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여의도 편지-김성조 의원

"80년엔 국회 계엄군이었지만…"

잔뜩 찌푸린 하늘에서 간간이 빗방울이 떨어진다.

어느덧 장마철이 시작된 모양이다.

연례행사처럼 치르지만 올 장맛비는 여느 때와는 달리 느껴진다.

해마다 장대비를 퍼부어 씻어내도, 씻어낼 게 또 있나 보다.

1980년 5월 어느 날로 기억한다.

당시 나는 육군 상병의 계급장을 달고 국회란 곳에 난생 처음으로 들어섰다.

수도권 근처 예비사단 소속 중대 본부에 근무하던 중 새벽에 장갑차를 타고 국회 경내로 진입하게 된 것이다.

운동권과 거리가 멀었던 공학도였던 나에게 국회는 정치적 의미없이 그저 회색빛 칙칙한 큰 건물로만 비쳐졌다.

그러나 그 날 오전 전화기를 통해 급박한 보고가 상황병이었던 나에게 전해졌을 때부터 이미 의사당은 단순히 큰 건물만은 아니었다.

전화로 들어온 보고는 민관식 국회의장(직무대리), 그리고 국회의원과 당직자들이 정문에서 국회진입을 시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들의 국회 진입을 막기 위해 병력을 증원, 인간 바리케이트를 구축했다.

그때 우리 계엄군의 어깨띠에 걸려있던 최루탄을 만지며 국회의장이 "이 최루탄은 이런 곳에 쓰라고 사준 게 아니야. 어서 길을 비켜"라고 언성을 높였다.

그러나 우리는 명령에 따라 그들을 밖으로 밀어내야 했다.

정말 이번 장맛비에라도 씻어 내고픈 기억이다.

국회 점령중 나의 임무는 국회 도서관에 오는 사람들의 신원을 파악하고 출입을 허가하는 것이었다.

그 일 외에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지루한 장마와도 같은 단순 경계근무였고, 그 결과 '시간 많은' 군대가 되어버렸다.

그 덕분에 우리에겐 얼차려와 엄한 군기가 강요되었다.

그 때문인지 국회를 떠날 때쯤 정말 좋지 않은 기억들만 뇌리 속에 남게 되었다.

흔히들 하는 말로 "국회 쪽 방향으로는 볼일도 보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건만, 그로부터 꼭 20년 후 나는 국회의원 신분으로 국회에 다시 들어오게 되었다.

제16대 국회가 개원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밤샘 농성을 해야 했다.

2000년 7월 말로 기억한다.

당시 민주당과 자민련이 국회운영위에서 원내교섭단체 구성요건을 20석에서 10석으로 낮추는 국회법개정안을 변칙처리한 데 대한 규탄농성이었다.

이렇게 국회 첫 등원을 농성으로 장식한 것 역시 씻어 내고픈 기억 중 하나다.

16대 국회 마지막도 나는 본회의장에서 밤샘을 해야 했다.

대통령 탄핵소추안 의결문제로 당시 열린우리당 의원들은 의장석 점거농성을 하고 있었고, 우리는 새벽에 본회의장에 들어가 의장석까지 진입했었다.

결국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가결되었고, 이로 인해 모든 국민들에게 씻어내고픈 또 하나의 아픔을 남겼다.

지난 5일 17대 국회 개원식이 있었다.

이 자리에서 여야는 민생경제 챙기기와 상생의 정치문화 실현을 다짐했다.

그러나 국회는 원구성 문제 등을 둘러싼 여.야간 대립으로 인해 아직까지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고 있다.

시작부터 국민들의 기대를 저버린 채 삐걱거리고 있는 국회를 바라보며 지난 16대 국회의 시작과 끝이 떠오르는 것은 왜 일까. 국민들이 바라는 정치, 국민을 위한 정치가 어쩌면 멀어져 버릴 것만 같은 걱정에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뿌연 하늘 속을 수놓고 있는 짓궂은 먼지들을 털어내듯이 이번 장마에 간직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이 깨끗이 씻어지기를, 그리하여 국가와 국민을 위해 일하는 우리의 국회로 거듭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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