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신문

세풍-'투전판 자본주의'의 그늘

헤르메스(Hermes).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올림포스 12신 중 '전령(傳令)의 신'이자, '상업과 도둑의 수호신'이다. 주신(主神) 제우스와 거인 아틀라스의 딸 마이아 사이에 태어나자마자, 요람에서 빠져나와 아폴론 신의 소를 훔쳤다. 그러고도 시치미를 뗀 '영특한' 사기꾼이기도 하다. 이 헤르메스가 한국에서도 '사고'를 쳤다. 영국계 헤르메스 자산운용이 삼성물산에 대한 인수'합병(M&A) 가능성을 흘려 주가를 올린 뒤 보유 주식을 모두 처분, 막대한 차익을 올렸다는 것이다. 요즘 외국계 자본들은 이처럼 한국 자산시장에서 온갖 탈'편법을 일삼으며 국부를 빼가고 있다. 수출 둔화에다 극심한 소비 침체로 불황을 겪고있는 한국경제의 위기가 이들 외국계 자본 때문에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투기자본 '안 마당' 된 한국 금융시장

전문가들은 한국경제 위기의 근본 원인을 성장잠재력 저하에서 찾는다. 성장률 저하→고용 감소→소득'소비 감소→투자 위축→고용 감소라는 악순환에 빠졌다는 것이다. 여기에 자본시장 자유화에 따라 한국에 들어온 외국 투기자본의 득세도 위기를 심화시키고 있다. 외환위기 이후 미국식 신자유주의 경제를 도입하면서 한국은 금융시장을 개방했다. 외국 자본의 한국 주식시장 점유율이 43%에 이르고, 주요 대기업과 금융기관의 외국인 주식 보유비율은 60%를 상회한다. 우리 금융시장이 외국 투기자본의 '안 마당'이 된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외국 자본은 M&A 시도를 통한 경영권 위협, 상식을 벗어난 고배당 요구, 유상감자 같은 변칙적인 자본 회수 등으로 기업 이윤을 갈취하고 있다. 이에 위축된 우리 기업들은 외국 자본의 눈치 보기에 급급하다. 중장기 투자 계획은 엄두도 못 낸다. 돈을 쌓아 놓았지만 투자를 못한다. 이러니 고용창출도 부진할 수밖에 없고 소비와 투자가 살아날 리 만무하다. 외국계 자본이 지배하는 은행들 역시 대출금 회수 위험이 높은 중소기업 대출을 줄이고 있다.

자신감 잃은 정부와 기업, 그리고 국민들

보다 못한 정부가 국민의 쌈짓돈인 연기금을 증시에 투입하겠다고 나선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는 국민연금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져 국민들이 소비를 줄이는 대신 저축을 늘리는 요인이 됐다. 연기금 투입이 오히려 소비진작의 걸림돌이 된 것이다.

외국 자본의 등쌀에 치인 국내 기업을 비롯한 '새끼' 투기 자본은 부동산으로 눈을 돌렸다. 세계시장에서 경쟁에 밀려 초과 이윤을 얻지 못하자, '기업 도시'를 비롯한 부동산 투기정책을 내놓고 경기부양에 발목잡힌 정부를 상대로 흥정을 벌이고 있다. 부동산 보유세와 양도세 중과 등 부동산 투기 규제정책에 '어깃장'을 놓는 세력은 모두 이들이다. 중산층도 부동산 투기 바람에 가담했으나 오른 것은 집 값이고 남은 것은 은행 빚뿐이었다. 이로 인해 중산층마저 소비여력이 없어 소비 침체의 주원인이 되고 있다.

이 판에도 저 판에도 끼지 못한 저소득층은 어디로 갔을까. '로또'다. 복권만이 '인생 역전'의 희망이 된 것이다. 알다시피 '복권은 가난한 자들이 자발적으로 내는 세금'이다. 814만 분의 1 확률에 목숨을 건 저소득층의 피땀 섞인 돈은 누가 가져갔을까. 정부는 로또 이익금의 사용처를 명확히 밝히지 않고 있다.

경기 양극화와 빈부격차 확대

돈 놓고 돈 먹기인 '투전판 경제'는 경기 양극화와 빈부격차를 확대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들이 단결할 리 만무하다. 분열과 파괴, 저주, 증오의 종소리만 요란하다. 화합과 창조, 사랑은 박물관에서나 찾아야 하게 됐다. 이젠 다시 환란이 닥쳐도 자발적으로 금을 모으겠다고 나설 국민도 없다. 금을 모았으나 배부른 자들의 배만 더 불리고 일반 국민들의 배는 더 고팠기 때문이다. 더욱이 우리 국민들은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지 않는가.

그런데도 정치권은 분배냐, 성장이냐는 논란에서부터 유행이 지나도 한참 지난 색깔 논쟁만 벌이고 있다. 국민만 잘 살면 되지, 좌파면 어떻고 우파면 어떠냐. 색깔론을 '정치 밑천'으로 하는 자들을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黑猫白猫論)'고 주장한 저승의 덩샤오핑(鄧小平)에게 보내 특별과외를 시키고 싶은 심정이다.

지금처럼 빈부격차가 심화되고 민심이 갈가리 찢긴 상태에서 잠재성장률을 초과해 매년 5%이상씩 성장할 수 있을까.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선다고 국민들이 2배로 행복해할까. 아닐 것이다. 새해에는 불신과 절망 대신 믿음과 희망과 악수하고 싶다.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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