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170여명과 일반 승객 750여 명을 태우고 30일 낮 서울역을 출발한 부산행 고속철(KTX)은 그야말로 가을의 서정이 넘치는 낭만열차였다. 한국 현대시 100년과 '시의 날'(11월 1일)을 맞아 한국시인협회가 마련한 '시낭송 열차'행사. 특별객차 내 시낭송 마이크 앞의 시인들은 가을 빛깔의 목소리로 자작시를 읊었고, 일반 승객들도 애송시를 낭송했다. 그 자리의 모든 이들은 시와 가을에 행복하게 취했다.
◎…'시의 날' 하루 전인 31일, 84세의 한 노시인이 세상을 떠났다. 코가 납작하다 하여 평비(平鼻)라는 별명으로도 불렸던 원로 시조시인 김상옥. 60여년간 해로했던 아내가 갑작스레 죽은 후 곡기를 끊어 결국 사별 5일만에 아내 뒤를 따라가고 말았다. 15년 전 다리를 다쳐 내내 휠체어 신세를 져야했던 시인에게 변함 없는 사랑의 손발이 돼주었던 아내였다.
◎…그의 아내는 얼마 전 허리를 다쳤는데 사진을 찍어보니 이미 여러 군데 뼈가 부러진 상태였다. 자기 몸 부서진 것도 모를 만큼 남편 수발에 헌신적이었다. 그러기에 그런 아내의 부재는 시인에게 견딜 수 없는 고통이었고, 아내를 향한 그리움은 세상의 어떤 것으로도 메울 수 없었다. 병상의 아내에게 "자네를 전생에서 본 것 같네. 우리의 생은 다 끝났나 보네"라고 했다는 시인의 말이 그대로 절명시(絶命詩)가 된 셈이다.
◎…1938년 매일신보 현상공모에 당선됐던 박계주의 장편소설 '순애보(殉愛譜)'는 당대를 휩쓴 화제작이었다. 국내 출판역사상 기록적인 베스트셀러로 기록될만큼 대중의 가슴을 적셔주었던 가슴 아픈 사랑 이야기였다. 1회용 사랑, 싸구려 사랑이 범람하는 이 시대에 노시인의 순애보는 우리에게 새삼 '사랑'이라는 화두를 떠올리게 한다.
◎…순정(純情)이 상실된 세상에 대한 역설인가. 최근 일본에서는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라는 영화가 최고의 순애보 영화로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영화 사이트들의 조사 결과 '내 머리 속의 지우개'라는 순애보적 사랑을 그린 영화가 이 가을 네티즌들이 가장 보고 싶어하는 영화로 선정됐다. 내년 '시의 날'엔 어쩌면 김상옥 시인의 절절한 시가 낭송될 것 같다.
전경옥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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