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수출 2백억불 금자탑 구미-(19.끝)낙동강

구미공단의 저력은 단연 낙동강(洛東江)에서 나온다.

연간 1억2천만t에 이르는 생활용수와 공업용수를 마치 생명수처럼 쏟아내며 하루가 다르게 수출실적 등 경제지표를 갈아 치운다.

그 낙동강은 자신을 중심으로 양쪽 날개처럼 상전벽해를 이룬 구미공단 제1.2.3.4단지 장장 700만평을 품에 안고있다.

누가 사상누각(沙上樓閣)이라 했던가. 모랫벌에서 시작한 구미공단의 대역사(大役事). '낙동강의 기적'은 수출 200억달러 시대를 넘어 300억, 400억 달러 시대에도 계속될 것이다.

낙동강 구미벌에 산업단지가 들어서기 직전인 1970년대 초. 당시의 강변에는 넓디넓은 백사장과 '만주(滿洲)섬'으로 통하는 삼각주 형태(약 100만평)의 섬이 강 한가운데 드러누워 있었다.

땅이 넓고, 척박하다는 의미에서 불려진 '만주섬'. 뽕나무와 포플러가 빼곡히 들어섰고 대부분 묵정밭이었던 이곳이 오늘날 구미공단의 모태가 될줄이야 누가 알았을까. 하지만 30여년 전만해도 한낱 불모지였던 '만주섬'이 오늘날 일약 세계적인 첨단전자 산업단지로 탈바꿈하게 된 것이다.

지난 1967년 박정희 대통령은 전자공업을 수출전략산업으로 지정했다.

이후 '전자공업진흥법'과 '수출산업공업단지개발조성법'이 차례대로 제정되면서 이 법을 근거로 구미공단설립은 탄력을 받게됐다.

사실상 지금까지 구미공단 조성배경을 두고 고 박정희 대통령이 이곳 상모동 출신이기 때문에 '고향챙기기' 쪽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없지 않았으나 이곳 구미지역에서는 이와 다른 일화들이 여럿 전해지고 있다.

박전 대통령의 경우 맨 처음 구미지역에 공단을 조성하겠다는 보고가 올라온데 대해 "개인적으로 고향인 구미에 공업단지가 건설됐으면 하는 인간적인 소망은 있지만 공인의 입장에서 반대한다"며 부정적인 입장을 보였다고 한 지인은 회고한다.

당시 박 대통령과 친분을 가졌던 지역유지 장월상(張月相), 훗날 구미공단에 한국도시바(주)를 세운 재일교포 곽태석(郭泰石), 한국폴리에스텔 이원만(李源萬), 윤성방직 서갑호(徐甲虎)씨 등 기업인과 경북도지사였던 양탁식(梁鐸植)씨 등이 열정을 보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이들 가운데 코오롱 회장을 지냈던 이원만(작고)씨의 생전 증언에 따르면 사석에서 만난 박 대통령은 구미공단 조성에 대해 난처한 입장을 나타내고 다시 한번 고려해 보라고 주문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때 이 회장은 "대통령의 고향이기 때문에 구미에 공장을 짓는 것이 아니라 구미는 낙동강이 관통해 풍부한 공업용수와 특히 강변에 천혜의 공단부지를 확보할 수 있는 입지조건 때문"이라고 강변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사실상 구미공단 입지조건은 낙동강이 중심이 된다.

공업용수의 경우 칼슘(Ca+), 마그네슘(Mg+)의 함유량이 비교적 많아 전자나 섬유업체에 양질의 수질을 갖춘 용수를 공급한다는 것이다.

특히 임해공단에서 나타날 수 있는 염분 피해를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장점을 갖추고 있다.

입주업체들도 지난해의 태풍 매미를 비롯해 해마다 치르는 집중호우와 태풍, 홍수 등 자연재해도 구미공단은 피해갔다며 공단으로서의 천혜의 조건을 갖춘 곳이라 말한다.

선산에서 구미를 휘감아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 둔치에 '자연과 인공의 조화'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시작한 구미공단 제1단지(315만평) 조성사업이 완료되면서 구미공단의 역사는 기록되기 시작했다.

이후 국내 제일의 전자업체였던 (주)금성사(현 LG전자)가 흑백TV 조립생산라인과 브라운관 공장을 앞세워 입주하면서부터 구미공단은 서서히 전자공업단지로 탈바꿈하게 된다.

산업단지의 틀을 갖추기 시작한 구미국가공단은 1975년을 전후한 시기부터 전기를 맞기 시작했다.

1973년 입주기업 78개에서 6년만에 3배 가까운 207개사가 입주하고 수출 실적도 15배 가까이 신장되는 놀라운 실적을 거둔다.

그러나 1979년 석유파동과 10.26사건으로 국내 산업단지의 산업활동이 위축되고 구미공단 전자업계 역시 자금난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때 정부가 장기적인 경기부양책을 내놓으면서 재도약의 활로가 트이기 시작했다.

바로 컬러 TV의 국내 시판이었다.

국민들에게 과소비를 부추긴다는 여론도 만만치 않았으나 경기부양을 위한 방영 허용이라는 정부의 방침으로 금성사를 중심으로 한 TV 관련 업계가 대호황을 맞으면서 구미공단이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한다.

이제 휴대전화에서부터 PDP(플라즈마 디스플레이 패널), TFT-LCD(초박막액정표시장치), OLED(유기발광 다이오드) 등 최첨단 디스플레이에 이르기까지 세계 1위 국가의 초석을 다져놓았다.

말 그대로 '불이 꺼지지 않는, 밤을 잊은 공단'이 된 것이다.

그러나 낙동강은 구미공단에 씻지 못할 뼈아픈 시련을 안겨주기도 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오염사건으로 기록된 페놀 유출사고다.

구미공단 두산전자에서 1991년 3월 16일에 이어 두차례나 페놀원액이 파손된 파이프를 통해 낙동강으로 유입돼 발생한 것이다.

페놀오염 사고에 대해 피해보상을 요구한 신고건수가 1천958건 24억5천만원에 이르렀다.

이 중에는 임산부 8명이 자연유산, 임신중절 등으로 인한 정신.신체적 피해보상을 요구하기까지 했다.

자연환경을 거슬리는 행위가 얼마만큼의 큰 재앙을 불러올 수 있는가 하는 교훈을 던져주기도 했다.

낙동강이 안겨준 최대의 선물 구미공단. 오늘도 수출한국을 위해 쉼없이 흐른다.

구미.김성우기자 swki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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