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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죽했으면 벼논 갈아엎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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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돼, 제발 그만 해요. 누가 좀 말려줘요."

22일 칠곡군 가산면 송학리 들판. 젊은 주부의 애끓는 절규가 이어졌다.

밭에서 일하다 나온 듯 흙묻은 보라색 고무신에 전형적인 농촌주부 차림새다.

박경란(37)씨의 눈물어린 호소에 '논갈아엎기' 시위에 나선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 회원들도 숙연해져 한동안 할 말을 잊었다.

그 논은 박씨가 여름내 땀 흘려 가꾼 땅.

트랙터가 수확을 앞둔 벼를 무자비하게 갈아엎자, 박씨는 넋이 나간 듯 한동안 논주변을 이리저리 헤맸다.

이어 전농회원들과 논두렁에서 현장을 지켜보던 남편 장재호(44)씨에게 달려가 가슴을 두드리며 울부짖었다.

"됐어, 이제 그만해. 제발…" 장씨가 미동조차 않자, 곁에 서있던 전농 경북도연맹 황인석 의장에게 호소했다.

"제발 그만하라고 좀 해줘요. 그만해요." 애처롭게 바라보던 황 의장의 얼굴이 더욱 굳어졌다.

불과 몇분전 황 의장은 "눈물을 머금고 논을 갈아엎는다.

농민의 피눈물을 똑똑히 기억하라"고 외쳤다.

논두렁에 주저앉았던 박씨는 행사가 채 끝나기도 전에 논두렁 사이를 휘적휘적 빠져나갔다.

국도변 논두렁에서 현장을 지켜보던 마을 노인들의 눈에도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행사가 끝나자 마을 주민들은 막걸리통을 놓고 둘러섰다.

"명문대학까지 나온 사람이 요즘 사람 같지 않다니까. 삼복더위 속에서도 하루종일 땡볕에서 억척으로 일하고 시부모에게도 얼마나 잘하는데…." 박씨에 대한 칭찬에 이어 푸념과 정부에 대한 비판이 쏟아졌다.

"오죽하면 애지중지 가꾼 논밭을 갈아엎겠어. 정부가 농민들을 이렇게 천대하면 더 이상 농촌에서 살 수가 없지. 내년부터는 정말 살 길이 막막해. 쌀 농사 지어봤자 팔 데가 없으니…."

"이젠 농사지어 아이들 고등학교도 못 보낸다니까. 농사 지을수록 빚이 더 쌓이니 농사를 포기해야지."

농민들의 푸념이 계속되는 사이 전농 회원들은 청와대, 농림부, 외교통상부 등 정부 각 부처에 보낼 상자에 흙묻은 벼포기를 담았다.

칠곡'이홍섭기자 hslee@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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