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시 아포읍의 아포 택지개발지구가 인재를 무더기로 배출한 명당이라는 것과 700여년 만에 저수지에서 다시 택지로 바뀌었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향토사학자 김기진(69·아포장학회장)씨는 아포 택지지구는 고려말 조정이 의도적으로 명당을 없애기 위해 집터를 저수지로 만들었으며, 700여년 만에 저수지를 다시 메워 택지로 개발한 곳이라고 밝혔다.
'선비의 고장인 아포의 마을 유래와 전설'이란 향토지 발간을 앞두고 최근 자료 정리 중인 그에 따르면 택지지구 중심에는 고려말 한(韓) 판서(정3품)라는 사람이 아들 8형제를 두고 살았는데 8형제 모두 과거에 급제하는 등 그 명성이 높고 권세가 당당했다는 것.
그러나 주위의 시기를 사 한씨 부자가 반역을 모의하고 있다는 상소가 올랐고, 조정에선 관원을 보내 조사한 결과 한씨의 집터가 인재 배출의 명당인 데다 반역 우려 또한 짙다고 결론지었다.
그 결과 많은 인부를 동원, 집터를 파헤쳤고 둘레가 무려 직경 100m 이상에 달해 큰 저수지가 돼 버렸다는 것.
후세 사람들은 이 저수지가 한 판서가 살던 집터라 해서 한지(韓池)라고 부르게 됐다고 김씨는 전했다.
한지(韓池)는 지난 1998년 아포택지지구 개발과 함께 매립돼 현재 4만6천여 평 규모의 택지로 조성돼 1천여 가구 규모의 아파트 단지를 비롯해 주택, 상가가 들어섰다.
인재 배출의 명당이라는 이유로 조정이 의도적으로 없앴던 집터가 세월이 한참 흐른 뒤 다시 집터로 바뀐 셈이다.
또 한지 맞은편의 송천3리 속칭 대지(大池) 마을은 마을 앞에 큰 못이 있었다해서 마을 이름이 대지(大池)로 불렸으며, 이 마을은 1960년대 말 경부고속도로 건설로 없어지고 지금은 마을의 주류를 이루고 살았던 화순 최씨 재실이 택지지구 내에 건립돼 자리잡고 있다.
더욱 재미있는 것은 현재 택지지구 내에 들어선 아파트단지의 이름이 '한마음 아파트'로 한씨의 유래와 전혀 상관없이 '한'자를 돌림자로 해서 지어졌다는 사실.
김천시사(史)에는 이곳 한지 말고도 아포읍 제석리에 있었던 길지(吉池)도 한지와 비슷한 사연을 가진 못으로 전하고 있다.
임진왜란 직후 제석리에 살던 길운절(吉云節)이란 사람이 역적모의를 하다가 조정에 잡혔는데 한 판서의 집터와 마찬가지로 조정은 길씨의 집터를 파서 못으로 만들었다는 것.
그래서 후세 사람들은 이 못을 길지라고 불렀고, 그 후 길지 역시 매립돼 현재는 다시 집터가 됐는데 이곳이 현재 제석3리 속칭 진등마을이다.
진등마을은 땅이 차지고 질다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400여 년 전의 마을 유래를 그대로 간직한 이름이다.
향토사가들은 예부터 인재 배출의 명당에서 역적이 나올 경우 명당의 기운과 세(勢)를 없애기 위해 집터를 파헤치는 관습이 있었다고 전한다.
김기진씨는 "1356년 병마부사를 지냈던 이사경 선비가 아포로 낙향, 서원을 세워 후학을 양성하면서 많은 인물이 배출됐으며 현재 아포의 마을 명칭 중에 인(仁)·의(義)·예(禮)·지(智) 등 4개 리(里)가 전해져 오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아포읍이 선비의 고장이자 인재 배출의 명당이라는 사실에 대한 방증"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곳 택지지구에 집을 짓는 사람은 700여 년 전 명당에 집을 짓는 셈이어서 모두 잘 살고 좋은 후손들을 배출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김천·이창희기자 lch888@imaeil.com사진: 아포택지개발지구 조성으로 매립된 한지(韓池) 전경. 매립 직전인 지난 1997년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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