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한·미·중·일 영화 풍경 '인기소재는 국민열망 표상'

영화는 생물(生物)이다.

살아있는 것들이 돋보이기 위해 치장을 하듯 관객들에게 선택받기 위해서 영화도 치장이 필수다.

파격적이지 않다면 유행의 흐름에 순응하는 것이 좋은 방법. 우리나라를 비롯한 미·중·일의 최근 영화계를 주름잡는 코드를 짚어보자.

◇한국

실화처럼 극적인 것이 또 있을까. 올해 우리나라 스크린과 브라운관은 역사책에서 뛰쳐나온 인물들의 활약이 두드러진 한 해였다.

북파공작원의 진실을 밝힌 '실미도'를 시작으로 안중근 의사(도마 안중근), 극진 가라대의 고수 최배달(바람의 파이터), 프로레슬러 역도산(역도산), 화가 김홍도(기운생동), 혁명가 김산(아리랑) 등 관객들에게 친숙한 인물부터 최초의 여류 비행사 박경원(청연), 원년 프로야구의 패전처리 전문투수 감사용(슈퍼스타 감사용) 등 새롭게 발굴된 사람까지 다양한 인물들이 스크린에서 새 생명을 얻었거나 앞으로 탄생할 예정.

이런 실화 영화의 붐은 영화에 그치지 않고 TV드라마에까지 확산되고 있는 실정. 이순신은 '불멸의 이순신'으로, 삼성과 현대 등 국내 대표기업인들의 삶은 '영웅시대'로 각각 안방극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충무로 한 영화인은 "요즘처럼 어려운 경제현실과 불안한 정치 상황에서 관객들은 실화 영화를 통해 위안을 삼고 희망을 얻게 되기 때문에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미국

충무로가 실화 인물들에 초점을 맞췄다면, 최근 할리우드는 가을 올림픽을 개최한 듯한 인상이다.

지난달 테니스를 소재로 한 유니버설의 로맨틱코미디 '윔블던'과 디즈니의 야구코미디 '미스터 3000'이 맞붙은 것을 시작으로 내년까지 각종 스포츠를 소재로 다룬 영화가 속속 개봉될 예정.

내년 개봉 목표로 제작중인 영화들은 다종다양하다.

일단 눈에 띄는 것은 아카데미 수상자들이 대거 출연하는 권투영화 두 편. 전설적인 복서 짐 브라독의 일대기인 '신데렐라 맨'엔 러셀 크로가 나섰고,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연출한 '밀리언 달러 베이비'에는 모건 프리먼과 힐러리 스왱크가 진용을 짰다.

미국인의 스포츠인 미식축구도 예외는 아니다.

빌리 밥 손튼이 등장하는 '프라이데이 나이트 라이츠'가 이미 미국 전역에 개봉돼 박스오피스에서 순항중이며, 애덤 샌들러가 출연하는 리메이크작 '최장의 야드'도 대기하고 있다.

또 새뮤얼 잭슨의 '코치 카터', 디즈니와 제리 브룩하이머가 손을 잡은 '영광의 길', 그리고 드루 배리모어가 나서는 코미디 '피버 핏치' 등 야구영화도 풍성하다.

이 밖에 축구코미디 '키킹 앤드 스크리밍'과 커트 러셀과 다코타 패닝의 승마영화 '드리머'도 제작중이며, 스케이드 보드(도그타운의 제왕)나 비치 발리볼(클라우드 나인) 같은 한 번도 스크린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종목도 인기다.

할리우드 제작자들이 앞다퉈 스포츠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제작비가 덜 드는 데다 한층 성장한 DVD 시장에서 스포츠영화가 인기를 끌고 있기 때문.

◇중국

거대한 땅덩어리와 인구에 걸맞게 중국 대륙은 요즘 블록버스터급 무협영화가 한창이다.

장이머우 감독의 '연인'이 중국에서만 1억7천위안(약 240억원)을 벌어들이는 '대박'을 터뜨린 것을 신호탄으로 거대 예산이 들어간 무협영화의 제작이 잇따르고 있는 것.

특히 이들 무협영화에는 최근 대륙에 부는 한류열풍을 감안한 듯 한국 배우들이 대거 얼굴을 내비치고 있어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이 중 장이머우와 함께 중국 5세대 대표 감독으로 꼽히는 첸 카이거의 330억원 프로젝트인 '무극'(영어 제목 The Promise)에는 장동건이 캐스팅됐다.

운명이 적혀 있는 책 '무극(無極)'을 둘러싼 사랑과 우정, 배신을 그린 판타지 액션물인 이 영화는 한국의 장동건과 홍콩의 장바이쯔(장백지), 일본의 사나다 히로유키가 출연해 한·중·일 세 나라의 연기대결이 펼쳐진다.

여기에 김희선과 최민수가 출연, 화제를 낳고 있는 '더 미스(The Myth, 驚天傳奇)'도 350억원 규모의 블록버스터. '폴리스 스토리', '홍번구' 등을 만든 당계례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이 영화는 황제의 호위무사(성룡)와 진시황에게 강제로 시집 온 고조선 옥수공주(김희선)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다룬 액션 판타지 멜로물. 최민수는 청룽과 맞대결하는 고조선의 무사로 열연한다.

◇일본

요즘 일본 영화계는 2차대전의 패전을 다시 한번 곱씹고 있는 모양이다.

2차대전을 소재로 한 전쟁영화들이 줄지어 제작되고 있는 것. 가장 뚜렷하게 모습을 드러낸 프로젝트는 나치가 개발한 비밀무기를 싣고 가는 일본 잠수함에 대한 이야기인 '로렐라이'. 이 영화는 '셀 위 댄스' 등으로 우리에게도 친숙한 야쿠쇼 고지가 잠수함 지휘관 역에 캐스팅됐다.

또 2차대전 당시 실존했던 전투함을 소재로 한 전쟁극 '운명의 이지스'와 '전투함 야마토'도 내년쯤 각각 촬영에 들어갈 계획이다.

정욱진기자 penchok@imaeil.com사진: 영화 '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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