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말에세이-산을 오르는 즐거움

새벽 여섯 시, 산을 오른다.

일상을 나누는 금메 형이 용지봉 아래로 이사오면서 비롯된 아침 산행이 벌써 여러 해가 되었다.

단잠을 이기고 날마다 산을 찾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몸에 배면서 요즘은 다섯 시 반경이면 저절로 잠에서 깬다.

솔숲으로 들어서면 향기가 물씬 난다.

하얀 찔레꽃이 군데군데 피어 있기 때문이다.

다가가 가만히 음미해 본다.

은은해서 좋다.

조금만 걸어 올라가면 우리를 제일 먼저 반기는 것이 있다.

간간이 들리는 힘찬 꿩 울음이다.

장끼는 큰 소리 내어 울고 나서 곧장 푸드덕거리며 날아오른다.

활기를 얻는다.

아주 키 큰 미루나무가 우뚝 선 골짜기에서는 쉴 새 없이 물소리가 들린다.

바위 틈서리로 부지런히 돌고 돌아 아래로 내닫는 물소리를 들으면서 어둔 귀를 씻는다.

그리고 심호흡을 해 본다.

허파꽈리마다 가득 맑은 공기가 빼곡히 들어차는 것을 느낀다.

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적잖게 만난다.

그 중엔 몸이 몹시 쇠약해 보이는 이들도 있다.

나이가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데 겨우 걸음을 옮긴다.

그런데도 그 시각이면 어김없이 마주친다.

한 달쯤 지나서 보니 얼굴에 생기가 돌고 걸음에도 힘이 붙었다.

산이 베푼 혜택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용지봉 기슭을 온통 뒤덮다시피 한 것이 산딸기 덩굴이다.

요즘 한창 익고 있다.

무르익은 것을 골라 천천히 맛을 본다.

조금 새콤하면서도 달다.

길섶을 지나다 보면 크고 작은 지렁이들이 길을 가로막는다.

혹시 잘못하여 밟을까봐 눈여겨보며 걷는다.

빽빽한 소나무 숲을 지날 때면 발아래 감촉이 무척이나 좋다.

옛날엔 '깔비'라면서 아궁이에 불쏘시개 하던 솔잎들이 수북이 떨어져 쌓여 있어 두터운 융단 위를 걸어가는 기분이다.

몸이 조금씩 공중으로 떠오르는 느낌을 준다.

산을 오르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눈다.

집안 일이며 직장 일, 창작 활동 등 생각나는 대로 주고받는다.

좀 거창하게 말한다면 정보의 공유라고나 할까. 그런데 이것저것 말하다 보면 꽤 괜찮은 사업(?)을 구상하게도 된다.

지난해 유월부터 전자우편을 이용해 시작한 '아침시조' 띄우는 일이 그 중 하나이다.

매일신문 문화면에 크게 소개된 바 있는 '좋은 시조 읽기 운동'이다.

공기가 맑아서일까. 산을 오르내리다 보면 이처럼 새로운 생각들이 많이 떠오르곤 한다.

약수터까지 가서 생수 한 잔을 마시고 큰 바위에 걸터앉아 산 아래를 내려다본다.

이른 아침인데도 이 골짝에서 저 골짝으로 흰나비 떼들이 가로질러 천천히 날아오르는 모습이 보인다.

저 나비 떼들은 시방 무슨 생각을 하며 날고 있을까. 몹시 궁금해진다.

새들이 우짖는 소리도 쉴 새 없다.

안타까운 것은 여러 새들을 만나면서도 그 이름들을 제대로 모른다는 것이다.

딱따구리가 우듬지에서 나무를 힘차게 쪼는 소리도 이따금 들을 수 있다.

산 초입에 내려오면 작은 공원이 있다.

정자 아래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둘러앉아 따끈한 커피와 간단한 간식을 나누는 것을 늘 볼 수 있다.

관심을 기울여 세어보면 할머니가 열 한두 분이고, 할아버지가 두세 분이다.

짝이 맞을 수가 없다.

왜 할아버지 수가 훨씬 적은 것일까. 우리는 함께 말한다.

남성들이 직장 일로 더 많은 스트레스를 받아서 일찍 세상을 떴기 때문이라고. 그분들의 활기찬 웃음소리를 들으면서 삶의 의미를 다시금 짚어본다.

산 초입엔 꽤 큰 뽕나무가 한 그루 있어 잘 익은 오디를 맛볼 수 있다.

입안 가득 단내가 향긋이 번진다.

우리는 또 나이에 맞지 않게 풀밭에 무수히 돋아난 클로버를 살피면서 네 잎을 찾는다.

지난해부터 보아둔 군락지가 한 군데 있다.

올해에도 어김없이 그곳에서 네 잎, 다섯 잎 심지어는 여섯, 일곱 잎과도 만난다.

제자들에게 선물한다면서 부지런히 채집한다.

이렇듯 아침마다 산을 오르는 일이 일상이 되면서 마음의 여유를 갖게 되었다.

숲의 정기 때문일까. 얼굴도 더 밝아졌다.

다리에 힘이 붙어 걸음걸이도 훨씬 활기차다.

산에게 넙죽 절이라도 한 번 하고 싶다.이정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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