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역사신문 가상인터뷰-명나라 건국 주원장

빈농 출신으로, 17세 때부터 탁발승 생활을 하다가 홍건적의 부장 곽자흥의 부하가 돼 원나라의 강남 거점인 난징을 점령한 주원장(1328. 10. 21∼1398. 6. 24). 곽자흥이 죽은 뒤 각지의 군웅을 굴복시키고 명나라를 세웠다.

-역대 중국황제 중에 가장 미천한 출신으로 건국의 대업을 이룩하셨는데….

△제 아버지는 가난한 소작농 출신입니다.

어릴 때는 굶주렸고 17세 때 돌림병으로 가족이 모두 죽었습니다.

궁여지책으로 황각사라는 절에 들어가 탁발승 생활도 했습니다.

-황제께서 이끌었던 홍건적은 어떤 집단입니까?

△이민족인 원나라 왕조를 몰아내고 한민족의 왕조를 다시 세우자고 일으킨 종교적 농민 반란군입니다.

그 중심은 백련교도들인데 붉은 천을 머리에 둘러 우리편을 표시했습니다.

그래서 홍건적(紅巾賊)이라고 합니다.

-백련교도는 어떤 사람들입니까?

△송(宋).원(元).명(明)나라에 걸쳐 성행한 신흥종교 신자들입니다.

이 미륵불 신앙은 생활난에 허덕이던 서민층에 쉽게 수용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적 비밀결사를 만들어 정부에 대항할 수 있었습니다.

-말년에 주변 사람을 믿지 못해 대량 참살을 하신 걸로 압니다.

△미천한 걸승 출신으로 나라를 일으켰습니다.

그 와중에 수많은 배신이 있었습니다.

사람을 못 믿게 된 원인이 거기에 있습니다.

지금 내게 머리를 조아리는 군신들이 언젠가는 내 목에 칼을 겨눌 것 같았습니다.

죽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로 어떤 인물을 숙청했습니까?

△개국 공신을 차례로 몰살시켰습니다.

재상 호유용은 모반 혐의가 있어 숙청했습니다.

이 사건과 연루해 1만5천명을 죽였습니다.

10년 뒤에는 호유용과 내통했다는 죄목으로 건국공신이자 제 친구였던 이선량과 그 일가족까지 몰살했습니다.

북방과의 전쟁에서 전공을 세운 남옥과 이 사건에 연루된 1만5천명을 또 죽였습니다.

-명나라의 기본 정책 방침은 어떻습니까?

△명나라는 중화의 회복을 기치로 건국한 나라입니다.

복고정책을 추진할 것입니다.

주자의 가르침을 유포하고, '부모에 효도하고 윗사람을 공경하고 이웃과 화목하고 자손을 가르치며 자신을 지키고 분수를 알며 해서는 안 되는 일을 말자'는 육유(六喩)를 선포했습니다.

과거제도를 부활시킬 것입니다.

조두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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