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국의 전통생태학

우리의 전통마을은 산을 뒤로 하고 하천을 바라보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가파르지 않은 남향 산기슭에 발달했다.

마을 앞의 논은 오랜 세월 산에서 흘러내린 미세한 점토와 유기질 토양이 쌓인 문전옥답(門前沃沓)이었고, 마을 뒤 경사면은 무덤과 숲으로 연결되었다.

이 같은 공간 짜임은 풍부한 샘물로 취수가 편리하고, 일조량이 많고, 북서 계절풍을 피할 수 있으며, 연료 채취가 쉬워 외부 침입에 대한 방어에 유리했다

우리의 전통 화장실인 뒷간은 또 어떤가. 원래 전통 뒷간은 채광과 통풍을 위해 열린 구조로 되어 있다.

서구 문화의 영향으로 닫힌 구조로 바뀐 요즘 뒷간들은 오히려 비위생적 구조인 셈이다.

주로 나무·흙· 돌 등으로 벽을 친 뒷간의 변통(분뇨 저장 시설)은 깊고 넓은 것을 사용했다.

발효되지 않은 똥오줌은 채독(菜毒)을 일으키기 때문에 충분히 발효시키기 위함이었다.

우리나라에 '생태'라는 개념이 알려진 것이 언제쯤인지는 정확하지 않으나 우리 조상의 지혜와 슬기로운 삶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옛사람들은 이미 생태학적으로 살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서울대 환경계획연구소 이도원 교수가 펴낸 '한국의 전통생태학'은 이처럼 우리 선조의 삶에 깊이 뿌리내린 생태학적 지혜를 담고 있다.

그렇다면 전통생태학이란 무엇일까. 전통생태학은 삶의 꼴, 살아가는 모습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서구의 생태학(ecology)이 집(eco)의 학문(logos)으로 푸는 것과는 개념부터 다르다.

서구인들은 주민들의 복지향상을 꾀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개발에 초점을 맞춰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자연을 무시한 개발이 초래한 결과는 어떤가. 인간들의 무분별한 탐욕으로 인해 지구는 점점 폐의 기능이 상실돼 숨을 멈춰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어찌 보면 서구의 정복자들이 무시해온 우리 조상의 친환경적이고 생태학적인 삶이 더욱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산물이 아닐까. 우리 조상의 머릿속에는 오늘날처럼 자연을 정복한다거나 개조한다는 생각은 찾아볼 수 없으니 말이다.

전통 마을 가꾸기 사업을 지도하는 현장 활동가, 생태학자, 건축학자, 화가 등으로 이루어진 '전통 생태 모임'에서 발표된 연구 논문들을 엮은 이 책에는 자연과 삶의 일치를 추구한 풍수지리, 마을 숲 가꾸기, 자연을 섬기는 굿 문화, 배설과 정화의 기능을 함께 갖춘 사찰의 해우소, 전통회화·시문에 나타난 자연주의 미의식 등 우리의 전통문화가 바로 생태주의였음을 잘 보여주는 사례들이 총망라돼 있다.

물론 이들의 논의와 주장들은 앞으로 과학적인 연구와 검증이 더 필요하다.

하지만 한국 전통생태학의 현주소요, 출발점이자 시금석으로 새로운 장을 열기에 부족함이 없다.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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