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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일터 앞에는 유난히 넓고 한적한 호수가 있다.

사계절 변화는 호수의 빛깔은 작은 마을을 꿈 같이 물들인다.

봄은 복숭아꽃 분홍빛이다.

여름은 영락없이 잘 익어 터진 수박 속이다.

가을은 귀뚜라미 울음소리보다 더 맑은 달빛이 넘쳐난다.

겨울은, 눈 내리는 밤에 더 푸른 대숲 같이 청청하다.

이 한적한 호수에 올해도 어김없이 기러기들이 날아들었다.

기러기들이 호수에 자리 잡는 위치에 따라 겨울은 점점 깊어 간다.

처음 호수 가장자리에 여기저기 자리하던 기러기들은 겨울이 깊어 가면서 호수 한가운데로 모여든다.

그때 기러기들은 결빙음 같은 아주 청명한 소리를 낸다.

마을 사람들은 그 소리에 봄이 멀지 않았다는 것을 느낀다.

나에게는 기러기에 대한 어린 날의 유별난 기억이 있다.

막내 고모 결혼식 날이었다.

고모부가 목기러기를 가지고 와서 절하는 전안(奠雁) 의식을 올릴 때, 초례상 위의 기러기가 살아서 고모 품속으로 날아드는 것만 같았다.

그 순간, 고모는 속눈썹까지 바르르 떨리도록 전율하는 듯했다.

저 낯선 사람이 고모를 채어가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자 내 주머니 유리구슬을 누가 모두 꺼내어 가는 듯했다.

그런데, 기러기는 내 개인적 이러한 상실의 이미지와 다르게 우리 조상들은 신의와 지조의 새로 알고 있다.

기러기는 봄과 여름은 북쪽에서 가을과 겨울이면 남쪽에서 살아가는, 그것으로 보아 자신이 살아가는 때와 장소를 스스로 아는 절도가 있는 새다.

그들이 하늘을 날아가는데도 차례가 있어 앞에서 울면 뒤에서 화답하는 예절이 있다.

어디 그뿐이랴, 짝을 잃으면 다시 짝을 얻지 않으니 절개가 있다.

밤이면 무리지어 잠을 자되 하나가 주위를 살피는 지혜가 있다.

우리 조상의 기러기에 대한, 더 넓혀 자연에 대한 이러한 상징적 이미지는 자신을 바로잡는 균형 감각이었고 자신을 내려치는 채찍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인간의 순수와 이상의 가치가 붕괴하면서 자연이 주던 아름다운 상징적 이미지마저 사라져버렸다.

이러한 농경시대의 유가적 덕목을 추억하며 그리워하는 나는, 다른 한편으로 디지털시대 가상공간 속으로 질주하고 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에 감동하고 전율하는가, 나에게 묻고 싶다.

조두섭 시인·대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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