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전남 화순군 운주사

강원도에는 아직 겨울이 한창인데 바다건너 제주에는 벌써 봄꽃들이 앞다투어 망울을 터트리고 있다. 대구날씨도 제법 풀려 이제 한겨울 오리털 잠바는 옷장속으로 넣어 놓았다.

한 계절이 끝나면 항상 다가오는 계절을 기다리는 건 새로운 변화에 대한 욕구 때문일까? 바다를 건너지 못할 바에는 반도 남쪽으로라도 달려가 봄을 맞이하고 싶다.

전라남도 화순군 운주사. 세월의 이끼를 천개의 돌탑과 천개의 부처에 지니고 있는 신비에 싸인 절이다. 변화를 원하는 마음과는 정반대로 운주사에는 계곡속에서 천년의 시간동안 뽑혀지고 부서지고 깎이면서도 아무런 말이 없는 돌부처와 돌탑들이 지천에 널려 있다.

일주문을 지나자 왼쪽에 작은 개울이 흐르는 비포장 인도가 이어진다. 양쪽에는 야산이 있고 계곡을 다져 만든 평지위에 난 길을 오르니 석탑들이 서 있다.

큰 암반위에 날렵하게 곧추 선 9층석탑 뒤로 7층석탑들이 열병하듯 서 있다. 돌탑뒤로 대웅전과 운주사의 가람이 보인다. 험상궂은 사천왕상이나 현란한 탱화도 없이 탁 트인 석탑전시장이 먼저 반기는 절은 처음이다. 석탑에 한참 정신이 팔려 있다가 사방을 둘러보니 양쪽산 중턱에도 탑들이 있다.

오른쪽산 중턱에는 정말 천년의 세월을 느낄 수 있는 5층탑이 서 있다. 그 밑의 바위에는 6개의 불상이 모두 서서 있다. 가까이 가 보니 하나같이 못났다.

꽃방석도 없이 벼랑에 기대어 서 있는데 코는 닳을 대로 닳아 없어졌고, 눈매도 희미한 것이, 정교하고 빈틈없는 석굴암의 위엄이나 손을 턱밑에 괴고 명상에 잠겨있는 금동미륵상처럼 화려하지도 않다. 크기도 모양도 제각각이다.

오른쪽 산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 5층탑에 오른다. 비바람을 맞으며 천년의 세월을 지내온 간난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불탑아래 불상이 하나 또 기대어 서 있다. 모서리가 다 부서진 석탑사이로 저 멀리 운주사의 가람이 한 눈에 들어온다. 그냥 나 있는 길로만 다녔다면 이 풍경은 볼 수 없었으리라.

대웅전으로 올라가는 곳곳에 불상이 있다. 동체의 비례며 형태가 무시된, 한결같이 단순과 생략과 무작위의 형상들을 한 불상들이 더러는 머리만 남은 채로, 더러는 비교적 완전한 형태로 법당이 아닌 들판과 산자락에 널려 있다.

중간쯤 올라가자 석조불감이 나타난다. 우리나라에 유일한 형태라는 설명이 있는 안내판을 옆에 둔 불감은 돌을 쌓아 정육면체 모양의 석실을 만들고 그 안에 2구의 돌부처를 앉혔다.

돌부처는 서로 등을 대고 앉아 남과 북을 바라보고 있다. 석실 남쪽에는 7층 석탑이 서있고 북쪽에는 원형다층석탑이 서 있는데 다른 탑과 달리 둥근 시루떡을 썰어 탑을 쌓은 듯 둥근 돌로 탑을 이루고 있다.

컨테이너박스로 만든 종무소를 우측에 두고 산방과 다실이 있는 건물을 지나자 계단 위에 대웅전이 나타난다. 왼쪽은 스님들이 기거하는 요사채고, 오른쪽은 지장전이다. 대웅전 밑 샘터에는 목련이 벌써 망울을 맺고 있다. 제주서부터 실려온 봄바람이 운주사 목련을 간지럽혔나보다. 대웅전 뒤로 산신각이 있고 그 오른쪽에 원형구층탑과 또 다른 석불군이 있다.

왼쪽으로 난 오솔길을 오르니 명당탑과 4층 석탑이 나타난다. 운주사의 탑을 제대로 보려면 공사바위에 올라야 한다. 명당탑 우측으로 난 산길을 따라 공사바위로 가는 길은 제법 가파르지만 5분여만에 도착할 수 있다.

천불 천탑을 만들었다는 도선국사가 공사를 지휘했다는 이 바위에 오르면, 절의 전체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남북으로 길게 뻗은 넓은 터에 자리잡은 탑과 부처의 전시장이다.

공사바위에서 절마당으로 다시 내려와 '와불님 뵈러 가는길'이란 표지판을 따라 왼쪽의 산을 오른다. 제법 가파른 돌계단이다. 숨이 찰 때 쯤이면 또 다른 탑군이 나타나고 간이 의자가 나타난다. 한 숨 돌린 뒤 다시 계단을 오르면 머슴부처가 나타나고 와불이 있는 곳에 도착한다.

도선국사가 하늘에 있는 석공을 불러 하루저녁에 천개의 탑과 천개의 불상을 만들다가 새벽닭이 울어 미쳐 못 일으켜 세운 부처라고 알려지는 와불. 12m인 남편불과 10m인 아내불이 솔숲에 사이좋게 누워 있다. 감시카메라가 옆에 세워져 있고 '와불에 올라가지 마라'는 경고문이 쓰여 있다. 산중턱에 누운 와불이 일어서는날 민중해방의 날이 온다고 황석영이 소설 '장길산'에서 묘사한 그 와불이다.

하산길로 내려오면 처음 입구 오른쪽 산에 있던 칠성바위를 만난다. 7층탑과 함께 둥근 바위 7개가 북두칠성의 형상을 하고 있다.

남편부처, 아내부처, 아들부처, 머슴부처... 운주사에는 발길에 차이는 돌덩이가 바로 부처다. 서민적인 친근함이 넘쳐나는 돌부처는 언제, 누가 이 불탑과 부처들을 세웠는지 아무도 모른다. 이름만으로도 평화스러움이 넘쳐나는 화순땅 운주사에는 그 많던 부처와 석탑들이 도난 당하고 지금은 석탑 17기와 석불 80여구가 남아 있다.

취재수첩

◇가는 길 : 88고속도로→동광주→29번국도 너릿재→화순읍→운주사(이정표가 잘돼있다)

◇맛집 : 화순에는 흑두부가 유명하다. 달맞이 흑두부(061-372-8465)가 잘한다. 보쌈과 흑수두부, 흑두부 된장찌개가 좋다. 용강식당(061-374-0920)은 미꾸라지 살을 발라 내 푹 끓여주는 남도식 추어탕을 잘한다.

◇광주로 돌아오는 길 도곡면에 도곡온천단지가 있다. 운주사에서 15분거리. 유황이 많이 함유된 온천과 약알칼리성 온천으로 피로회복에 좋다.

사진·글 정우용기자 sajaho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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