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화제의 저자-장정일 집필 5년만에 '삼국지' 펴내

"신출귀몰한 '신화'가 아니라 인간의 숨결을 담은 '소설'을 쓰고자 했습니다.

제갈량이 동남풍을 불러일으켜 전투에서 이기는 장면도 신비화시키지 않고 사실적으로 그리고자 노력했습니다.

그런점에서 이번 '삼국지'는 개인적인 창작품이자, '삼국지'의 새로운 판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과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 등의 문제작을 발표했던 대구출신 작가 장정일(42)씨가 '장정일 삼국지' 전 10권을 김영사에서 출간했다.

집필에 들어간 지 5년여 만이다.

작가는 '장정일 삼국지'는 기존의 '삼국지'와 여러 면에서 다르다고 한다.

원말(元末)·명초(明初)에 편찬된 '나관중본'이나 청대(淸代)에 나온 '모종강본' 등을 그대로 번역한 것이 아니라 작가의 시각에서 역사를 새롭게 해석한 것이라는 얘기다.

"'나관중본'이나 '모종강본'도 숱한 판본 가운데 하나일 뿐입니다.

정사에는 도원결의니 초선의 미인계니 적벽에서의 연환계 따위는 없었어요. 유명한 삼고초려에 대해서도 무수한 해석이 존재합니다.

"

작가는 따라서 "'삼국지'에 정본이 있다는 믿음은 허구"라며 "당대의 가치와 역사관을 고스란히 반영한 '나관중본'이나 '모종강본'에서 벗어나 '한국판 삼국지'를 쓰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장정일 삼국지'는 우선 중화주의와 춘추사관을 벗어나 민중과 변방인의 시각을 도입해 역사를 다시 보고자 한 것이 눈에 띈다.

작가는 새로운 중국 패권주의가 도래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중화주의로 점철된 '삼국지'를 무비판적으로 읽는 것은 위험하다고 강조한다

작가는 나관중과 모종강이 구축해 놓은 화이론(華夷論)적 차별을 해체하고 한나라 멸망의 전조였던 황건적의 난을 황건농민군의 봉기로 해석했다.

나관중과 모종강은 유비와 황건군이 합작했던 역사적 사실을 어물쩍 넘어가는 등 역사를 왜곡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공손연이 연나라를 세우고 위나라에 대적했을 때 위의 황제인 조예가 고구려 동천왕에게 지원을 요청한 것이 역사기록에 남아 있다.

작가는 기존 '삼국지'에 누락된 이런 장면을 복원함으로써 '삼국지'를 한족만의 소설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역사소설로 복원시키고자 했다.

"독자들이 유비나 조조의 편이 될 필요는 없어요. 기존 삼국지에서 유비의 삼형제가 죽고 난 다음부터는 읽기가 싫어지는 것도 그들에게 너무 감정이 이입됐기 때문이죠." 작가는 나관중의 이분법이 독자들에게 선택의 여지를 없앴다며 이를 객관적으로 그리려고 노력했다고 말했다.

"삼국지는 위·오·촉 삼국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고구려 등 수많은 주변국들이 등장하는 동아시아의 역사입니다.

그 부분을 더 부각시키지 못한 것이 아쉽습니다.

" 작가는 그러나 이번 삼국지가 우리나라 작가들도 자기 판본의 '삼국지'로 싸우는 길을 열었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내려달라고 했다.

'장정일 삼국지'는 '~사옵니다' '하노라' 등 고어체 어미를 버리고 한글세대의 감각에 맞게 간결한 어투를 사용했으며, 모든 연도 앞에 서기를 표시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가치관에서 벗어나 여성주의 시각을 도입한 것도 '장정일 삼국지'만의 특징으로 꼽힌다.

이번 삼국지에는 김태권 화백이 주변 민족과 민초들의 생활사와 복식사를 고증해 복원한 152장의 삽화가 실렸다.

영웅 중심의 인물소개에서 벗어나 주요 등장인물들의 성격유형을 분석하고, 작은 인물들까지 다양하게 소개한 '인물로 읽는 장정일 삼국지'가 부록으로 들어있기도 하다.

'장정일 삼국지'가 스테디 셀러로 자리잡은 '이문열 삼국지'나 최근 출간된 '황석영 삼국지' 등과 더불어 새로운 독자들의 시선을 얼마나 이끌어낼지 주목된다.

조향래기자 swordjo@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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