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햄버거 속 이데올로기

'버거의 상징, 맥도날드와 문화권력'(조 킨첼로 지음/성기완 번역/아침이

막강한 미국과 막강한 '맥도날드'. 햄버거 제조업체 '맥도날드'는 미국의 막강한 문화권력을 대표한다? 각국의 '빅맥'(맥도날드사 햄버거 제품) 가격을 달러로 환산한 뒤 미국내 가격과 비교한 지수인 '빅맥지수'로 세계 각국의 통화가치와 실질 구매력을 판단할 만큼 맥도날드의 영향력은 막강하다.

'버거의 상징, 맥도날드와 문화권력'의 저자는 맥도날드가 창업 자체를 하나의 신화로 포장해 정당성을 획득했지만, 그 허구적 정당성의 내면에는 기업에 녹아든 계급 불평등과 인종 차별을 감추고 있다고 까발린다.

깨 뿌린 빵에 두 개의 쇠고기 패티, 상추, 치즈, 양파, 피클과 특별한 양념 소스. 그러나 '빅맥'의 실체는 이것만이 아니다. 이데올로기가 살짝 뿌려져 있기 때문이다. 오로지 맛과 영양때문에 맥도날드를 찾을까. 그렇지만은 않다. 맥도날드가 파는 것은 햄버거 그 자체라기보다는 햄버거를 먹는 체험이다. 맥도날드는 자사를 현대화의 상징으로 광고하고, 소비자는 그 장단에 맞춰 지갑을 연 뒤 햄버거를 먹는 체험을 통해 그 속에 담긴 이데올로기에 알게 모르게 젖어든다. 감상적 미국주의를 부추기고 특정 세계(자본주의)를 옹호하는가 하면, 계급 불평등과 인종차별을 감추는 지독한 이데올로기를 빵 겉에 살짝 묻혀놓았다는 것.

맥도날드의 설립자, 레이 크릭이 가장 열정적으로 관심을 쏟았던 것은 특정 이미지를 만드는 것이었다. 막대한 돈을 뿌려 만든 광고를 통해 레이 크릭의 꿈은 이뤄졌다. 그 꿈은 바로 '미국과 맥도날드라는 기업의 동일시'였다. 흑백화면으로 구성된 광고를 통해 당시 맥도날드가 존재하지도 않았던 초창기 미국 역사를 날조하고, 맥도날드의 창업 자체를 하나의 신화처럼 포장해낸 것이다.

맥도날드는 광대 '로널드 맥도날드'와 황금 아치가 표상하는 가게의 출입자들에게 '너는 비로소 세련되고 현대화된 존재가 되었음'을 승인해주고, 소비자는 그 대가로 특정 이데올로기에 효과적으로 포섭된다. 이같은 이데올로기 주입은 중국, 러시아 등 자본주의화한 옛 공산권 국가에서 그 위력을 톡톡히 발휘한다.

맥도널드는 오락을 제공하면서 자신의 헤게모니를 대중에게 재교육한다. 학교 밖의 대표적 문화교육기관인 셈이다. 맥도날드로 대표되는 기업 문화교육의 핵심은 자본주의 기업시스템을 대중에게 승인시키고, 기업의 무한 착취를 용인받는 것이다. 특히 한국과 일본 아이들이 햄버거에 중독되고, 서구적 입맛에 길들여지도록 한 문화교육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요리의 본고장인 프랑스에서도 그 교육은 제대로 먹혀들어 샹젤리제 거리와 베르사이유 궁전 앞 거리에 맥도날드 포장지가 휘날릴 정도다.

저자는 기업의 왜곡된 권력과 이데올로기에 제대로 대응하기 위해서는 그 권력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기업이나 미디어가 쏟아내는 정보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을 비판적으로 검토.해석해 그 정보의 이데올로기적 맥락을 읽어내는 해독능력이 필요하다는 것. 기업의 문화권력은 온갖 기호학적 요소를 동원해 대중의 저항을 무력화시키려 하겠지만, 이 해독능력은 저항의 근거를 마련해준다.

미국의 교육역사학자인 저자는 미국 문화를 전파하는 교묘하고 집요한 맥도날드의 '전횡'을 파헤쳐, 화려하게 치장한 포장지에 스며든 음험한 이데올로기를 벗겨내고 있다. 빵과 쇠고기, 감자튀김 안에 감춰진 정치.사회.문화적 의미를 읽어낸 것이다.

한국 패스트푸드업계에서 토종 김밥과 떡볶이가 맥도날드를 제치고 있는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아이들과 함께 동네의 맥도날드 가게를 또 찾아간다면 맛과 영양뿐아니라 꿈결처럼 젖어드는 이데올로기도 함께 먹게 된다는것을 저자는 강조하고있다. 김병구기자 k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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