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슈 파이팅-서울대 폐지론

정부가 국립대 법인화를 추진중이고, 대통령 직속 교육혁신위원회에서 국립대 공동학위제를 검토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서울대 폐지론이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여기에 학벌 사회와 대학 서열화 폐지를 강력하게 주장하는 민주노동당이 국회 제3당으로 부상함에 따라 논의는 갈수록 뜨거워질 전망이다.

서울대 자체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불가피하다는 여론이 높다.

학부 정원 감축, 대학원 중심 대학 등도 여기서 나왔다.

서울대 폐지론에 담긴 의미와 논의 구조를 짚어보고 고교 평준화 등 관련 문제에 대해서도 생각을 정리해보자.

◇논의 구조

서울대 폐지론이 나온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일정한 논의의 층계가 잡혔다.

반대론도 이런 구조에 맞춰 펼쳐진다.

가장 근원적인 문제는 학벌 사회다.

한국교육개발원이 분석한 대학입학 성적과 임금의 관계에 잘 나타나 있다.

(주간Economy21 2003년 12월5일자) 결론은 입학 성적이 높은 대학 출신일수록 임금을 많이 받는다는 것. 실제로 KAIST, 포항공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등 소위 명문 대학의 임금 프리미엄은 무려 45%로 분석됐다.

그 외 대학에선 대학 서열에 따른 임금 프리미엄이 거의 없었다.

이러다 보니 상위권 대학 입학이 사회 진출 후의 지위까지 좌우하는 게 우리 현실이다.

입학만 하면 어지간히 나태해도 간판 덕을 볼 수 있는 반면 중하위권 대학에 입학해서는 아무리 연구하고 노력해도 인정받기 어렵다.

이는 곧 우리나라 대학의 취약한 국제 경쟁력과 연결된다.

논의를 더 진행시키면 고교 평준화 문제도 이 범주에 포함된다.

◇대학 서열화와 국가 경쟁력

우리나라 대학은 오랫동안 신입생을 단일 잣대로 선발해왔다.

학생부, 특기자 전형 등 다양한 전형 방법과 전형 요소가 있다고 해도 당락을 좌우하는 건 예비고사, 학력고사, 수능시험 등으로 이어져온 전국 수험생들의 단일 시험이었다.

수험생들이 이 점수에 맞춰 한 줄로 서다 보니 전국의 대학과 학과에도 자연히 서열이 생겼다.

국가는 엘리트 양성이라는 명분 아래 상위권 대학에 집중적으로 투자해왔다.

대학과 교수진은 수혜의 책임을 지지 않았다.

지방사립대 교수들이 생존을 걸고 매달리는 연구와 논문 발표는 남의 일이었다.

학생들 역시 입학만 하면 사회에 진출할 때 엄청난 프리미엄이 생긴다는 사실에 대학 생활의 나태함을 부끄러워하지도 않았다.

그 결과 서울대는 물론 국내 어느 대학도 모든 분야에서 세계 100위권에 포함되지 않는다는 충격적인 연구들이 2000년을 전후해 쏟아졌다.

이제야 일부 분야에서 세계 100위권에 들었다느니, 선진국 대학들의 수준을 따라잡았다느니 하는 발표가 나오지만 그동안 정부가 쏟아온 투자에 비하면 여전히 말도 안 되는 상황이다.

서울대 폐지론을 주장하든 반대하든 여기까지의 논리에는 대체로 동의한다.

현실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결 방법에 대해서는 정반대의 주장이 펼쳐진다.

민노당 김종철 대변인은 "학벌 사회와 대학 서열화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선 그 정점에 있는 서울대를 없애야 한다"고 했다.

참교육연구소 이철호 부소장은 "특정 분야에 뛰어난 엘리트는 지원해야 하지만 특정 대학에 모아서 교육하는 방식은 옳지 않다"고 주장했다.

범국민교육연대는 수능 폐지와 국.공립대 통합전형, 공동학위제, 2011년 이후 대학 교육 무상화와 대학 평준화 완성 등 공교육 개편 방안을 내놓기도 했다.

이에 대해 정운찬 서울대 총장은 "폐지론자들의 주장대로 30만명을 뽑아 국.공립대에 똑같이 배치시키면 우리나라의 장래는 망한다"며 "서울대를 없앨 게 아니라 우수대 5, 6개를 같은 수준으로 끌어올려 서로 경쟁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유근배 서울대 기획실장은 "다른 경쟁국들이 국제 경쟁력을 갖춘 핵심 인력을 키우는 소수정예주의로 나가는 이때 서울대 폐지를 논하는 것은 국가 경쟁력을 무시한 측면이 있다"고 했다.

◇고교 평준화

서울대 폐지와 관련해 반대 입장에서 가장 흔히 제기하는 문제가 고교 평준화다.

정진곤 한양대 교수는 "고교 평준화를 통해 교실을 잠자는 곳으로 만들더니 이젠 서울대까지 잠자는 곳으로 만들려 하는가"라며 반대론을 폈다.

올해 초 서울대 사회과학연구원이 "80년대 이후 부모의 학력과 경제력이 자녀들의 서울대 입학에 미치는 영향력이 계속 커져왔다"며 "저소득층 자녀들의 서울대 입학을 위해 고교 평준화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고 발표한 것도 일맥상통한다.

이에 대해 평준화 유지론자들은 "경제적으로 열악한 계층 자녀의 서울대 입학을 위한다는 이유로 고교 평준화를 폐지하면 초.중.고 전 과정이 입시 전쟁터로 변할 것"이라며 비판하고 있다.

정부 입장에서든, 각 정당 입장에서든 실제로 고교 평준화를 폐지하자고 나설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러나 서울대를 폐지하고 대학 서열을 없애자는 주장에 대한 반박 논리로 고교 평준화의 부작용은 끊임없이 거론될 것으로 보인다.

학생들 입장에서는 서울대 폐지론에 대한 입장을 정리할 때 고교 평준화와의 관계를 명확히 해 두지 않으면 논리적 일관성을 잃고 모순에 빠지기 쉽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김재경기자 kj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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