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구미공단 '영어와의 전쟁' 한창

"이젠 영어 못하면 일 못하는 직원으로 찍히기 십상입니다.

"

구미공단 내 대기업 직원들 사이에 '영어와의 전쟁'이 한창이다.

LG 등 대기업들이 사내 영어 공용화방침을 잇따라 밝힌데다 영어성적을 인사에 반영하는 기업들도 늘고 있기 때문이다.

구미공단의 한 대기업 총무팀 과장으로 근무하는 유성수(40·가명)씨는 매일 오전 7시30분쯤 출근길에 나서면서 제일 먼저 워크맨부터 챙긴다.

집에서 회사까지는 승용차로 30분 거리. 차에 올라탄 후 시동과 함께 영어회화 테이프를 듣는게 일상화됐다.

유씨가 근무하는 회사에선 직원들이 귀에 이어폰을 꽂고 다니는 모습이 흔한 풍경이다.

과장, 차장을 비롯해 심지어 부장 이상의 중견간부들도 예외가 아니다.

인터넷에서 다운로드받은 영어강좌나 회화를 MP3나 워크맨으로 듣고 있는 중이다.

LG전자는 지난 10월 글로벌 경영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내년부터 부분적인 영어공용화를 실시한 뒤 2008년을 영어 공용화 원년으로 삼겠다고 밝혔다.

LG전자는 이와 관련, 내년부터 보고서 및 제품설명서, 공문, 사내 인트라넷 환경 등을 차츰 영문화하는 것은 물론 e메일, 회의발표 등을 영어로 할 방침이다.

또 해외법인 임직원 채용때도 영어 구사자를 우선적으로 채용하는 한편 사내 MBA(경영학 석사)과정의 50% 이상을 영어로 강의할 예정이다.

회사측이 이처럼 적극적으로 나서자 직원들은 걱정이 태산이다.

지금의 짧은 영어실력으로 영어로 문서를 작성하고 상급자에게 보고해야한다는 사실이 생각만해도 아찔하다는 것.

LG전자 박성규(38·가명)씨는 "잠잘 때말고는 하루 종일 영어 고민에 휩싸여 있다"면서 "학원 새벽반 회화강좌에 저녁반 토익강좌까지 노력은 하는데 도무지 점수가 오르지 않아 걱정"이라며 고개를 내저었다

일부 외국계 합작사들은 이미 문서 작성은 물론 사내 회의도 영어로 진행하고 있다.

구미공단의 삼성코닝정밀유리는 천안사업장에서 합작사인 미국 코닝사와의 화상회의를 영어로 진행하고 있는데 영어실력이 부족한 직원은 회의에 참석조차 할 수 없다.

이때문에 이 회사는 구미와 천안사업장에 영어연수를 위한 '외국어생활관'을 만들어 교육기회를 제공하는 한편 연간 4차례 원어민 강사가 참여하는 '10주 집중교육 프로그램'도 마련하는 등 지원을 아끼지않고 있다.

이밖에 구미공단 대기업체 상당수는 토익점수를 급수로 환산해 인사에 반영하고 있으며 승진에서 인센티브를 받으려면 최소한 800점은 넘어야 하고 500점 이하면 아예 심사대상에서 탈락시키는 것으로 알려졌다.

"월 50만원씩 주고 미국인에게 5개월 동안 개인교습도 받았으나 별 효과가 없어 최근에 그만뒀습니다.

이러다 영어실력 부족때문에 직장을 그만둬야 하지나않을지 두렵기만 합니다.

" 어느 직장인의 넋두리는 달라진 샐러리맨들의 처지를 그대로 반영하는 듯했다.

구미·김성우기자 swkim@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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