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정경 쇄신 '두루뭉실'

여야 의원들이 올 한해 동안 앞다퉈 주장한 정치개혁 문제는 결국 미완성으로 끝을 맺었다.

17대 총선을 앞두고 선거구제 선정부터 의원정수, 선거자금 등에 대한 정치권의 수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명쾌한 결말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대선자금의 매서운 바람이 불고간 한해 동안 이렇다할 결과 없이 한나라당과 민주당, 열린우리당은 물론 청와대까지 구설수에 휘말리며 검찰의 사정거리에 놓이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고 국민들도 참여정부의 개혁에 대한 호평보다는 혼란스러움에 대한 불평만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대학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를 우왕좌왕(右往左往)으로 선정하기에 이르렀다.

지난해 초부터 일기시작한 정치개혁 바람은 그 주체가 바로 개혁 대상이었기 때문에 결코 성공할 수 없을 것이란 우려가 지배적이었다.

급기야 일년여간을 끌어온 정치개혁안은 지난달 19일 국회 정치제도개혁특위 전체회의에서 대부분 묵살되거나 왜곡되기까지 했다.

시민단체 및 범국민정치개혁협의회(범개협)의 요구가 반영된 선거법, 정치자금법, 정당법 등이 정치권에 의해 사실상 묵살된 것이다.

특히 당시 야3당은 영남, 호남, 충청 등 자신들의 강세지역의 기반이 흔들리는 것을 막기 위해 '지역구 증원', '비례대표 동결 내지 축소' 등 기득권 강화방안을 서슴없이 주장하기도 했다.

범개협측이 중.대선거구제를 포기하면서까지 지역구도 완화와 국회의원의 전문성 강화를 위해 주장한 것과 정반대 흐름이었다

정치자금 문제에 있어서도 마찬가지. 정치권이 정치자금 제도개선을 논의하며 제공자측인 재계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고 오히려 자금을 제공받는 쪽인 자신들만의 주장을 고집했다.

오죽하면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직접 나서서 자신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을 경우 합.불법과 관계없이 일체의 정치자금을 제공하지 않겠다고 '협박'까지 했을까.

그러나 시민단체는 불법정치자금 제공자인 전경련의 이같은 행보도 '엄살'로 일축하며 역시 비난하고 있다.

이들은 전경련이 '정치개혁'이라는 대명제보다는 기존 정치자금제도를 보완하는데 그쳤다고 보고 있다.

전경련의 일련의 주장들은 사실 자신들의 기업활동을 좋게 해주는 특정정당 밀어주기 전략이라는 의혹을 벗지 못하고 있다

이들이 주장한 법인세의 정치자금 기탁제의 경우 한나라당이 각종 후원회를 완전 폐지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지만 제1당이라지만 야당인 만큼 후원회 수입으로는 미흡하다는 계산 아래 아예 국가에서 거둬 의석수대로 배분, 인센티브를 부여하자는 배경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또 현재도 국고보조금이 엄연히 존재하는데 다시 법인세에 부가세 형식의 정치자금세를 부과한다면 국고보조금을 몇 배로 늘리는 결과밖에 안돼 오히려 정치자금 규모만 더 늘리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 허점도 지적됐다.

이와 함께 지정기탁금제의 부활 주장은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는 정당에 더 많은 자금을 제공하겠다"는 것으로 기업으로서는 일견 합당한 주장인 것처럼 보이지만 이도 역시 함정이 있다.

지난 97년 정치자금법이 개정되기 전의 지정기탁금은 여당 독식으로 운영됐기 때문에 기업이 야당에 지정기탁하는 것은 스스로 묘혈을 파는 행위였다.

따라서 지정기탁제를 부활하더라도 정치자금을 여야에 적절히 배분하는 방식으로 운용될 수 밖에 없는데 현행법상의 선관위 기탁금 제도가 어느 기업 하나 거들떠 보지 않는 유명무실한 제도로 방치되고 있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실효가 있을지는 의문이다.

시민단체들은 정치권과 재계가 정말로 정치개혁에 의지가 있는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시민단체들은 불법 정치자금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길은 기부방법 따위를 고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불법과 관련된 정치인과 기업인이 해당분야 활동에서 퇴출을 각오해야 할 만큼 처벌규정을 대폭 강화하는 데 달려 있다고까지 주장한다.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유석진 교수는 "영국 등 선진국에서는 1만불 시대를 만드는데 120년에서 200년이 걸렸지만 우리는 단지 40년 만에 이룩해 양적변화는 같지만 질적으로는 상당부분 다른 것을 인정해야 한다"며 "이제는 도로.항만 등 가시적인 사회간접자본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사회간접 자본인 의식.제도.문화의 변화에 투자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치개혁이 헌정사상 정치권의 최대 화두로 떠오르고 있고 국민적 열망도 높아져가고만 있는 상황을 최대한 살려 새해를 정치개혁의 원년으로 삼아야 한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지난 1년간 우리는 코드정치, 특검정국, 측근비리, 검찰소환, 출국금지 등 실로 대단한 사자성어의 울림 속에 살아왔다.

지난달 말 엄동설한 속 대선 승리 1주년 축하대회에서 대통령이 쏟아놓은 말 중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며 역설한 '정치개혁'이란 용어도 이제는 말뿐이 아닌 현실이 돼야 한다고 정치권과 시민단체가 한목소리로 강조하고 있다.

박상전기자 mikypar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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