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깨끗하다. 사람도 거리도 깔끔하다. 일본 사람 대다수는 매일 샤워하는 습관이 있다. 도심이나 농촌이나, 건물 안이나 밖이나 담배꽁초 하나 보기 힘들다. 혹 길거리에 휴지가 보인다면 '외국인이 버렸을 것'으로 추정하면 대략 맞다. 도심에선 개와 산책하며 자그마한 삽과 달구지를 함께 끌고 다니는 사람을 흔히 볼 수 있다. 개가 '볼일'을 보면 뒤처리를 하기 위해서다. 도심 곳곳에 자전거 보관대가 있지만 자물쇠를 채우지 않더라도 자전거를 훔쳐가거나 타이어를 빼내 가는 일은 거의 없다.
일본인은 대체로 친절하다. 특히 손님에 대한 배려는 각별하다. 호텔 입구 회전문 앞에 서면 항상 다른 사람이 먼저 나가거나 들어올 수 있도록 비켜서곤 한다. 일본에는 '손님은 맞이할 때 30%, 보낼 때 70%'란 말이 있다. 맞이할 때보다 떠나보낼 때 더 신경을 쓰라는 뜻이다. 손님이 차를 타고 자신의 집이나 호텔을 나서면, 시야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연방 절을 하거나 손을 흔든다. 여기에 익숙지 않은 외국인은 다소 불편하기도 하다.
일본인의 깨끗함과 친절함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겠다'는 의식에서 비롯됐다. 내 몸의 냄새가 다른 사람에게 풍겨서도, 내 집이나 건물 주변의 쓰레기가 다른 사람의 인상을 찡그리게 해서도 안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건물에 출입하거나 전차나 버스, 에스컬레이터를 타더라도 철저하게 '차례'를 지키는 풍경을 종종 볼 수 있다.
일본인의 깨끗함과 친절함은 '체화(體化)된 습성'이기 때문에 정나미는 별로 없다. 그 친절함과 깨끗함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학습된 규율이다. 심하게 표현하면 '마음 속에서 우러난 행동이라기보다는 반복학습에 따른 무조건적 반사'인 셈이다. 학습된 규율을 그대로 따라하다 보니, 더 이상의 적극성이나 정(情)은 상대적으로 약하다. '피해를 주지 않는'데서 나아가 애틋한 정을 베풀거나 자신을 희생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일본인들이 한국적 정서와 애틋한 사랑이 밴 '겨울연가'에 그만큼 몰입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지 않을까. 지난 2001년 지하철 선로에 몸을 던져 일본인 취객을 구하고 숨진 고(故) 이수현에 대해 일본인들은 아직도 감동과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 희생정신은 단순히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소극적 의식과 감히 비할 수 없는 '어떤 것'이기 때문이다.
일본인의 서비스 정신은 투철하다. 김태성(47'서울)씨는 지난해 일본에서 전자제품을 구입해 사용하다 6개월 만에 사소한 고장이 나 이를 일본 업체에 통보했다. 김씨는 보름 뒤 고친 제품이 아니라 새 제품과 함께 고장원인이 상세하게 적힌 서류와 사과문을 받았다. 이 같은 일본인들의 서비스 정신은 고도의 상술이다. 눈앞의 이익에만 몰두하는 국내 일부 기업인들이 생각해 볼 대목이다.
일본은 메이지유신(明治維新;1868년) 이후 서구화의 길로 접어들었다. 약 140년이 지난 지금, 일본은 지극히 자본주의화됐다. 미국을 비롯한 외래자본이 일본기업을 크게 잠식했고, 젊은층 상당수는 서구 문물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이고 젖어 있다. 도쿄나 교토, 오사카 등 대도시에는 젊은 히피족들이 넘쳐나고, 성(性)매매 업소와 동성애자를 위한 카페는 성업을 이룬다. 비뚤어진 자본주의 문화가 낳은 병폐도 만만찮다. 현재 일본에는 초'중'고생을 비롯한 청소년들의 강력사건이 사회문제화될 정도다.
사다야마 유지(40'돗도리현 요나고시)씨는 "도심에서 싸움이 벌어지거나 날치기 사건이 발생해도 말리거나 개입하는 사람이 드물고, 경찰에 신고하기조차 꺼린다"고 말했다. 형제애, 우정, 이웃사랑 등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과 정이 갈수록 희미해져가는 세태를 반영하고 있다.
일본 기성세대 상당수는 지금 진정한 '사무라이 정신'을 그리워하고, 한국의 유교문화를 부러워하고 있다. 미국 배우 톰 크루즈 주연의 '라스트 사무라이'는 일본 고유의 전통과 칼로 무장한 사무라이가 서구 문명을 받아들인 지배층의 총과 대포에 저항하다 최후를 맞는다는 줄거리다.
현재 일본에는 '사무라이 정신'을 갖고, 올바른 전통과 가문을 바로세우기 위해 활동하는 사람들은 드물다. 대신 '야스쿠니(靖國) 신사'와 '자위대'를 첨병으로, 군국주의로 치닫는 일부 극우세력이 왜곡된 사무라이 정신을 다시 외치고 있을 뿐이다.
많은 일본 젊은이들은 '개인주의'에 몰입돼 있다. 남한테 피해를 주지 않는 대신 남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공동체 의식'은 찾아보기 힘들다. 이 때문에 서구 자본주의 사회에서 보이는 것 이상으로 세대갈등이 심각하다. 부모-자식간의 정이나 형제자매 간의 우애도 크게 엷어졌다.
쿠니히로 히데시(45'오카야마현 오카야마시)씨는 "일본에서 결혼하는 젊은이 100명 중 5, 6명은 부모 없이 단둘이 예식을 갖는다"고 말했다. '부모는 부모이고, 나는 나'인 셈이다. 쿠니히로씨는 "나이 든 사람을 공경하고, 가족 간에 정을 나누는 한국인들의 유교문화는 일본에서 이미 사라졌다"고 한탄했다.
일본인의 깨끗함과 친절함 뒤에는 개인주의와 무관심이 짙게 깔려 있다. 서구 자본주의의 왜곡된 문화까지 넓게 퍼진 일본이 메이지유신 이후 쌓여온 세대갈등과 개인주의 의식을 어떻게 승화시켜 나갈지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삼을 일이다.
김병구기자 kbg@im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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