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가 버드나무 그늘에 배를 묶어 놓고 사람들이 둘러앉았다. 자리 한복판에는 접시가 놓여 있고 방금 낚아 올렸을 법한 생선 한 마리가 통째로 드러누워 있다. 생선을 두고 한 사람은 젓가락질을 하려고 나선다. 사기로 만든 밥그릇으로 손을 가져간다. 배쪽에 앉은 사람은 왼손으로 술병을 쥔 채 오른손으로 술 한잔의 감미로운 맛을 들이켜고 있다…."
조선 3대 풍속화가 김득신(1754~1822)의 그림 속 풍경이다. 이들이 먹던 생선은 무엇일까? 저자는 이 생선을 숭어로 해석하고 있다. 당시에는 굽기보다 찌기가 더욱 일반적이어서, 제사에 올리는 생선도 찌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집에서 마련해온 숭어찜을 밥반찬으로, 막걸리 한 잔을 반주로 한 강가의 식사는 달랑 젓가락만 들고 하는 식사지만 여유롭게 보인다.
◇ 궁중 조리사는 모두 남자
이 책은 이렇게 조선시대 풍속화 속에 나타난 음식문화를 추적하고 있다. 여기에 각종 문헌 자료와 저자의 상상력이 보태져 뼈와 살이 있는 육화된 음식문화사로 이야기를 구성해내고 있다. 특히 눈 앞에 펼쳐지듯 생동감 있는 설명이 돋보인다. 4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서민, 궁중, 관리의 음식 풍속 및 근대적 시선으로 그린 그림 속의 '조선 음식'을 다루고 있다. 이 그림들을 찬찬히 살피다 보면 불과 200~300년 전과 현재의 음식문화가 판이하게 달라졌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궁중의 풍경을 묘사한 것 중 흥미로운 그림이 있다. 도포를 걸치고 넓은 갓을 쓴 내의원들이 생우유를 마련하기 위해 암소의 젖을 짜는 그림이다. 당시 우유는 일반화된 음식이 아니었던 만큼 저자는 이 우유는 영조가 먹는 타락죽에 원료로 이용하기 위해서였을 거라 추측하고 있다.
1605년 열린 '선묘조제재경수연도' 전도에는 이례적으로 음식을 장만하는 조찬소 장면이 상세하게 등장한다. 자세히 보면 드라마 '대장금'에서와 달리 궁중 행사에서 음식을 조리하는 사람들은 모두 남자들이다. 왜 그럴까.
이는 전근대 사람들은 남자는 공식적인 일을, 여자는 비공식적인 일을 맡아야 한다는 믿음 때문에 궁중의 공식적인 직책은 대부분 남자들 차지였다. 이 때문에 부엌일의 대부분을 담당해야 했던 여성들은 궁중의 부엌일에서는 제외된 것이다. 또 지금과 다른 풍속들을 발견하는 것도 이 책이 주는 즐거움 중의 하나다.
◇ '전통'에 대해 오해하는 부분 많아
1602년엔 100세 노모를 기쁘게 하기 위해 선조는 그의 아들을 형조참판에 임명하고 생신날에 관리 수십명을 초청해 큰 잔치를 열었다. 또 혼인 60주년을 기념해 회혼연을 여는 풍속 등은 단명이 오히려 흔하던 시절, 장수하는 노인에 대한 경외감을 짐작게 한다.
해학적인 그림들도 등장한다. 금주령이 내려진 가운데 여염집에 차린 술집에 들러 몰래 술마시는 형조 관원들의 모습, 음력 10월 남산 소나무 밑에서 화문석을 펴 놓고 기생들과 어울려 숯불 불고기를 구워먹던 양반들의 모습은 풍속화가의 비판적인 시선이 녹아 있다.
저자는 우리가 '전통'이라고 오해하는 부분들도 날카롭게 지적하고 있다. 현재 일반화된 음식인 '생선회'는 실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사시미'가 전해진 것이며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육회 외에 생선은 날것으로 먹는 일이 드물었다. 일본에서 불고기와 비빔밥이 유행한다는 사실에 뿌듯해하면서 정작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우리 입맛 자체가 일본화된 것에 대해선 전혀 문제 제기하지 못하는 동시대인들에 대해 서슴없이 질타한다.
저자는 책 말미에 '조선적인 것'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조선의 표상과 실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다'는 부제처럼, 조선후기를 조선적 전통의 원류로 이해했던 종래의 경향에 대해 비판하고 조선후기의 모습을 조선 전체의 모습처럼 치부하는 것을 경계하고 있다.
최세정기자 beacon@imaeil.com
사진: '신부연석(新婦宴席)' 김준근 19세기말·개인소장(사진 위) · '주사거배(酒肆擧盃)' 신윤복(1758~?)·간송미술관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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