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거 할매 5만원, 척추장애 5만원, 백혈병 5만원, 지체장애, 시력 장애....'
구두수선공 최국해(65.대구 동구 신천 3동)씨의 작은 공책에는 이웃들의 이름과 처한 사정, 금액이 빼곡히 적혀있다.
최씨가 지난해 12월 문을 연 이웃 돕기 운동 '사랑나눔샘터'에서 매달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다.
동구 신천 3동에 살고 있는 생활보호대상자 200여 가구 중 특히 사정이 딱한 30여 가구가 대상. 동네 주민들이나 단체로부터 현금이나 물품을 받아 어려운 이웃들에게 전달한다.
"없는 형편이라 돈으로 도와주기는 어렵고 나이가 들어 몸으로 하는 봉사도 못해요. 대신 주변의 손길을 이웃들에게 연결시켜주기로 마음먹었죠."
최씨는 2평 남짓한 비좁은 가게에서 25년 가까이 구두를 닦고 수선해왔다.
한달 벌이는 70만∼80만원. 넉넉지 않은 형편이지만 벌써 20년 넘게 남 돕는 일에 앞장서 왔다.
어려운 살림, 하루 벌이에 빠듯하지만 소년소녀 가장에게 학비를 대 주고, 1주일씩 가게 문을 닫고 들꽃마을 중환자들을 돌보았다.
최씨는 25년 전 다니던 직장을 그만 두고 식품업에 손댔다가 크게 실패했다.
수중에 남은 건 단돈 6만원. 아내는 애 업고 취로사업 나가고, 최씨는 일자리를 찾아 헤맸다.
큰 애 둘에게 뻥튀기를 안겨 방안에 놔두고 문을 잠그고 나갔다.
끼니 거르기가 다반사였다.
그러다 빚을 내 구두수선집을 시작했다.
조금 먹고 살만해지자 남들 생각이 났다.
눈보라가 몰아치던 어느 추운 겨울날. '추위에 떨며 굶고 있는 사람들이 있겠군'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게 시작이었다.
당장 구청 사회복지과에 찾아가 어려운 소년가장을 소개해 달라고 했다.
하지만 담당 공무원의 시선은 차가웠다.
"저의 초라한 행색 때문인지 선뜻 얘기를 안해주더군요. 중요한 건 돈이 아니라 부모 역할 아니냐고, 누구보다 따뜻한 사랑을 줄 수 있다고 부탁했어요."
주위에 소문이 나면서 돈 봉투를 갖다 놓는 이들도 생겼다.
고마워하는 이웃들에게 최씨는 "나는 그저 심부름꾼"이라며 쑥스러워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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