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매일춘추-대중독재

아리스토텔레스는 소수의 엘리트가 나라를 이끌어야 한다며 귀족정치를 주창하고 나섰다.

그는 결코 민주주의에 후한 점수를 주지 않았다.

이유인 즉 중우정치로 타락하기 십상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우매한 대중이 다수결로 토끼의 귀를 짧은 것으로 규정짓는 우를 범할 수 있음을 지나치게 경계한 탓이다.

책 '대중독재'는 국내.외 학자 19명이 참여해 독일의 나치즘, 이탈리아의 파시즘, 프랑스의 비시 정권, 스페인의 프랑코 그리고 한국의 박정희 체제 등 세계 각국의 독재를 분석하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켰고 수백만 명의 유대인을 학살했던 나치스의 역사를 읽는 사람들은, 그들이 민주적 선거를 통해 집권했다는 사실에 곤혹스러움을 느끼게 된다.

또한 피비린내 나는 정치테러와 강제수용소로 특징지어지는 러시아의 스탈린 체제, 중일전쟁과 태평양 전쟁을 도발했던 일본의 군부 전시체제 등은 열광적이기까지 한 대중의 호응을 받았던 것이다.

이들 독재 체제의 생성.유지를 위해서는 특별한 물리적 조건이 필요했다.

나치는 일자리 제공과 가난 퇴치를 약속하여 노동자와 농민의 지지를 얻었고, 스탈린주의는 대숙청을 통한 사회적 이동의 증대와 공공영역에서의 고용 창출을 통해 밑으로부터의 지지를 이끌어냈다.

이처럼 이러한 독재의 이면에는 이 독재를 용인 또는 지지하는 '대중'이 있기 마련이고, 이 점에서 대중, 즉 국민이 이러한 독재 체제의 공범이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대중독재란 용어의 사용이 용인될 수 있는 것인가. 다수가 권력을 행사하는 상황이 민주주의와는 또 어떻게 다른가. 그리고 민주의식이 성장한 오늘날, 박정희 시대에 대한 향수가 되살아나는 역설은 또 어떻게 설명 할 수 있는 것인가. 결국은 대외 침략이나 대량학살과 같은 '파멸'을 가져온 대중독재와, 발전을 위한 수단으로서의 그것은 구분해야 한다고 본다.

토끼의 귀 뿐만 아니라 당나귀의 귀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구광렬 시인.울산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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