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은 긴밀하다. 새로운 미디어가 나오면 곧잘 섹스로 포장돼 보급되곤 했다. 기름을 끼얹고 불을 지르는 것이 '섹스'였다.
초기 VCR이 그랬다. 정품 비디오테이프가 별로 없음에도 그렇게 많이 보급된 것이 바로 섹스 코드 때문이었다. 불법비디오, 바로 포르노테이프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 당시 VCR이 있는 집이라면, 안방 근처를 뒤지면 틀림없이 야한 비디오가 '출토'되곤 했다. 까까머리 애들이 부모 없는 방에 옹기종기 모여 일본 또는 미국에서 흘러들어온 포르노를 감상하면서 뉴 테크놀로지에 감사하며 또한 감탄했던 시절이었다.
인터넷도 마찬가지다. 이 매체가 발을 뻗게 된 데는 섹스가 큰 공헌을 했다. 아마추어 뿐 아니라 일반인까지도 자기 방에 웹캠(인터넷용 카메라)을 설치해 놓고, 은밀한 사생활을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중계하는 세상이 됐다. 초고속 인터넷의 필요성도 결국 야한 동영상의 원활한 다운로드화에서 출발한 것이 아닌가.
얼마 전 노숙자가 된 '포르노 킹'에 대한 이야기가 보도됐다. 매주 14만권 이상 팔리던 포르노 잡지와 X 등급의 나이트쇼를 제작하던 프로덕션의 소유자(69세)가 깡통을 차고 빈털터리가 된 것이다. 그는 1년 전만 하더라도 1천100만 달러(한화 약 121억)의 재산가였다. 물론 복잡한 사생활에 낭비벽도 심했겠지만, 결정적으로 그를 망친 것은 인터넷이었다. 인터넷의 공짜 포르노 공세는 그의 전통적인 방식의 사업에는 치명적이었다. 그의 잡지도 인터넷에 철철 넘쳐 나는 동영상과 야한 사진들로 인해 문을 닫아야만 했다.
섹스와 뉴 미디어가 같이 블루스를 추고 있는 동안, 죽어 나간 것이 전통적인 방식의 포르노였다. 잡지며 포르노업체가 줄줄이 문을 닫아야만 했다. 그 가운데 '포르노 킹'도 있었던 것이다.
최근 들어 포르노가 반격을 가하고 있다. 뉴 미디어로 새로운 활로를 찾고 있는 것이다. '멀티 앵글'이란 기능을 알고 있는가? DVD 플레이어에 기본적으로 탑재된 기능이다. 다양한 방향에서 피사체를 볼 수 있게 한 것이다. 100m 달리기 주자를 예로 들자. 여러 대의 카메라로 다양한 방향에서 주자를 찍어 원하는 각도에서 주자를 볼 수 있도록 한 것이 '멀티 앵글'이다.
이 '멀티 앵글'이 포르노 DVD에서 '화려한'(?) 제 기능을 발휘한다. 다양한 각도로 작품의 구석구석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카메라를 든 남자와 여자, 또 그 둘을 찍는 카메라 등 여러 카메라를 동원해 입맛대로 앵글을 고르도록 했다. 섹스는 '훔쳐보기'가 가장 큰 자극. '멀티 앵글'은 멀티 '훔쳐보기' 기능인 셈이다.
여기에 5.1채널 사운드까지 입혔다. 5.1채널은 총 6개의 스피커에서 서로 다른 소리가 나도록 하는 사운드 시스템이다. 마치 침대 한 가운데 있는 듯한 착각을 들게 한다. 말 그대로 '생 비디오'의 라이브 현장감이다.
최근 포르노는 옛 비디오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화질을 자랑한다. 땀구멍, 귀 밑털, 허벅지의 작은 점까지 또렷하게 볼 수 있게 됐다. 더 나아가 DVD보다 훨씬 화질이 좋은 HD로 제작된 것도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포르노 배우와 이야기 하듯, 원하는 대로 줄거리를 따라가는 '쌍방향'(인터랙티브) 기능까지 넣었으며, 언제든 포르노 배우와 접속할 수 있는 팬 게시판(BBS) 접속 기능까지 갖추었다.
화질과 음질이 좋으면 더 에로틱한 것일까? 다 그런 것은 아닌 모양이다. 들릴까 말까한 음량으로 보는 우리의 실정에서 포르노의 5.1채널 사운드는 '개발에 편자'가 아닌가. 동네방네 "나 포르노 봅니다"라고 자랑할 일 있나? 거기에 너무나 또렷하고 깨끗한 영상도 포르노의 맛을 떨어뜨린다. 포르노의 생명은 은밀함이다.
알에서 깨어나 처음 본 것을 어미로 여기는 오리의 각인효과처럼 조악한 화질의 포르노가 은밀함에서는 더 '원조'인 셈이다.
(에로영화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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