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음악인생 정리 앨범 낸 김민기

"1971년에 냈던 첫 음반은 내자마자 압수당하고 1978년 '공장의 불빛'은 카세트테이프에 복제해 냈습니다. 이 두 앨범은 전쟁통에 아이를 잠시 맡겨두고 아직도 찾아오지 못한 자식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음악인으로 출발해 이젠 뮤지컬 제작자로서 더 유명한 김민기가 30여년 동안 발표해 온 음악들이 한데 묶여 세상에 나온다.

또한 1970-80년대 시대정신의 상징처럼 여겨졌던 김민기의 음악과 인생을 총망라한 책 '김민기'(한울)도 이에 맞춰 출간됐다.

김민기는 1971년 발매된 데뷔앨범 '김민기'의 LP 음원을 복원하고 1978년 녹음하고 이듬해 초 불법 카세트테이프로만 선보여 노동 현장에서 쉬쉬하며 돌려 듣던 노래굿 '공장의 불빛'이 처음으로 다시 빛을 보게 된 소감을 '버려둔 자식을 되찾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그는 13일 오후 서울 삼성동 백암아트홀에서 음반 패키지 발매와 출판 기념회를 겸해 기자회견과 쇼케이스를 열었다.

그의 오랜 지인이자 책 '김민기'를 엮어낸 성공회대 김창남 교수의 사회로 진행된 이 행사에서 김씨는 '공장의 불빛'을 녹음하던 당시를 회상했다.

"1978년말은 10.26 사태 1년 전 쯤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각오와 사명을 갖고 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시작을 하다보니 심상치 않더라고요. 당연히 취조받게 될 것이고 당시에는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이 앨범은 송창식 씨 개인 스튜디오에서 담요로 창문을 가리고 몰래 녹음했지요. 이후 저는 농촌으로 내려갔습니다."

'공장의 불빛'은 1979년 불법으로 제작된 뒤 은밀하게 복사돼 사람들 사이에 퍼 져나간 노동가요. 80년대 이후 현재까지도 노동운동 현장에서 널리 불리고 있다.

'공장의 불빛'은 봉제 공장을 배경으로 편지-교대-사고-작업장-야근-음모-선거 -싸움과 패배-해고와 새로운 결의로 이어지는 과정이 유기적으로 이어진 일종의 노래극이다.

"공장을 배경으로 한국 노동운동의 초기 중기의 스테레오타입을 보여주고 있어요. 그 당시에는 지금처럼 집회같은 것은 없었지요.".

'공장의 불빛'을 다시 내놓게 된 데는 천재로 불리는 신예 뮤지션 정재일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김민기는 여러 장르를 넘나들 수 있는 흔치 않은 뮤지션 정재일에게 프로듀싱을 맡겼다.

정재일은 "어려서부터 김민기 선생님의 곡을 많이 듣고 좋아했어요. 1970년대에 이런 음악과 그런 힘든 상황이 있었구나 하는 생각에 놀라웠어요. 슬프기도 하고 익살스럽기도 하고 신비롭기도 한 그런 느낌이었죠."

그러면서 김민기는 정재일에게 원곡에 신경쓰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만들어 보라고 주문했다.

정재일은 "처음 몇달 동안은 굉장히 고민했는데 집시음악과 우리나라의 정악과 현악 등 국악을 접목하고 합창 음악, 일렉트로닉하고 전위적인 음악을 다 섞어 앨범을 복원해 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쇼케이스에서 이지영, 이승열, 이소은 등 객원가수들의 목소리로 들려준 2004년판 '공장의 불빛'은 타악기와 장구, 전자음, 국악 등을 접목해 웅장하면서도 비련한 분위기를 새롭게 재현해 내고 있었다.

한편 1971년에 LP로 발표한 뒤 이내 금지조치가 내려진 음반 '김민기'는 이번에 앨범 음반 패키지 'Past life of 김민기' 안에 수록됐다. 1971년 LP로 500장이 제작됐다 곧 수거돼 종적을 찾기 어려웠던 음반을 통해 양희은의 목소리로 잘 알고 있는 '아침이슬'을 부르는 가수 김민기의 면모를 확인할 수 있다.

또 1984년 작업한 노래일기 '엄마 우리엄마'와 1987년 작업한 '아빠얼굴 예쁘네요'를 복원한 CD도 음반 패키지 여섯 장 CD를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는 1993년 발매됐던 김민기 1.2.3.4를 다시 마스터링하고 '밤뱃놀이', '눈길','아침', '아침이슬'의 독일어 버전 Morgentau 등을 추가해 넉 장의 CD에 담아냈다.

이 앨범은 당시를 기념하듯 LP 크기의 재킷에 담았다. 김민기와 1970년 '도비두'란 그룹에서 듀엣으로 활동했던 김영세 씨가 대표로 있는 이노디자인에서 앨범 재킷 디자인을 맡았다.

김민기는 1979년 당시와 현재를 비교해 달라는 질문에 "민노당이 원내에 진출한 지금의 세상은 너무 많이 달라졌다"고 운을 뗀 뒤 "노동운동하는 사람들이 1970년대 초기 힘들지만 소박했던 초기의 모습을 기억하고 초심을 잃지 않기를 부탁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 문제 질문에는 정치적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고 말을 아꼈다.

그는 사실 음악인으로서보다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의 연출.제작자로 더 유명하다.

"금년에 '지하철 1호선'이 만 10년을 넘겼고 최근에는 아동 뮤지컬을 만들었습니다. 앞으로는 좀더 자유로운 일을 해 보고 싶습니다. 아직 연극이든 뮤지컬이든 장르는 정해지지 않았지만 아이들에 관련된 작업이 될 것으로 생각됩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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