. 나는 팔광화투 모습과 똑같았다고 말했다. 이말을 듣고 일행들이 다들 깔깔 웃는다. 진짜다. 장관이었다. 경외감을 느꼈다. 저런 석양의 해는 처음 봤다.그런데 이내 사라진다. 짜식. 좀 더 보여주지. 되게 비싸게 노네.
30분걸려 성삼재로 내려왔다. 장단지가 아프고 다리가 풀려 터벅터벅 걸어왔다. 벌써 해가 지고 컴컴했다. 대기중이던 버스를 타고 일원에 가서 전에 갔던 아구찜집에가서 막걸리, 된장찌개, 아구찜으로 푸짐하게 저녁을 해결했다. 얼큰하게 취한 상태에서 저녁 8시쯤 서울을 출발,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11시 15분쯤 도착했다.
버스안에서 한마디씩 하라고 해서 나는 "부모님 품에서 벗어나 사회에 나온 지 21년 되었다. 21년을 추억으로 랭킹을 따지면 올해는 상위권에 들 것이다. 물론 백두대간종주의 시작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 앞으로 백두대간이 끝나면 집을 팔아서라도 실크로드와 히말리야산맥을 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헌태에 있어서 2002년은 결코 잊을 수 없는 해가 될 것이다. 아듀. 2002년. 거꾸로 해도 2002년. 희한하다.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저녁 11시 15분쯤 도착해서 구파발행 마지막 지하철 3호선을 1분앞두고 아슬아슬하게 타고 구파발에서 내려 총알택시를 타고 화정집에 도착하니 저녁 12시 20분쯤 되었다. 2박 3일간의 긴 일정을 쉬고 오니 역시 집이 제일 좋았다. 자식들은 내 침대에서 나란히 자고 있었다. 예쁜 놈들.
이틀동안 바람한점 없는 따뜻한 이상 날씨속에서, 간혹 여름 같은 더위를 느끼면서 30킬로미터라는 먼 길을 무사히 잘 다녀왔다. 이번 산행은 따뜻하고 파릇파릇한 생기를 느꼈으니 봄, 바람 한점 없이 땀을 무지 흘려 여름, 퇴색한 낙엽이 길을 깐 가을, 나무마다 잎이 다 도망가고 맨살만 드러냈고 눈까지 쌓여 있어 겨울, 네계절이 뒤섞인 '4계절패키지'산행이었다. 파노라마처럼 펼쳐진 촛대봉, 토끼봉에서의 지리산 전경, 벽소령에서의 만월과 해돋이, 노고단의 석양. 백두대간 종주 3번째인 이번 지리산종주길이 가장 감동이 깊고 가슴에 오래 새겨질 것같다.
구한말 대학자였던 매천 황현선생은 1910년 한일합방으로 나라를 잃자 지리산 아래 구례에서 "새, 짐승 슬피 울고 산과 바다도 찡그리는데. 무궁화 이 강산 이미 가라앚고 말았구나"라는 절명시를 남기고 목숨을 끊었다. 조선 중기 유학자 남명 조식이 벼슬길을 멀리하고 지리산아래 산청땅에 산천재를 짓고 "어떻게 해야만 두류산처럼 하늘이 울어도 울지 않을까"라는 시를 통해 고고한 기상을 날린 적이 있다. 그러나 오늘 내가 본 지리산은 "씩 웃었다". 심상준선배의 말처럼.
나는 이제 지리산을 내마음 깊숙히 품게 됐다. 천왕봉 표지에 써 있는 "한국인의 기상, 여기서 발원되다"라는 뜻을 다시 오롯이 새겼다. 나도 지리산을 닮아 큰 사람이 되어야지라고 다짐도 해본다.
지리산아 안녕, 당분간 못오니 몸 조심해. 하늘이 두쪽 나도 잘 있어. 안녕. 그러나 나의 백두대간종주는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나는 히딩크가 아니고 이딩크. 나는 여전히 배가 고프기때문이다.(12월 20,21,2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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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대통령 "재정 적극적 역할 필요…씨앗 빌려서라도 농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