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춘인가 싶더니 벌써 우수도 지났다. 급한 맘에 봄 마중 나서려다 주춤주춤 눈치를 살피는 겨울 때문에 망설인다. 해마다 겪는 이별인데도 봄맞이보다 겨울 배웅이 먼저임을 왜 잊어버릴까. 겨울을 떠나보내는데는 눈 산행이 ╂舅甄? 때마침 내린 비와 눈으로 겨울산은 눈꽃을 활짝 피웠다.
김천의 수도산(1천317m)에 오르면 아직도 바람 끝이 매섭다. 그러나 바람이 매서울수록 겨울 꽃은 아름다울 터. 산꼭대기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오며 눈꽃(설화), 서리꽃(상고대), 얼음꽃(빙화)이 온 힘을 다해 마지막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곧 사그라질 운명도 모른 채다.
이들 중 압권은 단연 빙화. 눈꽃과 서리꽃이 녹아 나뭇가지를 타고 흐르다 투명하게 얼어붙었다. 아침햇살에 보석처럼 반짝인다. 바람이라도 불면 햇살은 산산이 부서진다. 조금 큰 나무는 열매를 가득 맺은 과수나무처럼 투명얼음을 주렁주렁 달고 가지를 축 늘어뜨렸다. 황홀하다.
하지만 빙화는 눈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귀로 들어야 제맛이다. 얼음을 뒤집어쓴 나뭇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쨍그랑 쨍그랑 풍경소리를 낸다. 청아하다. 중모리 장단이던 이 풍경소리는 이내 칼바람을 타고 휘모리 장단으로 돌아선다. 온 숲이 울리고 우박처럼 얼음 조각들이 떨어진다. 털썩 눈 위에 주저앉아 가만히 소리에 빠져든다. 큰 나무에 주렁주렁 매달린 굵은 얼음들이 내는 소리는 무겁다. 그렇지만 쨍그랑거리는 맑은 소리와 묘한 화음을 만들어낸다.
산 위로 오를수록 서리꽃인지 눈꽃인지 구분이 애매해진다. 그래도 아쉬울 것은 없다. 빙화를 귀로 느끼듯 눈꽃과 서리꽃은 눈으로 느끼면 될 터이다. 겨울의 끝자락, 수도산은 온 산자락이 하얗다. 이제서야 겨울다운 모습이다. 겨울 산은 이렇게 마지막 몸부림으로 봄이 오는 걸 막을 심산이다.
글·사진 박운석기자 stoneax@imaeil.com
사진: 눈꽃과 상고대, 빙화가 어우러진 수도산 정상. 순백의 세상을 한시라도 빨리 보려는 듯 등산객들의 발걸음이 바빠보인다.
※매일신문 홈페이지(www.imaeil.com) 기자클럽 '박운석의 콕찍어 떠나기'를 클릭하시면 '황홀경-수도산의 마지막 겨울'에 관한 좀더 상세한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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