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新빈곤시대(11)-신음하는 영세업체

기업들도 나을게 없다.

돈이 마르다보니 소비가 위축되고 결국 생산량도 줄어든다.

중소기업들은 줄줄이 문을 닫고 영세업체 근로자들은 최저임금조차 제대로 못받고 있다.

경주에서 제조업을 시작했던 김모(56)씨는 전기요금과 각종 세금을 내지 못해 얼마전 공장 문을 닫았다.

어렵게 사업을 시작했지만 운영자금 부족에다 계속된 불황으로 견딜 수 없어 문을 닫고 말았던 것. 업종을 바꿔 재기를 하려해도 신용불량자가 된지 오래여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김씨는 "몇번이나 목숨을 끊을까 생각했지만 자식들이 불쌍해 마음을 달리 먹었다"며 울먹였다.

강구에서 수산물가공업을 하고 있는 이모(56)씨는 부도를 두번이나 냈다.

한때 강구에서 냉동공장과 명태건조작업을 하는 대규모 가공공장을 경영했는데 당시 종업원만 100여명을 넘었다.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지만 중국산이 밀려오면서 경쟁력을 상실, 5년전에 이어 작년에 두번째 부도를 냈다.

강구에는 현재 이씨처럼 수산물가공공장을 하던 사람이 거의 없다.

대부분 부도가 나 알거지가 됐다.

설상가상으로 이씨는 현재 폐암 투병 중이다.

항암치료를 5번 정도 받았는데 그는 아직도 담배를 끊지 못하고 있다.

옛날 생각만 하면 담배가 저절로 당긴다는 것이다.

현재 조그만 셋방을 전전하고 있는 그는 차라리 일찍 죽는 것이 편안할 것 같다고 했다.

이씨의 가슴을 더 미어터지게 하는 것은 그가 모시고 있는 어머니의 병환. 팔순을 넘긴 모친은 아들의 사업이 기울자 신경을 쓴 나머지 멀쩡하던 눈까지 멀었다.

돈이 없어 모친의 눈 수술도 못하는 이씨는 가슴이 찢어진다.

거동조차 힘든 어머니는 하루 종일 방에만 있다.

텔레비전을 켜 놨지만 보지도 못하고 소리만 들을 뿐이다.

이씨도 10여년전 수산물가공공장 기계에 끼여 오른손 손가락 4개를 잃었다

오늘도 그는 폐암 선고를 받은 가슴으로 담배를 빼어 물고 있다.

경주시 선남면에서 황토제품을 생산하는 양모(35)씨는 신기술을 개발해 놓고 경기불황 때문에 지방세 340만원을 내지 못해 공장.기계류 등이 가압류된 상태다.

양 사장은 "자금사정이 어려운데다 체납으로 부동산.공장 직기 등도 행정기관에 가압류되면서 더이상 금융기관 등에 돈을 빌릴 수도 없게 됐다"며 "압류해제를 요구했지만 대채 담보물을 요구해서 이도저도 못하고 있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씀씀이를 줄이려는 업체들의 노력도 눈물겹다

전기업을 하는 박모(55.의성군 비안면 이두리)씨는 "일감은 점점 줄어드는데 돈 쓸 곳만 늘어난다"며 "최근 사무실 경비를 줄이기 위해 기름난로에서 갈탄난로로 바꿨다"고 했다.

의성 유일의 연탄공장인 태원연탄은 요즘 생산에 비해 수요가 넘쳐나면서 생산량이 작년보다 1.5배나 증가했다.

태원연탄 박영수(43) 소장은 "최근 연탄소비가 늘어 주문이 밀린다"며 "최근까지 적자경영을 면치 못했으나 수요가 늘어나면서 조금씩 형편이 나아지고 있다"고 했다.

누적된 경기불황과 원청업체의 단가 삭감에 못 견딘 상당수 영세 하청업체들이 직원 임금을 수년간 동결하거나 삭감해 법정 최저임금조차 받지 못하는 노동자들도 크게 늘고 있다.

일부 대기업 근로자들이 강력한 노동조합의 힘을 바탕으로 두자릿수 임금 인상률을 쟁취한 반면 영세 하청업체 근로자들은 생계비마저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놓인 것. 노동부는 지난달 근로자들의 올해 법정 최저임금을 통상임금 기준으로 작년보다 10.3% 오른 일급(8시간) 2만80원, 월급(226시간) 56만7천260원으로 고시했다.

그러나 영세 협력.하청업체의 경우 원청업체가 작업단가를 동결 또는 삭감하는 바람에 수익성이 악화돼 적자가 눈덩이처럼 쌓이면서 한계상황에 직면해 있다.

이에 따른 경영위기 타개책으로 영세 협력.하청업체는 직원들의 임금을 삭감하면서 최저임금 이하의 근로자가 속출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해 법정 최저치보다 낮은 임금을 지급했다가 적발된 경주지역 업체는 모두 27개 사업장이었으나 경기가 더욱 나빠진 올해는 훨씬 많은 업체가 입건될 것으로 지역업계는 내다보고 있다.

실제로 경주의 한 자동차 부품업체는 원청사가 제시하는 단가로는 도저히 회사를 지탱할 수 없다며 업주가 자진 휴업계를 냈다.

회사 관계자는 "외환위기때 삭감된 작업비가 지금까지 그대로이고 심지어 지난 89년 이후 단가인상이 한번도 없었던 업종도 있다"며 "대기업들의 임금인상과 수백%의 성과급 지급은 협력.하청사 노동자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외동공단 한 업체 노동자 김모(36)씨는 "협력.하청사 노동자들끼리 뭉치는 새로운 형태의 노동운동을 전개할 때라는 말도 나돈다"고 전했다.

포항지방노동사무소 관계자는 "기본급은 쥐꼬리만큼 책정한 뒤 각종 수당을 십여개 항목으로 만들어 실제 수령액이 최저임금 수준을 약간 넘도록하는 눈속임까지 등장하고 있다"며 "통상임금이 최저치에 미달하면 무조건 불법행위"라고 지적했다.

박준현.최윤채.박정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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