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金正日의 '트로이 목마'

트로이 전쟁은 기원전 13세기 미케네 시대 말기 그리스의 영웅들이 소아시아(지금의 터키 서부 지방)의 '트로야' 왕국을 무너뜨린 전설적인 전쟁이다.

무려 10년에 걸친 포위 공격에도 난공불락 이었던 트로야성이 맥없이 무너진 것은 군사력이나 경제력의 힘이 아닌 나무로 깎아 만든 '트로이의 목마(木馬)' 한마리 때문이었다.

3천여년 전의 목마설(說)은 전설일 뿐이라는 반론도 있지만 1870년 일곱층으로 나눠진 퇴적층 도시 유적이 발굴되면서 트로이 전쟁 이야기는 정설로 인정되고 있다.

목마로 위장한 거대한 조형물 속에 병사들을 몰래 숨겨 트로야 성 안으로 들어가 승전에 취해 경계가 풀린 트로야 왕국을 기습, 하룻밤새 멸망시킨 트로이 목마의 뼈아픈 3천년전의 교훈이 최근 바로 우리들 코앞에도 섬뜩한 현실로 다가서 있는 느낌이다.

북한의 탈북자 중 밀입북, 간첩교육을 받고 재입국한 밀정들이 상당수 공개되면서 트로야 시민들의 환영을 받으며 성문으로 유유히 들어온 목마속의 숨겨진 그리스 병사들이 떠올라서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탈북자들 속에 공작원을 침투시키고 조직적으로 파고 들어 적(남한)들이 심리전을 하려고 할때 우리(북한)는 그 잠(사회 문화적으로 아직 각성되지 못하고 있는 상태)을 뚫고 들어가 보다 효과적으로 반공격을 가해야 한다"고 지령했다는 탈북자 동지회의 발표를 들으면 의구심은 더해진다.

목마를 승전 기념물로 오판한 채 환영하며 성문안으로 끌어 들였듯 탈북자들을 인도주의적 평화공존의 정신에서 끌어 안으려한 친북 노선을 악용, 목마 속의 병사처럼 탈북자 행렬속에 간첩을 숨겨보낸 트로이 목마식 대남 전략을 경계해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당시 트로야가 지중해의 중심적 교역국으로서 월등한 경제력을 갖추고 10년의 포위 공격에도 끄떡없는 정치'군사력을 지녔던 것이나, 오늘의 남한이 경제력과 핵을 제외한 현대적 군사력에서 절대 우위에 있는 조건은 서로 닮아 있다.

어느 누구도 당시 경제'군사적으로 막강하고 우월했던 트로야가 그리스 원정군에게 패하리라는 생각은 할 수 없었다. 지금의 우리도 잘사는 남한이 설마…라고 믿고 있다. 그러나 한줌도 안되는 목마속의 병사들이 성문을 안에서 열고 기습하는 내부의 봉기와 게릴라전 앞에서는 지중해의 강국도 맥없이 무너졌다.

김정일 위원장의 아버지 김일성도 살아 생전 장담했던 말중에 "남한을 굳이 군사력으로나 경제력으로 이기려 할것 없다. 내부에서 자생적으로 민중이 일어나줄 날이 올 것이며 그때가 바로 통일의 날이 된다"는 신념을 폈었다고 했다.

그로서는 남한에서 목마속 병사와 같은 내부의 공산좌익 봉기세력이 생성되리라는 기대를 가졌고 6'25 전쟁을 일으켰을때도 남로당 등 지하 공산세력의 동참 동시 봉기가 일어날 것이란 자신감에서 남침결정을 했지만 남한 우익정권의 사전소탕에 의해 오판으로 끝났다고 분석하는 역사학자도 있다.

따라서 탈북자 동지회가 밝힌 김정일 위원장의 탈북자 간첩침투 지시와 "남한 청년학생 조직을 통한 공작사업에 힘을 넣도록 빈틈 없는 대책을 세우라"고 한 지령이 사실이라면 아직도 김일성 전 주석의 트로이 목마 전략에 의한 대남전략은 아들대에 내려와서도 조금도 변한 것이 없다는 말이 된다.

그럼에도 국군 수뇌부는 주적 개념을 느슨히 풀어버리고 국보법 폐지론자의 움직임은 멈춰지지 않고 있다.

마치 그리스군이 남겨둔 위장된 트로이 목마를 성안으로 끌어올 것인가 말것인가를 놓고 '위험한 함정'이라는 주장과 '승전의 전리품'이라는 주장이 맞섰을때 처럼 지금의 우리도 대북노선을 두고 국론이 골깊게 갈라져 있는 것이다.

탈북자 행렬속에 간첩을 숨겨 보내는 전술이 드러난 이상 그 목마는 위장된 함정의 조형물이라 믿는 쪽과 끝끝내 승전의 상서로운 전리품이라 우기는 쪽의 갈등이 그칠줄 모르고 있다. 물론 세계가 돌아가는 변화를 보면 우리는 도무지 변할 줄 모르는 그러한 북한을 고립된 광야의 늑대처럼 내버려 둔채 내 울타리 쌓는데만 급급 할 수도 없다.

밉든 곱든 동족으로서 또한 2천500만의 인구를 가진 국가 구성체로서의 실체를 우호적으로 인정 하는 가운데 평화와 공존의 길을 모색해 나가야만 한민족 전체가 살아남을 수 있음도 받아들여야 한다.

그들의 가난을 하루라도 빨리 덜어 줌으로써 함께 살 수 있는 공존의 터를 넓히는 경제정책도 나와야 하고 그들의 전투적 통일관을 바꾸기 위한 설득과 인내도 지녀야 한다.

한마디로 우리는 그들을 용서한다거나 꾸짖고 가르치는 식으로 변화시키기보다 사랑함으로써 변화시키는 식으로 다룰 수밖에 없다.

목마로 속여도 서운하지않고 쌀을 퍼줘도 아깝지 않으려면 인내로 '사랑' 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다만 그 사랑의 인내 가운데서도 반드시 경계하고 잊지 말아야 할것은 트로이 목마의 교훈이다. 그 교훈을 코웃음치고 경계하자는 쪽을 반통일 세력으로 공격하며 낭만적 통일론에 젖어 한쪽으로만 기울어 지자고 우기는 자들이 있다면 그들은 안방에 들어앉아 있는 목마속의 병사와 무엇이 다를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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