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유학시절 중 가장 찡하게 남는 기억이 하나 있다.
영하 40도를 넘나드는 혹독한 겨울, 옌지(延吉)의 어느 공원 길가에서 누더기 옷을 입고 몇 무더기의 과일을 팔기 위해 쭈그려 앉아 있던 젊은 여인을 목격했다.
당시 그 여인은 20대 초반의 앳되고 고운 얼굴에 갓난아이를 안고 가슴을 풀어헤친 채 젖을 먹이고 있었다.
체념한 듯한 무표정함에는 그녀의 힘든 삶이 고스란히 배어 있었으며 이미 부끄러움과 추위 따윈 아무 문제도 아니었다.
나는 한참을 우두커니 서서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
문득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떠올리며 눈시울을 적셨다.
몇 해 전 치매로 오랫동안 고생하신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 어머니는 매일같이 할머니 사진을 보시며 "제가 어머니를 살리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어머님이 저를 살리고 계셨습니다" "어머니 병간호에 제가 70살을 훌쩍 넘긴 할머니라는 사실을 모르고 살았습니다"라고 하시며 매일 눈물을 흘리셨다.
사실 어머니는 생전의 할머니를 살아 계신 부처님으로 여기시고 지극한 효도를 다하셨다.
어머니는 본인이 쌓은 덕들이 자식들의 앞날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어 되돌아가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살아오셨다고 말씀하신다.
그 후 긴장이 풀린 탓일까. 어머니는 오랫동안 병원을 들락날락하는 신세가 되셨다.
산소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넘어져 허리를 다치고 백내장으로 잘 보이지 않는 눈 수술을 하셨다.
하지만, 자식에 대한 사랑은 눈물겹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당신의 그 무엇도 다 내주고 희생을 감수하시려는 모습은 늘 자식으로 미안한 감을 갖게 한다.
오빠나 나나 아직 이루지 못한 부분을 어머니는 인내로 기다리고 계신다.
마치 치매의 할머니를 돌보시던 그 모습으로 이젠 자식을 받들고 계시는지도 모른다.
밖에서는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몫을, 집에서는 어머니로서의 모습으로 늘 자식들을 대하신다.
화가·미술사학 박사 황연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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