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주간 데스크-태극기를 내려라

삼성 라이온즈 선동열 감독은 현역시절 기자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대외적인 이유는 한국 프로야구 최고의 투수이면서도 다른 스타들과 달리 겸손하고, 성실했기 때문이다.

물론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선 감독이 경기에 출전하는 날은 경기가 빨리 끝난다.

'칠 테면 쳐봐라'는 자신감으로 주자가 나가도 견제보다는 타자와의 승부에 더 집중, 후딱후딱 경기를 해치우기 때문이다.

이런 까닭에 선 감독의 선발 경기는 거의 2시간 30~40분대에 마무리돼 기자들로서는 빨리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 즐거움이 있었다.

시속 150㎞중반의 강속구와 140㎞대의 슬라이더로 무장했던 전성기 시절, 프로야구 최고의 타자 장효조(현 삼성 라이온즈 스카우트)와 장거리 타자 유승안(전 한화 이글스 감독)이 선 감독과의 승부에서 남긴 뒷이야기가 있다.

10년 통산 타율 3할3푼1리로 국내 최고 기록을 갖고 있는 장효조는 유독 선 감독이 마운드에 설 때면 타석 뒤쪽으로 물러나 엉덩이를 뒤로 빼는 소극적인 자세를 보였다.

언젠가 그 이유를 물었더니 "선수생활 하루 이틀 할 것도 아닌데 타석에 바짝 붙었다가 동열이 공 맞으면 선수생활 접어야 해요"라고 말했다.

선 감독에게 첫 만루홈런을 빼앗았던 유승안은 홈런 공 구질을 묻는 질문에 "공 볼 사이가 어딨어요. 그냥 눈 감고 휘둘렀더니 넘어가대요"하며 웃었다는 후문이다.

그렇게 위력적이었던 선 감독이지만 일본에서의 적응은 만만치가 않았다.

그래서 올 시즌 부진했던 이승엽을 생각하면 더욱 자신의 경우가 생각난다고. 아직 만날 기회가 없었지만 이승엽을 만나면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단다.

'나고야의 태양'이라 불리며 일본 프로야구를 호령했던 시절의 뒷이야기다.

다소 늦은 33세라는 나이였지만 구원전문이었고, 국보급 투수라는 호칭까지 받았던 터여서 그는 자신만만했다.

그러나 주니치 드래곤즈의 유니폼을 입은 첫 해였던 1996년, 나름대로 열심히 했지만 5승1패3세이브 방어율 5.50이라는 초라한 성적을 남겼다.

선 감독의 회고담이다.

"이게 한국과 일본 프로야구의 차이인가 싶었죠. 국내 팬들에게 부끄럽기도 하고…. 그때 호시노 감독의 충고가 잊히지 않습니다.

그의 처방은 '당신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태극기를 지워라'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그랬습니다.

한국을 대표하는 투수인 만큼 정말 잘해야 한다는 생각이 늘 머리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

그는 시즌이 끝난 뒤 단 1주일 한국에 머무르는 동안 제주도에서 철저하게 반성을 했다.

부모가 계신 광주에는 귀국 때와 출국 때 인사에 그쳤다.

그리고 그 해 25일 간의 스프링캠프에서 3천 개의 실전투구를 하는 등 국내에서는 체험하지 못한 강훈련을 소화했다.

외국인 용병이 아니라 마치 신인 선수처럼. 그리고 그 다음해인 1997년에는 1승1패38세이브, 방어율 1.28, 63.1이닝 무홈런으로 '나고야의 태양'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다시 선 감독의 이야기. "하면 된다는 신념과 최선을 다하면 성적이 안 나와도 최소한 스스로 후회는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첫 입단한 신인처럼 열심히 했습니다.

승엽이에게 이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어깨 위의 태극기를 내려놓고 한국의 최고가 아닌 일본의 신인 자세로 다시 시작해라. 무엇보다 팬들에 대한 부끄러움보다는 스스로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라."

선 감독의 이 이야기는 두 가지를 시사한다.

한국을 대표하는 타자인 이승엽이 그 명성에 걸맞게 일본에서도 잘 해주기를 바라는 충고이기도 하지만 신인 감독인 스스로가 대구팬들에게 '후회 없도록 열심히 하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한국의 최고가 아닌 일본의 신인으로서 이미 무거운 태극기를 등에서 내려놓았던 '국보급 투수 선동열'이 그랬던 것처럼 '1년차 선동열 감독'도 스타라는 등짐을 내려놓고 신인의 자세로 열심히 할 것임을 대구팬들과 함께 기대한다.스포츠생활부 정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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