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한통의 편지를 받았다.
'집을 떠나면 두려워하는…. 만성 불면증에 시달리는…. 자살시도를 했던 부상자들…. 저는 이들에게 살아남은 기쁨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고픈 간절한 소망이 있습니다.
' 지난해 2월 발생한 대구 지하철 참사 부상자 가족의 글이었다.
며칠 전 이런 신문기사가 눈에 띄었다.
'50대 정신이상자가 현금다발을 길거리에 뿌려놓고 재(齋)를 올린다며 소동을 피우다 경찰에 의해 귀가 조치되었다.
'는 내용이다.
지하철 참사에서 심한 부상을 당해 치료를 받았으나, 최근 정신이상 증세를 보이고 있는 사람의 행동이다.
이를 목격한 주민들은 '지하철 참사가 한사람과 그 가정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지를 보고 놀랐다'고 전한다.
인간은 누구나 필연적으로 다양한 위기에 직면할 수 있으며, 그러한 위기상황의 경험은 심각한 정신이상 증세를 남긴다고 한다.
참전 용사들의 전쟁 노이로제, 성폭행을 당한 사람, 학대를 당한 아동은 그 후에도 오랫동안 정신적 고통을 겪는다.
지하철 참사, 삼풍백화점 붕괴 등 우발적으로 발생하는 사고는 큰 충격과 긴장을 유발하게 된다.
정상인들의 약 50% 이상이 한번 이상의 위기적 상황을 경험한다.
그들 가운데 약6%의 남성, 약 20%의 여성이 심리적 장애를 수반하고, 발병자의 약 30%는 장기 치료를 요하게 된다.
정신과 병동 입원 환자의 약 60%가 심한 위기 상황을 경험한 사람들이라 한다.
9.11테러가 발생했을 때 뉴욕시는 위기상담센터의 전문가들을 현장에 투입, 피해자들을 보살폈다.
전쟁 경험을 한 예비역 군인들의 정신적 후유증을 치료하기 위해 미국의 각 지역에는 상담센터가 운영되고 있다.
몇 년 전 서울의 등교 길에서 일본 어린이가 흉기에 찔렸다.
사건 직후 일본 정부는 심리 전문가를 파견하여 일본인 학교 어린이들의 상태를 체크했다.
그들의 정신적 충격을 완화시키고, 발생할지도 모르는 심리적 장애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지하철 사고가 난지 1년 반이 지났다.
당시의 성금이 아직 남아 있는 듯하다.
죽은 자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추모사업이 진행 중이라 한다.
그건 그대로 의미있는 일이다.
그러나 사고를 당한 후 아직도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는 사업이 필요하다.
'위기상담센터'와 같은 대형 사고의 정신적 후유증을 관리할 수 있는 전문기관이다.
이는 지하철참사 부상자들만의 것이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사고를 경험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시설이다.
위기와 사고에 수반되는 정신적 후유증을 가진 사람이면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개방적인 시설이 될 것이다.
지하철 참사를 계기로 모두가 필요로 하는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기 위한 지혜를 모아보자.
이성환 계명대교수.일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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