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아름다운 함께살기-대장암 투병 전명기씨

정욱(26)씨는 오늘도 잠시 짬을 내 어머니가 묻힌 납골당으로 향했다.

2년전 가을, 간경화로 세상을 뜬 어머니께 부탁드릴 게 있어서다

"엄마, 제발 아버지까지 데려가지 마세요. 부탁드려요."

정욱씨의 아버지 전명기(58·서구 평리4동)씨는 2급 지체장애인이다.

어릴 적 소아마비로 왼쪽다리를 제대로 쓸 수 없다.

이름보다 '다리병신'으로 더 많이 불렸다고 한다.

사랑스레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던 아내는 2년 전 먼저 세상을 떴다.

슬픔도 잠시, 불행의 그림자가 이번에는 전씨의 목을 옥죄었다.

지난 10월 중순 '대장암 4기' 판정을 받고 암세포가 간까지 전이됐다는 진단을 받았다.

폐에서도 종양이 발견됐다.

아내를 잃은 슬픔이 암세포가 되어 그의 대장과 간과 폐를 갉아먹고 있었다.

전씨가 앓고 있는 대장암은 특별한 증상이 없다.

암세포가 차츰 커지면서 피가 섞인 점혈변(粘血便), 변비나 설사가 계속되고, 말기에는 악액질(惡液質)이 되어 각종 합병증도 수반한다.

"수술비, 치료비 걱정 때문에 아버지가 점점 살겠다는 의지를 잃고 있어요. 암세포로 고통받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도 힘들지만 자꾸만 삶을 포기하려는 아버지 때문에 견딜 수가 없습니다.

"

정욱씨는 지난 가을 대학에 휴학계를 냈다.

여동생 은정(20)씨도 이번 학기만 다니고 휴학할 예정이다.

어쩌면 학교를 그만둬야 할지도 모른다.

새벽 3시부터 정오까지 생활정보지를 돌리는 정욱씨의 한달 월급은 40여만원. 은정씨의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30만원도 채 안된다.

이제부터 감당해야 할 병원치료비에는 턱도 없다.

치료방법은 암세포를 긁어내는 수밖에 없다.

9일 오후 1시 대장과 간에 붙은 암세포를 제거하는 1차 수술을 시작으로 4개월 뒤에는 폐에 있는 악성종양 제거수술도 해야 한다

또 일년간 항암치료를 해야 한다.

하지만 전씨는 아내의 치료때 진 빚 2천여만원, 매달 나가는 은행이자, 앞으로의 치료비까지 도무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 조용히 죽음을 맞이하자고 하루에도 몇번씩 입술을 깨문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정욱씨와 은정씨는 어머니의 운명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B형간염 보균자였던 어머니의 피를 물려받아 은정씨도 꾸준히 약을 먹어야 하는 간염 환자가 됐다.

약값만 매달 12만원.

정욱씨는 "장애인과 결혼한다고 양가부모도 참석하지 않은 채 결혼식을 올린 어머니의 포근했던 가슴이 너무 그립다"며 "몰래 눈물을 훔치는 동생에게 화를 내곤 하지만, 내자신도 흐르는 눈물을 멈출 순 없다"고 했다.

정욱씨가 스무살을 넘겼기 때문에 정부의 기초생활수급대상자 보조금은 한 푼도 받을 수 없다.

어머니의 죽음 이후 항시 불안감과 걱정에 시달리고 우울증세까지 겹친 '범불안장애'를 겪고 있는 정욱씨는 "어머니께 못했던 효도를 아버지께 몇배로 갚아드릴 수 있도록 도와달라"며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지난 1984년 매일신문이 주최한 여성생활수기공모에 당선된 '목마위의 인형'이라는 글에서 이렇게 썼다.

'진정 운명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지 찾아오는 게 아님을 실감케 한다.

진정 따뜻한 저 봄의 햇볕이 가득가득 쏟아지는 우리집….' 정욱씨가 바라는 곳은 바로 그런 집이다.

'아름다운 함께살기' 제작팀 계좌번호는 대구은행 069-05-024143-008 (주)매일신문입니다.

서상현기자 ssan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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