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에세이-꽃등을 밝히면서

이월 바람이 아파트 벽을 치며 울부짖는 그 몸부림 속엔 분명 봄의 빛깔이 묻어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나목과 냉이풀 씨앗 등 모두 두근두근 봄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봄을 우주적 생명력을 실감나게 하는 생성의 시간이자 부활의 시간이라고 풀이하고 있는 것은 어둠을 뚫고 기어이 일어서는 꽃이, 새싹이 바로 긴 겨울의 막힘에 대한 소통과 화해의 몸짓이라는 뜻이 아니겠는가.

유 치환 시인의 봄에 대한 묘사가 참 재미있다.

'봄!// 산은 온 만신이 간지러운 것이다.

/간질간질 가려운 것이다.

옆구리가, 뒷덜미가/엉덩이가~/ 아지랑이에 눈도 매운 것이다/ 그래 헛치고/그만 웃음이 하마나 터뜰려지것다'.

그러고 보니 거실에서 바라보이는 범어산이 벌써 간지러워 웃음을 참고 있는 모습인 것 같기도 하고 또 6, 7개월된 임산부 같기도 하다.

머지않아 해산을 시작해 움이 트고 목련 봉오리 부풀면 덩달아 치맛자락 들썩거릴 세상을 또 어찌 감당할까. 사실 개인적으론 올 봄이 남다르기도 하다.

겨울 동안 병상에 누워 계시던 시어머님께서 삼십년 동안 시할머니부터의 시집살이 사슬을 풀어주셨기 때문에 이제사 다 낡은 안방에 엉거주춤 서 있는 모습이 거울 속에서 도무지 낯설기 만한 이 기분 누가 알아줄까. 오랜 기간 긴장의 끈에 감겨 온몸 비틀려졌어도 아직 명품이 되지 못한 늙고 병든 분재를

겨울을 잘 견디면 어김없이 봄이 찾아온다는 자연의 이치가 이 사회에도 통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지난 봄 이맘때쯤 어처구니없이 당한 지하철 참사의 그 검은 연기들, 그 엄청난 사건을 발뺌하기 바빴던 공무원들과 어린 자녀와 함께 고층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는 젊은 어머니, 지하철 선로에서 자살하는 사람들의 그 절박함, 자신의 친딸을 성폭행하는 아버지, 사람의 목숨을 나뭇가지처럼 쉽게 꺾어버리는 유괴범들, 분신 자살하는 근로자들, 서로 돈을 조금 더 삼켰느니 덜 삼켰느니 하면서 삿대질하기 바쁜 정치가들의 뻔뻔스러움, 연일 보도되는 사건에 이제 무감각해진 듯하면서도 과연 봄이 찾아올 것인지 아득하기만 하다.

일제 시대의 그 압박과 피난시절, 보릿고개까지 들추며 참을성과 비인간성에 대해 얘기한다면 '니가 뭘 안다고?' 건방지다할 것이고 묵묵히 지나치기엔 비겁한 방관자인 것 같은 그런 차제에 어느 모임에서 유난히 눈이 반짝이는 분이 있어 슬쩍 물어보았다.

그것은 말없이 참여하여 베푸는데서 오는 아름다움이었다.

노숙자들을 위해 무료 급식소에서 자원봉사하며 국을 뜨다가 넓고 깊은 국솥에 빠질 뻔한 얘기며 이름 없이 쌀을 보내주는 분이 꼭 나타난다며 이미 봄꽃 복스레 피어있는 그 얼굴이 그래도 봄이 오고 있다는 확신을 갖게 해주었다.

개수대에 쌀을 질펀하게 흘려버리거나 너무 무관심했던 자신이 부끄러워졌다.

지금 누구보다 가슴 설레는 이는 대학 입학을 앞둔 새내기들일 것이다.

이제까지 엄격한 규율과 시간표에서 잘 참고 내면을 갈고 닦았기에 당연히 찾아온 결과이리라. 그런데 이 순간에도 세계 평화를 내세우며 버젓이 살육 전쟁이 진행되거나 어이없이 불의 제단에서 희생양이 된 지하철 참사와 기아에 허덕이는 이들이 있는 한 아직 지구는 추위와 어둠으로 막힌 무덤이란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처럼 모진 겨울 바람에 나뭇잎이나 풀잎, 꽃들까지 다 잃어버리고 마음을 꽁꽁 닫아걸었던 땅이, 사람이, 언젠가 숨이 막히다보면 반드시 숨구멍을 열거나 뾰족뾰족 움들을 틔워 한숨 크게 내쉴 터인데 빼앗기고 짓밟히면서 그 한숨으로 밀어, 밀어 올린 새싹과 꽃들이 바로 숨 쉴 구멍이자 언어요 몸짓이리라. 봄은 그런 소통과 화해만이 생명, 살길이라는 걸 보여주기 위해 머지않아 사람의 마음 골짜기에도 활활 봄의 불길을 피워 올릴 것이다.

그 믿음의 꽃등을 밝혀들고 남의 탓보다 최선을 다해 본분 지키며 서로 가슴을 열어 이 추위 견디지 못해 마음의 문을 닫고 어둠에 갇힌 이는 없는지를 살피며 다독거리면 올 봄꽃은, 잎은 더 아름답게 피어나리라.

다시 한번 지하철 참사로 희생되신 영령들의 명복을 빌어본다.

정숙(시인)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