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악기이야기-(17)­박수의 미학

짝짝짝~ 가장 원초적인 악기, 손바닥

아무런 기구 없이 두 손바닥을 치는 것만으로도 감동을 엮어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손바닥은 가장 원초적인 악기이다.

청중들은 박수를 통해 감동의 순간을 간직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기악 공연에 있어 악장 사이의 박수는 결례에 속한다.

악장 사이에 박수를 치지 말란 법은 없으나, 시도 때도 없는 박수는 연주자의 몰입을 방해한다.

최근 대구에서 있은 정트리오의 연주회장에서는 악장 사이 때마다 터지는 박수 때문에 정경화가 박수를 치지 말라고 여러번 손짓으로 당부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청중의 환호와 박수는 연주자들에게 에너지원이다.

그러나 감동이 없음에도 손바닥을 고생시킬 때도 있다.

형편없는 연주를 들은 뒤 청중이 의례적으로 보내는 박수는 자신의 고통도 끝났음을 자축하는 뜻도 담겨 있을 터이다.

지난 6월 충북 영동의 한 음식점에서는 40대 남자가 자신의 색소폰 연주를 듣고 박수를 치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람에게 흉기를 휘두르는 사건이 일어나기도 했다.

하프 연주자이자 성악가였던 로마황제 네로는 갖은 에피소드를 남겼다.

네로는 로마 전역의 음악 콩쿠르를 휩쓸었다.

당시 심사위원들은 처형당할까 두려웠던 모양이다.

네로는 연주회 때마다 수천명의 박수부대를 동원했다.

황제의 연주가 끝날 때까지는 어느 누구하나 자리를 뜨지 못했고 출입구는 경비병이 지켰다.

연주를 듣다가 출산하는 여인도 있었고, 너무 지겨운 나머지 실려 나오려고 죽은 척했다는 사람에 관한 기록도 있다.

19세기 이전만 해도 클래식 연주장의 분위기는 요즘 대중음악 콘서트장과 일견 비슷했다.

동원된 '박수 부대'가 있었고, 청중들은 자신이 좋아하지 않는 음악가가 나오면 딴전을 부리거나 식사를 했다.

바그너에 이르러서야 연주회장의 불이 꺼졌다.

재채기만 해도 모든 사람들로부터 눈총을 받을 정도의 정숙함을 요구받는 클래식 콘서트장의 분위기는 19세기 이후 시작됐다.

음악회의 완성은 연주자만의 몫은 아니다.

좋은 연주에는 박수와 환호를 아끼지 말자. 박수라는 비언어적인 교감을 통해 청중들은 소비자의 한계를 넘어 생산자의 위치를 획득할 수 있다.

브라보(Bravo)는 '잘한다', '신난다', '좋다'는 뜻의 표현이다.

그러나 브라보가 남자 연주자나 무용수에게 환호를 보낼 때 쓰는 말이라는 것은 그리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정확한 표현대로라면 여자 연주자나 무용수에겐 브라바(Brava), 남녀 연주자나 무용수 모두에게는 브라비(Bravi)라고 환호해야 한다.

물론 통틀어서 브라보라고 해도 지장은 없다.

최근 '파이팅'을 '아자'라는 우리말로 바꾸자는 움직임이 있다고 한다.

연주회장에서도 '브라보'보다는 '얼씨구', '잘한다' 등 우리말을 써도 어색하지 않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김해용기자 kimhy@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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