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역사는 우리가 만든다

경칩이던 지난 5일은 백년 만에 처음이라는 폭설이 쏟아져서, 그렇지 않아도 살기 고달픈 백성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뒤늦게 정부에서 조치를 취한다고는 하지만 역시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는 예전과 전혀 다름이 없는 듯싶다.

그리고 한 주일이 지나, 우리는 경천동지(驚天動地)라고 표현 할 수밖에 없는 대통령 탄핵사건과 얼굴을 마주해야 했다.

국회의원들이 우리가 선택한 대통령을 탄핵해 마침내 그 권한을 중지시킨 것이다.

모 여류 시인이 "사랑은 저지르는 자의 몫이다"라는 시집을 낸 적 있다.

그래, 사랑은 '저지른 자의 몫'일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이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오천만 가까운 백성들은 결코 서정적으로 표현된 시인의 표제처럼 '저지르는 자'의 몫이 될 수 없다.

무엇을 위해 국회의원들이 국민이 선택한 지도자를 탄핵했으며, 무슨 이유로 지도자는 이른바 정치라는 개념을 초월해서 온 국민의 가슴에 지워지지 않을 역사적 사건을 생산했는가.

마키아벨리는 그 유명한 '군주론'을 통해 "군주가 국가를 통치하며 유지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야심과 용기가 있어야 하며, 권력에 대한 의지가 강해서 필요하다면 불성실, 몰인정뿐만 아니라 잔인해도 무방하고 심지어는 종교까지도 이용해야 한다"고 설파했다.

일이 있어 서울을 다녀오는 길에 이번 대통령 탄핵사건으로 집회를 하고 있는 군중을 목격했다.

물론 추운 날은 아니었지만 어둠을 헤집고 그 많은 사람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와 촛불을 들어 자신의 의지를 주장하는 것을 목도하면서, 이 각박한 삶의 현실을 가로지르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프랑스 사회학자 G 르봉은 "군중의 심리가 맹동적이고 격앙적이며, 행동적인 동시에 암시적"이라고 지적하고, 이는 "소수의 지적 귀족과 대립되는 지각없는 인간집회"라고 정의했다.

그렇지만 G 타르는 르봉의 지적에 대해 '군중'과 '공중'에 대한 명확한 구분을 해야 하며, "공중은 군중처럼 비조직적인 집단이기는 하지만, 군중과는 달리 신문을 포함하는 모든 커뮤니케이션에 의해 다수가 결합되고 제반 문제를 자유로운 사고에 따라 이성적으로 판단하는 합리적인 모임체"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어떻든 간에 이미 이 땅의 백성들은 프라임타임의 결정체라는 아홉시 뉴스에서조차 정치이야기에는 식상한 것이 현실이다.

그것이 국민이 '저지른' 잘못 때문인지 '선량'이라는 무리들이 조선조를 무색케 하는 온갖 당파 싸움으로 고도로 농축된 기술적인 기만을 '저지른' 탓인지는 판단을 유보할 수밖에 없다.

적어도 우리에게는 역사의 평가라는 신성한 미래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명심해야 할 것은 이제 우리가 주인의 몫을 확실히 할 수 있는 총선이라는 무기를 아직 지니고 있으니, 그 신성한 의무를 바르게 행사함으로써 다시는 이런 엉거주춤한 역사를 재생산하는 일이 없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것이다.

도광의 시인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