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이곳을 아시나요-칠성동 칠성바위

북구 칠성(七星)동. 동명(洞名)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 유래가 7개의 바위에서 시작됐다는 흥미로운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조선 정조 19년(1795년), 경상 감사 이태영에게는 슬하에 7형제가 있었다.

어느날 이 감사가 꿈을 꾸었는데 하늘에서 북두칠성이 광채를 내면서 땅으로 떨어졌다.

꿈이지만 기억이 너무 생생해 별이 떨어진 북문 밖으로 나가보니 전날까지 없었던 7개의 큰 바위가 북두칠성 모양으로 놓여 있었다.

감사는 좋은 징조라 여겨, 7개 바위에다 일곱 아들의 이름인 희갑, 희두, 희평, 희승, 희준, 희장, 희조를 하나씩 새겼다.

이후 이 바위들은 '칠성바위'라는 이름을 얻게 됐고, 이런 유래가 전해지자 아들이 없는 부녀자들이 득남을 빌기 위해 바위를 즐겨 찾았다고 한다.

'칠성동'의 지명도 여기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칠성바위는 현재 지하철 대구역사 3번 출입구 옆인 북구 칠성2가 대구역사 동남쪽 공원에 보존돼 있다.

그러나 칠성바위가 세상에 알려지게 된 것은 지난 73년 시민회관을 신축하는 과정에서였다.

옛 공회당 서남쪽 소나무 숲 사이에 있던 것이 현재의 시민회관 남쪽에 옮겨졌고, 98년 고증을 거쳐 지금의 자리에 터를 잡게 됐다.

기록에 의하면 1930년대에 조사가 이뤄졌는데 상석 아래 냇돌들이 깔려 있었다는 것. 하지만 73년 발굴 당시에는 별다른 유구나 유물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요즘 칠성바위는 공원 한쪽, 무릎 정도 높이의 철책 보호를 받으며 타원형 방향으로 바위들이 늘어서 있었다.

북두칠성 모양은 아닌 듯 보였다.

7개의 바위는 1개만 평평한 돌이고 나머지는 모두 입체석. 하지만 그 크기가 1.1~2m, 폭은 0.8~1.8m, 높이는 0.7~1.8m로 모양이나 크기가 어느 하나 같은 것이 없다.

전해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바위에 새겨 넣은 7형제의 운명은 바위의 생김새 대로 결정됐다는 것. 이중 새겨진 이름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은 5개다.

'이희두'라고 새겨진 바위는 그 크기가 다른 바위에 비해 크지는 않았지만. 나지막하면서도 바위를 가로지르는 결이 뚜렷한 것을 보니 성격이 곧고 강직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부친에 이어 경상감사가 됐다고 한다.

환경미화원 이상태(54)씨는 "바위에 얽힌 전설을 잘 알지 못해 바위 앞에서 기도를 올리는 사람들의 모습도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요즘도 칠성시장 축제가 열릴 때면 이 감사의 후손과 시장 상인들이 모여 축제 시작 전에 예를 올린다.

장경훈 대구시의원은 "칠성동의 뿌리를 찾고, 잊혀가는 칠성바위를 보다 많은 시민들이 찾아 보면서 지역 문화에 대한 관심을 높일 때"라고 말했다.

최두성기자 dschoi@imaeil.com사진: 7형제의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칠성바위는 지하철 대구역사 3번 출입구 옆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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