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시각-배우는 즐거움

오랫동안 미루어 왔던 영어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나 자신 일어를 가르치는 입장이고 학생들에게 항상 공부하라고 다그치는 직책에 있으면서도 여태 피해 왔던 것이 영어이다.

외국인이 집에 와서 식사할 때도 손짓으로 많이 잡수시라고 한다든지, 하다못해 짧은 불어를 몇 마디 해서 비(非) 불어권 국민을 쑥 들어가게 하고 끝낸다.

(영어, 그거 배워서 어디에 쓰려고, 여태 50년 동안 영어 안 해도 무사고로 잘 살아 왔어…)

영어와의 악연은 중학교에 입학하면서 바로 시작되었다.

영어란 말이 어순이 뒤바뀌는 것이 도대체 납득이 안 갔다.

지금 생각하면 그것은 외국어 학습에 흔히 있는 '낯설음'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것을 구태여 극복하고 싶지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엔 남들 가는 영어 학원에 따라가서 처음으로 원어민 강사의 영어를 듣고 자신의 영어 발음과는 많은 괴리가 있음을 알게 됐다.

대학교 때는 영어 강독Ⅱ를 날렸다.

이런 반평생의 콤플렉스를 씻어 보려고 한 데는 내가 접하는 일어 학습자들에게서 그 동기를 얻게 되었다.

5년에서 7년 동안 꾸준히 일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이다.

히라가나부터 시작하여 지금은 동시통역과 일어 교수법을 배우는 사람도 있다.

좋은 두뇌력에 끈기까지 있어서 일사천리로 발전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분은 가르치던 내 자신이 몇 번 엎어지고 싶은 장면들도 있었다.

본인도 "내 머리에는 이제 아무 것도 안 머물러요. 아무리 공부해도 빠져 나가요". 라고 한숨을 쉬곤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분은 한 학기도 안 쉬었다.

그러더니 지금은 이런 말이 전혀 안 믿길 정도로 고상한 일어를 구사하게 되었다.

기적은 한순간에 일어나지 않고 서서히 소리 없이 일어난 것이다.

기억력의 쇠퇴도, 사고의 경직도 노력 앞에서는 설 자리가 없다.

이런 학습자들을 곁에서 지켜 보느라면 느끼는 바가 적지 않다.

뭔가를 배우고 싶은 욕구가 솟는다.

구멍 뚫린 콩나물시루에도 물만 부어주면 콩나물은 자라지 않는가.

교육을 기획하고 운영하는 실무자로서 매번 느끼는 것은 이렇듯 평생학습이란 누가 선생이고 누가 학습자인지 뒤섞이는 것이 그 묘미라는 점이다.

성인학습의 현장에서는 당연히 일어나는 현상이지만 우리는 평생 누군가에게는 선생이고 또 누군가에게는 학생이다.

그리고 배움을 통해 자기 자신을 다각적으로 다듬어간다.

배우려는 사람의 눈망울은 나이와 상관없이 언제나 맑고 어린아이처럼 빛난다.

늙기를 잊어버린 사람들이다.

21세기는 지식기반사회라고 한다.

지금은 각 대학마다 평생교육의 장이 설치돼 있어 배우려는 의욕만 있다면 얼마든지 다양한 공부를 할 수 있다.

배움의 열정으로 늙기를 잊어버린 사람들이 많은 사회가 활기찬 사회가 아닐까.

이숙자

영남대 평생교육원 전문연구위원

최신 기사

많이 본 뉴스

일간
주간
월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