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민 세대들은 아우성이다.
전기가 끊기고 수돗물이 마르고 우유 한 방울 없는 아이 젖병을 보이며 절규한다.
화염병이 등장하고 마치 전장을 방불케하는 불꽃들이 어지럽다
이 광경에 넋을 잃은 이웃 서민들은 분개하지만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란 고작 팔짱을 끼는 일 뿐이었다.
마스크를 쓴 젊고 장대한 철거반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여유가 없다.
밥줄이 달린 일이라서 그랬을까. 철거반이나 철거민. 없이 사는 그들은 별반 다를게 없다.
서로 밥줄이 달린 처지라는 공통점이 이럴때는 너무도 비극적이다.
끌어 내려는 철거반이나 악착스럽게 버티려는 철거민이나 결국 그들을 에워싼것은 밥줄. 밥줄의 적개심 때문에 화염병은 더욱 처절하게 불타고 그 불꽃은 엄동 겨울을 녹이기는커녕 지켜본 수 많은 서민들의 마음을 더 얼어 붙게했다.
최근 TV에 비친 서울의 철거촌 풍경이다.
여기에 지난 70년대 후반을 흔들며 지금까지 스테디셀러의 위치에서 비킬줄 모르는 조세희의 창작집 '난장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 오버랩 되면 그 책이 왜 지금까지 유효한 이유가 분명해 지고 있다.
텅빈 골짜기처럼 고요한 차의 맛과 다름없이 분명해 지는 그 이유.
'난쏘공'으로 더 통하는 이 창작집은 어느 시대나 있을 '있는 자와 없는 자'의 대립공간이 비좁아 더 이상 얽힐 수 없을 정도로 치밀한 구도가 더욱 읽는 재미를 더한다.
단순히 읽는 재미라면 발표된지 30년 가까운 지금은 이미 잊어버릴듯도 하지만 '난쏘공'만은 그러나 그렇지 않다.
물론 문제작이었다는 세간의 꾸준한 평가도 한몫을 하지만 그보다는 개발을 향해 거침없이 달려온 우리들로서는 아무래도 숱한 시대적인 변화물 속에 한데 어울려 더러는 신맛이나 매운맛 아니면 아린맛이랄까 그런 맛과 공감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난쏘공'이 화제를 뿌리기 시작했을 때 10대였던 그들 독자들은 이미 30, 40대를 살고 있고 20대였다면 40, 50대를 살고 있을 것이다.
왜 그들에게는 '난쏘공'보다 더 뭉클하고 아슬아슬하고 또한 눈물 콧물이 짖이겨 지는 기억들이 없으랴. 그래도 '난쏘공'을 잊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은 난장이 식구들의 낙원구 행복동이라는 주소에서도 엿보이듯이 언제나 구조적인 불평등사회속에서 지금 제각각의 위치를 재보며 감탄하는 그 야멸찬 낙원과 행복과 현실의 비교감 때문에도 더 읽기에 애착을 가지는 것을 아닐까.
물론 난장이 식구들이 사는 동네는 서울의 변두리다.
무허가 판잣집이다.
아내와 세남매와 함께 가난하고 정직하고 착하게 산다.
충분히 예상되는 직업들. 칼갈기, 수도고치기, 고층건물 유리닦기등 바닥을 헤집는 것이 가장의 직업들이고 아내는 제책소와 인형공장 잡역부. 세남매는 철공소, 인쇄소, 제과점 등에서 일한다.
학교는 너무 사치스럽다.
어느날 그들에게 들이닥친 불행. 더 이상 불행해 질수도 없는 상황일 것 같지만 더 불행해 질 수밖에 없도록 만든것이 아파트 입주권. 이것이 빌미가 된다.
거간꾼의 농간. 울분은 점차 깊어가고 그에 따라 그들은 더 정직하게 잘 살아 보려 하지만 불행은 좀처럼 그들을 놓아 주지 않는다.
소설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게 지금 우리들의 주변에서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아니 있을 것이다.
시대상황이 좀 지난 일일 뿐 지금도 대도시의 행복동 달동네에 사는 울분을 삭이는 가난한 난장이들은 그럴 수밖에 없다.
창작집 '난쏘공'은 '뫼비우스의 띠'를 시작으로 12편이 잇달아 엮어져 있다.
가장인 난장이는 어떤 때는 곱추로, 혹은 앉은뱅이가 되기도 하지만 육체적인 불구로 바닥살이를 하는 그에게 그렇다고 달라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결국 생의 좌절을 이기지 못해 공장 굴뚝에서 뛰어내려 삶을 마감하는 난장이. 열심히 일해도 삶다운 삶은커녕 기업주의 악덕 상혼에 착취만 당하는 아들 영수의 몸부림. 그저 눈물겹도록 울분만 남기지만 그들이 있었기에 내일은 그래도 좀 더 밝아 보이지 않을까하는 역설이 모든 서민들의 가슴을 친다.
최근의 자료를 보면 '난쏘공'은 150쇄를 넘게 찍었다고 한다.
이런 예는 출판사상 별반 많지 않을 것이다.
일부 평론가들이 '난쏘공'은 결코 쉬운 글들이 아니고 난해하다는 평판을 내놓기도 하지만 서로 상황이나 연상고리가 단단히 엮여 자유롭게 넘나드는 작가의 솜씨가 여간 매력적이지 않다.
여기다 오늘의 젊은 독자들에게는 70년대 얹저리의 그 칙칙한 시대상을 어느 일면 손아귀에 쥐어 볼 수 있어 좋다.
적나라하게 그리고 뼈저리게 또는 드라마틱하게 전개되는 당시의 분위기에 이태백이나 사오정을 대입해보는 오늘의 맛은 한편 어떻게 되새김질 될까.
이미 국내에서는 지금까지 표지만 네차례나 바뀔 정도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한가지 더 덧붙인다면 '난쏘공'은 지난 2002년 출판사시공사가 20세기 한국문학사 100대 소설 설문조사에서 최고문제작으로 뽑히는 영광을 안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화려한 이력도 모두 나름의 일리가 있겠지만 옛말에 칼은 불평을 다스리기위해 보갑에서 나오고 약은 병을 다스리기위해 금병에서 나온다고 했듯이 '난쏘공'은 오늘의 성장드라이브에 걸린 우리들에게 묘한 해법을 시사하는 것 같다면 지나친 행간 읽기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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