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년 10월 1일 대구를 비롯한 경북 일대에서 군중과 경찰이 충돌을 일으켰다.
이른바 '대구폭동'의 시작이었다.
남한내 공산진영이 세력확장 과정에서 갖가지 불법·파괴 활동으로 사회 혼란이 야기되자 이들의 활동을 방관했던 미 군정은 공산주의 세력의 활동을 불법화했고, 공산당 간부들에 대한 체포령을 내렸다.
이에 공산세력들은 남한사회 내 혼란을 유도하기 위해 여러가지 활동을 펼쳤고 그 결과 9월 24일 전국적인 철도 파업이 발생했다.
공산당은 이후 철도 파업을 다른 분야에까지 파급시키기 위해 배후 조종과 선동을 강화했다.
대구에서는 좌익단체인 '대구노동평의회'가 주동이 돼 '남조선 총파업 대구시 투쟁위원회'란 명칭으로 각 직장의 파업을 조종·선동하기 시작했다.
이에 경찰은 그 단체를 불법이라 규정하고, 동 투쟁위원회의 간판을 떼어버리고, 파업조종자의 색출과 함께 파업금지에 나섰다.
이로 인해 경찰과의 충돌이 벌어졌으며, 이 사태가 대구의 10 ·1폭동사건을 유발한 직접적 원인과 동기가 되었다.
노동평의회 본부에서 시작한 폭동은 달성, 영천을 비롯해 경북 전역으로 확대되며 계엄령이 선포됐고, 이틀 뒤 충청남북도 경찰 병력 700여 명이 증파되면서야 끝이 났다.
당국의 발표에 의한 공식 희생자만 사망 20명, 중상 50명, 행방불명 30명이었고,폭동혐의로 검거된 자는 5천여 명에 달하였다.
해방 이후 불안한 국내 정치로 인해 발생한 가슴 아픈 사건이었다.
▲1910년 일제, 조선총독부 설치 ▲1926년 영화 '아리랑', 단성사서 개봉 ▲1942년 최현배 등 학자 30여명, 조선어학회 사건으로 구속 ▲1964년 일본 신칸센(新幹線) 개통
조문호기자 news119@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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