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현재' 묻어버린 '과거'

1944년 8월 프랑스가 해방되자 드골 임시정부 대통령은 '정의의 법정'을 세웠다.

나치 독일에 부역(附逆)한 '한 줌도 안 되는 비천한 것들'을 청소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실상은 달랐다.

한 줌으로 알려졌던 혐의자 명단은 200만 명에 이르렀고, 임시정부는 충격 속에 99만 명을 투옥시켜야 했다.

또 사형 6천700명, 종신형 2천700명 등 17만명을 처단했다.

나치가 프랑스를 점령한 것은 4년여다.

독일이 5분의 4를 통치하고, 그 나머지는 페탱 원수의 비시(Vichy) 괴뢰정권에 맡겨졌다.

투옥자를 기준으로 할 때 이 짧은 기간 동안 4천800만 프랑스 국민의 2%가 독일에 부역한 셈이다.

성인 인구만을 따지면 부역 비율은 3%대 근처일 것이다.

벨기에, 네덜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등은 더 철저하게 부역자들을 심판했다.

우리에게도 프랑스의 비시정부와 비슷한 시기가 있었다.

1907년 고종이 일제에 의해 강제 폐위되고, 순종이 꼭두각시 황제 노릇을 한 1910년까지의 3년이 그것이다.

약간의 기간 차가 있지만 프랑스의 부역자 비율을 참고하면 2천600만 인구 중 52만의 친일파들이 설쳤을 것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1910년 우리가 국권을 회복했더라면 프랑스 못지 않은 피바람을 일으켰을 것으로 생각된다.

문제는 우리의 불행이 36년이나 더 지속됐다는 사실이다.

프랑스의 4년과 우리의 39년은 10배라는 수학적 의미로 그 뜻을 헤아릴 수 없다.

4년은 잠시 지나가는 시간이다.

그러나 39년은 한 나라의 역사와 문화, 사고를 완전히 바꿀 수 있는 기간이다.

희망과 절망만큼의 차이가 있다.

그 암울한 한 세대 반 동안 자발적.소극적.냉소적 친일에 가담하지 않은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일제 식민정책의 대명사인 창씨개명은 그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

첫 3개월 동안의 자발적 창씨개명 비율은 7.6%였다.

당황한 일제는 징용.입학 거부.해고.사찰 등의 탄압책을 통해 창씨 비율을 79.3%까지 끌어올렸다.

친일의 과거사는 반드시 정리돼야 한다.

그것은 나라의 역사와 정의를 바로 세우는 일이다.

그러나 그 작업이 말처럼 간단치 않다는 데 고민이 있다.

창씨개명이 보여주듯 친일은 나라의 뼛속까지 스며든 것이다.

그 유산은 가네무라코유(김영삼), 도요다다이쥬(김대중)까지 이어졌다.

해방 이후 세대인 노무현 대통령이 과거사 청산을 들고 나온 것은 시대적 당위일 수 있다.

그러나 부친의 창씨개명이 말해주듯 역사의 어두운 그림자를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

과거사 청산은 정치적 이해관계를 초월하는 민족적 과업이다.

전 국민의 조상을 난도질하고, 자기가 살아온 한 시대를 부정하는 아픔을 감수할 수 있어야 한다.

모두가 역사 앞의 죄인이라는 숙연한 의식 없이는 감당하기 힘든 작업이다.

역사 위에 손을 얹고 당당할 수 있는 자가, 아무런 사심도 없이, 국민적 공감대 위에서, 균형 잡힌 역사관을 갖고, 역사를 바로잡을 능력이 있을 때라야 그 정통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최근의 과거사 논란은 그 점에서 출발이 잘못됐다.

엄숙한 국가적 과업이 불순한 동기에 물들여진 것이다.

한 쪽은 친일과 독재정권의 침탈을 까발리려 하고, 다른 쪽은 친북.용공으로 맞서게 된 것은 누가 봐도 정쟁의 산물이다.

일제의 앞잡이 부친을 가진 자가 과거사 청산의 목소리를 높이는 웃음거리만 파생시켰다.

어떤 조사결과가 나오든 또 다른 분란과 갈등만 일으키게 할 것이다.

과거사 청산의 접근방식도 적절하지 못했다.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절차가 없었다.

지금과 같은 좌우 이념대립 상황은 청산의 적기로 보기도 어렵다.

청산의 방식도 길고, 조용하고, 신중할 필요가 있다.

박정희 죽이기 식의 이벤트로 흘러서는 실패로 끝나기 십상이다.

여당 대표의 말처럼 1년 만에 매듭지으려는 조급성을 보여서도 안 된다.

프랑스가 4년의 청산을 위해 60년 동안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교훈 삼을 만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국정의 균형감각이다.

경제회생과 청년실업 해소와 같은 '현재의 역사'를 버려 두고 과거사에 매몰되는 태도로는 국민 지지를 얻을 수 없다.

배고픈 사람에게 꽃 타령이 제대로 귀에 들어오겠는가. 과거사 규명의 의지는 강하게 간직하되 그것을 국정의 최우선과제로 내세워서는 안 된다.

현재보다 중요한 과거는 없다.

현재를 실패한 정권이 과거를 성공시키기는 더욱 어렵다.

과거사 청산은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빠져들었다.

이전투구의 가능성만 높이고 있다.

시민단체가 배제된 순수 학술기구로 조사작업을 항구화하되 조사 결과의 발표와 역사적 단죄는 현 정권이 퇴장한 뒤로, 국가적 공감대가 무르익은 때로 미뤄야 한다.

민족의 앞길을 밝히는 과거사 청산에는 무한한 시간이 있다.

어설픈 정치적 청산은 국가적 재난이 될 뿐이다.

박진용(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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