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천만 바닷가에 별량이라는 면소재지 마을이 있다.
작은 우체국과 농협지소, 켄터키치킨과 중화요리 집이 드문드문 자리한 이 거리의 한쪽에 동백식당이라는 이름의 식당 하나가 자리하고 있다.
낡고 허름한 한옥 단층집에 자리한 이 식당은 별량 토박이들뿐 아니라 인근 순천 벌교에 사는 사람들에게까지 그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다.
바로 이 식당의 주인 욕쟁이 할멈 때문이다.
남녀노소, 이유를 불문하고 이 집에 발을 들인 사람은 할멈으로부터 수인사로 걸쭉한 상욕을 얻어들어야만 한다.
어디 처박혀 있다 이제 오나 이 오살할 놈 같은 욕설은 애교에 속한다.
처음 온 손님에게조차 육두문자가 쏟아지기 십상이다.
이 ×같은 넘아 멀 바라보누로 시작해서 ×같은 자식 빨랑 꺼져라, 너한테 줄 밥 없다고 마구 쏟아 붓는다.
할멈의 입성 또한 가관이다.
붉은 염색을 한 파마머리에 붉은 스웨터와 붉은 바지, 붉은 스타킹을 신고 이 집의 주 메뉴인 주꾸미 양념 구이를 볶아낸다.
할멈이 왜 그토록 붉은 빛 일색으로 입성을 꾸리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사실 이 집의 주 고객들은 대부분 이 근방에서 이름을 대면 금방 알 수 있는 사람들이다.
의사, 변호사, 대학교수, 검사, 시.군의 기관장들이 즐겨 이 집을 찾는다.
그들도 한 끼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어김없이 할멈으로부터 독한 욕설을 들어야만 한다.
한참 욕을 하다가 이놈아 너만 입이냐, 나도 한 입 다오 하면 손님들은 껄껄 웃으며 할멈 입에 구운 주꾸미를 쌈 싸 넣어주기도 한다.
처음 이 집에 들렀을 적부터 나는 이 할멈의 모습이 보기 좋았다.
자기가 만든 음식이 이 일대에서는 최고라는 자부심.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정신적 특권의식이 할멈의 욕설 속에 느껴진 탓이었다.
한 끼 밥을 먹으며 실컷 욕을 먹고 경우에 따라서 함께 상욕을 나눌 수 있는 시간들은 손님의 입장에서 보면 팍팍한 세상살이에 대한 카타르시스가 될 수도 있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 집의 단골들은 할멈의 욕을 단순한 욕이 아닌 할멈만의 독특한 정의 표현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자취생활을 하는 단골들에게 할머니는 새로 무친 나물이나 청국장, 두부부침개들을 듬뿍 싸주기도 하는데 오살할 놈 잘 처먹으라는 덕담은 끝내 잊지 않았다.
그런 할멈에게 별난 일이 생겼다.
일찍이 이 식당의 명성을 들은바 있는 소설가 박완서 선생이 이쪽 땅을 방문한 길에 이 식당에 잠시 들르기를 원했다.
식당에 들어서자 욕쟁이 할멈은 대뜸 우리 일행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해 미리 맞춰두기나 한 것처럼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박완서 선생에게만은 욕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우리들은 모두 이 선생님에게는 왜 욕을 하지 않느냐, 사람 차별을 하는 것이냐 고 일부러 따지듯 물었는데 염병할 놈 지랄하고 자빠졌네 하는 소리만 뱉을 뿐 끝내 욕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오히려 선생을 다정한 목소리로 불러 일으켜 세우더니 팔짱을 끼고 즉석 사진까지 찍는 것이었다.
며칠 뒤 순천만에 들렀다가 식당에 들러 할멈에게 왜 그 날 욕을 하지 않았느냐 물었더니 대뜸 시러밸 놈 내가 아무한테나 대놓고 욕을 한 줄 아느냐, 고 하는 것이었다.
말인즉 욕을 얻어먹어 마땅할 사람에게만 욕을 한다는 것인데 소설가라는 그 노인네는 눈빛도 맑고 말씨도 차분해서 욕을 해서는 안될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한 쪽 벽을 가리키는데 그곳에는 박완서 선생과 욕쟁이 할멈이 함께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 액자 속에 들어 있었다.
단 한 줄의 시나 소설도 읽은 적 없거니와 할멈은 한눈에 대문장을 알아보고 나름의 예의를 표한 셈이었으니 이는 할멈의 삶이 그 동안 세상에서 읽어낸 혜안의 결과일 터였다.
욕할 때 시원하게 욕하면서도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 자신보다 강한 사람에게 굽신거리지 않고 당당하게 맞서는 사람, 그러면서도 다른 사람의 입장을 속 깊이 배려하고 삶 속에 깃든 의미를 스스로 존중할 수 있는 사람, 기가 죽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지천인 세상에서 할멈의 모습은 더없이 씩씩하고 사랑스럽다.
자신의 모습이 한없이 꾀죄죄하고 초라하게 느껴질 때 별량 욕쟁이 할멈의 식당에 들러 시원하게 터지는 욕 한 바가지를 얻어먹자. 삶의 의욕이 불끈 솟구칠는지 모른다.
곽 재 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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